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토끼하고만 나눈 나의 열네 살 이야기>
이 긴 제목의 책은 어린이 청소년 전문출판사 ‘우리학교’에서 펴냈다.
작가는 안나 회글룬드, 스웨덴 사람인데, 글과 그림에 독특한 개성이 가득한 책을 짓고 있다.
이 책은 누구나 한번쯤 겪는 사춘기.격랑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토끼의 이야기를 잘 담아냈다.
주인공이 왜 하필 사람들 틈에 사는 토끼일까? 궁금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토끼만큼 인생의 격랑기를 맞이한 이의 마음을 잘 표현해줄 동물도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 가득하고, 예민한..거기에 사색하는 토끼. 딱이다.
‘가끔,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나는 나 아닌 다른 누군가로 변장한 것만 같아’
이 책의 첫 문장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으며 옛 기억을 소환해주는 주문처럼 다가왔다
토끼의 물음과 생각들에 따라 가다보니,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어느새 열 네 살의 나와 만나고 있었다.
‘온 몸이 촉수이고 레이다’여서 너무나 피곤하다고 생각하던 그 시절의 나!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며 길들여진 모습은 ‘모범생’이었기에 겉모습은 평범했지만,
홀로 사색하는 시간이나, 일기장을 펼칠 때면 또 다른 ‘나’들을 만나곤 해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삶의 시작과 끝이 그 이후의 삶들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었다.
태어나자마자 세상에 나온 것을 후회하는, 예민하고 두려움 가득한 토끼가 자신과 대면하며 점점 커가는 모습이 대견했다. 또 이 토끼 곁에 묵묵히 귀기울여주고 기다려주는 토끼 할아버지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 곁에도 이런 분들이 계셨다. 부모님이 내 마음을 다 공감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곁에 있었던 ‘의미 있는 어른’이 되어준 사람들. 새삼 감사의 마음이 솟는다.
‘사춘기’를 맞이할 딸을 위해 집어든 책인데, 오히려 나의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며 감사와 잔잔한 감동과 여운으로 책을 덮게 되었다. 딸은 아직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비단 ‘사춘기’ 뿐 아니라 인생의 계절 중 ‘사색하고 싶은, 의문이 많아지는 격랑기’에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커다란 나무들 사이에 혼자 서 있는 토끼가 한 독백이 마음에 남는다.
‘오늘 나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
나는 존재하는 모두와 연결되어 있어.
그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감정이야.
세상은 그저 쉼없이 모습을 바꿔 갈 뿐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지금의 내가
내 안에 웅크린 토끼에게,
주변에 방황하는 토끼에게,
곁에 있는 고마운 토끼할아버지에게,
토끼할아버지 마음에 있는 토끼에게,
마음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써 본다.
첫댓글 아름다운 그림책이네요. 저도 꼭 한 번 찾아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