몇 해 전부터 소아환우들의 치료를 위해 후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하려고 결심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찌하다 보니 5년째 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한 해의 살림살이를 정리하면서
갖게 되는 감사와 나눔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처음에 후원을 하니 감사패와 후원인을 위한 계간지가 전달 되더군요.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을 받아 들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니 불쾌했습니다.
아까운 마음 꾹 누르고 아픈 아이들 치료비로 쓰라고 보낸 것인데 쓸 데 없는
감사패나 만들어 나눠 주고 소소한 답례품 따위로 내 돈을 낭비하다니...
그러나 후원회에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2년이 지나고 후원인만을 위한 공연과 다과로 우리를 초청해 주었습니다.
평소에 선뜻 시간과 돈을 들여 볼 수 없었던 공연에 대해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우리 부부가 내심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선한 의도는 오간데 없고 스스로를 높여가고 있었습니다.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다음엔 더 많이 내야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이제 5년째,
후원인들을 위한 감사 행사는 그 누적액수만큼이나 세련되고 럭셔리해졌으며
급기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치며
또 다른 편가르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프고 힘없는 자들을 밟고 올라서 내 자랑을 쌓고 있다는 불편함이 생겨났습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나약한 심리의 한 편을 공격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맨 앞자리에 자리한 후원인들과의 비교의식은 나의 천박함을 드러내고
그것을 감추려는 앙큼한 변명의 마음으로 씁쓸하기만 했습니다.
물론 나의 행동은 비난받을 것이 없다는 것도 압니다.
의도의 순수성을 떠나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훌륭합니다.
알뜰살뜰 아껴가며 선한 일 해보겠다며 결심하고 행동하는 마음인데 말이죠.
아픈 이들의 치료비로, 불치병에 대한 연구로, 환자들을 위한 편의시설 구축 등
선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후원을 독려하기 위한 주체로서의 행사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체 측의 입장이 속되거나 나쁜 것이라고 비난할 수도 없고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나“ 만을 놓고 들여다봤을 때 아직 부족하다는 자각이 듭니다.
이러저러한 행사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고
그 행사의 참여 여부를 놓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종국에는 내 이름을 내려놓고 후원할 수 있을 때가 올 수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므로 내가 취한 모든 것은 내 것이라고 할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과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한 것이라고 자랑할 것이 없어지는 때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의 원천은 잘못된 것을 비판하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 이전에
스스로가 겸손해지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겸손함이란 무엇일까요?
내 것을 내 것이라 할 것이 없어지는 상태, 나아가 내가 나랄 것이 없어지는 상태,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상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인식을 시작으로 해서 ’나‘만 포함되는 자존감에서
’우리‘를 포함하는 자존감으로의 상생을 꿈꿔 봅니다.
그러한 상태가 존재하는지, 있다면 내게도 가능할지 의문이 들지만
적어도 나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은 분명하고
’나‘는 ’우리‘속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누군가를 돕는 행동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행동임을 알게 되겠지요.
결국 자랑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될 것이고요.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연계의 생태계처럼 의식 속의 마땅한 생태계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첫댓글 서두에 후원자 예우에 대한 반응도 저랑 비슷하셔서 조금 웃음이...^^;;
저도 해가 갈수록 '자의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터라 한 글자, 한 글자 새겨가며 읽었습니다
나랄 것이 없어지는 상태, 죽는 날까지 어렵겠지만 적어도 집착은 조금씩 버리려 애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