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실습을 위해 주 야간 보호센터에 출근한 것이 일주일이 되었다. 평소 안 하던 일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려니 일주일 만에 몸살이 났다. 몸이 아프니 생각이 많아졌다. 센터에 계신 선생님들께서 사회복지사는 왜 하려고 하느냐고 질문을 하시는데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 나는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방통대에서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이 청소년지도사와 상담사를 취득하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함께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목표를 정해놓고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얻게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통대 공부도 처음 시작할 때는 그저 우리 집 청소년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시작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나의 일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실습 일주일 차. 내가 얻은 깨달음은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것. 이다.
일주일 동안 센터에 계신 어르신들을 관찰한 결과 치매가 심한 어르신일수록 지금, 이 순간 속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분들은 특별히 심심해 하지도 않고 그 순간순간의 활동을 즐기신다. 흡사 아기들이 눈앞에 있는 장난감과 먹을거리에 집중하는 것처럼 말이다. 치매는 도대체 왜 걸릴까? 물론 수백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지면 우리 몸은 우리의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으로 치매를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우리가 심리적인 고통을 잊기 위해 여러 가지의 심리적 방어기재를 사용하듯이 말이다.
아기들도 마찬가지다. 어제 일을 후회하고 내일 일을 걱정하는 아기는 없다. 지금, 이 순간 눈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고 몰입한다. 금방 즐거워했다가 투닥거리기도 하고 또 돌아서서는 잊어버린다. 치매 어르신들도 그렇다. 어제 하신 이야기를 오늘 처음 하는 것처럼 또 그렇게 하신다. 그러고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후회를 하고 걱정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에 머물러 계시긴 하지만 어르신들을 붙잡고 있는 기억들이 몇 가지씩 있다. 시간 나는 틈틈이 성경 쓰기를 하시는 할머니는 나를 만날 때마다 여기서 실습을 잘해서 계속 남아 일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 이야기는 함께 실습하는 실습생 세 명에게 모두 하신 말씀이다. 나중에 밥 먹다가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참을 웃었다. 왜냐면 어르신이 특별히 자네한테만 얘기하는 건데~ 라고 똑같이 얘기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젊어서 돈을 꼭 벌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본인은 큰아이 낳고 일을 그만두셨다는데 그것이 평생 너무 아쉬우셨던지 그 기억을 내내 끄집어 내신다. 돈 벌어서 남편한테는 절대 주지 말고 시어머니랑 친정엄마한테 잘 해 드리라고. 이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을 하신다.
온종일 뜨개질을 하고 계신 또 다른 할머니는 서울에 본인 집이 비어있어 잠시라도 들러 정리를 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못 간다고. 여기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아들이 데려다줘야 갈 수 있는데. 대학교수인 아들이 바빠서 자주 못 간다고. 내일은 집에 가야 해서 센터에는 못 나오실 거라고. 그렇게 말하고는 다음 날 매일 나오시는 어르신이다. 그리고는 4남매 자랑을 줄줄줄 하신다. 아이들이 너무 잘 컸다고. 엄마를 끔찍하게 챙긴다고. 수세미 떠서 딸도 주고 며느리도 줘야 한다고. 그래서 부지런히 떠야 한다고 종일 손을 쉬지 않으신다.
또 한 분 할머니는 늘 의자에 앉아서 졸고 계신다. 식탁에 앉아서도 거의 계속 졸고 계신데 그러다가 잠깐 깨어나시면 밥을 또 후딱 다 드신다. 이 어르신은 센터에서 욕쟁이 어르신으로 통한다. 어르신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호통을 치기 때문이다. 실내화에서 실외화로 갈아 신겨드리면 이 나쁜 년들이 내 신발을 왜 건드리냐고 호통을 치고 식사시간이니까 식탁으로 모시고 가면 이 년들이 왜 자꾸 날 어디로 데려가느냐고 하시고 종일 호통을 치고 욕만 하는 어르신이다. 졸고 계실 때 곁에 앉아 찬찬히 보면 참 예쁜 눈, 코, 입을 가진 할머니가 보인다. 평생 무슨 일들을 그렇게도 많이 겪으셨길래 그리도 화가 많으신지 참 마음이 아프다.
센터 안에서 부지런히 운동하시는 어르신. 두 분 다 치매라 서로 무슨 말씀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즐겁게 수다 삼매경에 빠져계신 어르신들. 손잡아 드리면 아이고 손이 어찌 이렇게 따뜻하누~ 하시면서 웃으시는 어르신. 도와드릴 때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인사해 주시는 어르신. 눈 마주칠 때마다 같이 웃음으로 답해주는 어르신. 노래 부를 땐 아이처럼 신나게 박수치며 따라 부르는 어르신들. 미술 활동 시간에 작품 만들 땐 선생님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물어보시면서 끝까지 꼼꼼하게 완성하고는 좋아라 하시는 어르신들.
각자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계신 어르신들을 보면서 나는 나중에 나이 들어 어떤 할머니가 되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백세 시대를 넘어 백 오십 시대가 온다는데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할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 일주일이었다. 늙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참 서글픈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또 결혼 이후로 엄마,아빠를 가장 많이 생각했던 일주일이기도 하다. 실습이 끝나면 부모님 뵈러 가야겠다. 아니 한 달에 한 번 씩 부산을 가야겠다. 건강하게 내 얼굴 알아볼 수 있을 때 많이 보여드리는 게 가장 큰 효도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월급을 받기는커녕 실습비를 낸다고 투덜 댔는데 이런 건 아무래도 돈 내고 배우는 게 맞는 거 같다.
첫댓글 과정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일에 성심을 다하시기 때문인가봅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들려주신 이야기 읽으면서 저도 노년에 대해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