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입시철이다.
수능을 앞두고 마지막 모의고사가 어제 치러졌다.
두 아이 모두 대학생이지만 모의고사며 수능이란 단어만 보아도 몸서리가 쳐진다.
요즘 특권층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이 드러나고 있어 더 그럴 수도 있다.
비리의 진위를 떠나 논란이 될 수 있음은 우리나라 입시체제 속에서 치러야 할 고통이 크고
그로 인한 피해의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위 파악 보다는 언론 보도만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쉽게 흥분하게 된다.
입시는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여야 하는 전쟁터와 흡사하다.
그 동안 짐작만 하고 있었던 입시 비리의 추악한 면면들이 들춰내짐은
평범한 부모들에게 높은 담장에 막혀 들여다 볼 수 없었던 부촌의 대저택 안을 잠깐 훔쳐본 기분일 수도 있겠다.
아이나 부모 모두 방방거리며 애쓰지 않아도 그들이 속해 있는 시스템과 클래스가
이미 입시의 시작점을 앞세워 놓았다.
특목고를 왜 보내려고 하는지 깔끔하게 이해되었다.
그에 비해 공부하면서 열심히 비교과 챙기느라 잠도 못자고
그저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 해 온 아이가 불쌍해 보였고 잘난 부모들처럼
지름길로 편하게 인도해 주지 못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냥 쉽게 대중의 광분 속에 동화되는 나를, 아니 그 보다 더 날뛰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곧 다수의 언론 내용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입시라는 첨예한 사안으로
학부모들의 약점을 공략하는 저급한 싸움터에 이용당했음을 겨우 알아챘을 정도이다.
언론이 주장하는 바의 진위는 중요하지 않았고 차라리 모르는 편이 속 편했다.
나의 어려움은 다 너희들 탓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할 대상을 공개적으로 만났으니
아이를 키우면서 쌓아온 분을 막 풀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곧 내 속에는 그 보다 더한 욕망과 경쟁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미 입시를 다 끝내 놓고도 그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이만 하면 감사하다는 마음과 한 단계 더 높은 고지에 오를 수 없었던 아쉬움이 늘 공존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이의 적성을 살펴 자연스러운 과정에 따라 이끄는 대신 경쟁과 비교 속에서
시달렸기 때문이며 무조건 더 높은 고지에 이르지 못함을 패배라고 여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학부모’라는 정체성만을 지니면서 비뚤어진 채 휘청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 혼란스러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아픔을 치료받지 못한 환자라는 진단을 받은 셈일 수도 있다.
치료를 해야 한다.
우리 단체는 열심히 그 치료를 위해 지금도 애쓰고 있으며 공정한 제도를 통해
믿음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는 뼈대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개인은 그 체제가 온전해지기 전까지 환자의 모습으로 기다리고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 삶의 큰 틀은 자본주의이다.
돈의 힘에 따라 대부분의 것이 결정되며 아이들의 공부와 입시의 결과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힘은 지배와 소유를 통해서 나타나고 우리는 암암리에 그것을 추구하고 있다.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는 것도 지배와 소유를 위함이 아니었을까?
아니라고 말 못하겠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야 할 목표에 숭고한 가치가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가르쳤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한 목표였을까?
그렇다고 말 못하겠다.
남이 어떻게 하든, 체제가 어떠하든
당장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배와 소유가 우리를 고통스러운 경쟁으로 끌고 가 수렁 속으로 던져 버린 주범이라면
그에 맞서는 가치를 찾아보면 될 것이다.
그것은 섬김과 나눔이다.
그러한 가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종교적 가치처럼 숭고하다.
거기에는 경쟁이 없고 비교도 없다.
섬김과 나눔의 결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이다.
언제나 진리인 사랑
입시 제도를 바꾸고 체제를 바꾸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
지배와 소유 대신 나눔과 섬김을 염두에 두는 일은 당장 시작할 수도 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한 채 그것을 추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누구도 지배하지 못한다.
내 마음과 생각은 내 것이다.
나는 이제 나눔과 섬김을 내 맘속에 심을 것이다.
아니 심었다.
첫댓글 나 자신을 솔직하게 되돌아보는 글, 지금처럼 욕망이 들끓는 시대에 참 소중한 고백인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우리 내면을 정화하지 않고서 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있을까요? 한사람 한사람 미약해보이지만 스스로를 개혁해가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