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多事多難” : 여러 가지 일도 많고 어려움이나 탈도 많다.
12월31일
11:59:59초 지나 새해가 시작될 때 까지 의례 듣던 “다사다난”이라는 인사말이
더는 평범하게 들리지 않는 다면,
“안녕하세요?” 라는 자동발사 인사말 속 “안녕”의 의미가 남다르게 여겨진다면,
분명코 지난 한 해가 순탄하지 않았고 심적으로도 힘들었음에 틀림없다.
2019년은 내게도 참 다사다난한 한해 였다.
“괜찮다. 괜찮아 질거야.”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 해도, 힘든 감정이 해결되지 않고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의 임계치를 넘는 상황을 겪게 되면, 바꿀 수 없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과거에 집착하게 되고 반복적으로 상처받은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되나 보다.
‘살면서 상처를 안 받을 수 있나! 잘 이겨
내야지!’ 매사 자타공인 초긍정적 성격이라고 자신하고있었지만, 임계치를
훨씬 넘어서는 힘듦에는 무한 반복 상처받은 감정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주위 지인들의 격려와 위로가 힘이 되었지만, 결국에는 내가 견뎌내고 이겨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시시비비를 따져서 잘 잘못을 따지고 싶었다. 끝까지. 복잡한
상황과 절차 속에 간단치 않았다.
참 신기한 건, 비슷한 일을 겪어도 힘들어하는 정도가 다르게 보이는 게, 나만 이렇게 힘들어 하나? 싶을 정도로 내 상처만 커 보였다. “한 참의 시간이 지났으니 이젠 훌훌 털어버릴 때도 된 거 아니야? 잊어. 그래야 네가 편해.” 이렇게들 말한다. 나는 세상 이렇게 힘들 수 없고 괴로운데 함께 걱정해주고 위로 해주던 지인들은 벌써 잊은 지 오래인 것 같아
보였고, 아직도 그 타령이야? 하는 것 같아 더는 얘기를
꺼내기도 편치 않게 되었다.
이렇게 내 문제 내 상처에 갇혀 있는 동안, 주변에 대한 관심은 없어지고 내 문제만 남았다. 해결방법을 찾는 다고 용쓰면서도 사실은 온 감각이 내 상처에만 쏠려있었다.
그러는 사이 예전 같았으면 가족여행을 떠났을 휴가 3일을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집에서 보냈다.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화장하고 출근
준비 다 한 상태에서 애들 보내고, 커피한잔 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3일 동안의 휴식! 물론 아이들은 퇴근보다 일찍 집에 온 엄마가 출장 일이 일찍 끝나 빨리
온 걸로 안다. 지금도!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집에서 3일을 온전히
쉬었다. 책도 읽고, TV로 영화도 보고.
눈물 나게 행복했다. 낯설은 고요함이 안정을 찾게 돕는 것 같았다. 한걸음 떨어져 조용한 가운데 바라보니 “감사” 와 “안도감”이 쬐금
생기기 시작한다.
‘나를 괴롭히는 나쁜 것에 주목하지 말고, 지금의
문제를 잘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원하지 않는 것들을 차단하는
것, 무시 해야 할 정보에 의미부여하고 집중한다면 진짜 원하는 것에 집중할 주의는 잃어버리게 된다.’는 글을 봤다. 올 한 해를 이렇게 보냈던 것 같다.
갈등 상황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에 주의를 빼앗겨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갈등과 대립에서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없는 것은 주의를 조절하는 습관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고, 한번 두번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잡음을 무시하는 시도를 반복하다 보면 쉽게 감정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타잔을 연기한 배우 중에 줄타기를 가장 잘 한 배우는 눈앞의 줄을 가장 잘 잡는 배우가 아니라 쥐고 있는 줄을 잘 버린 배우였다고
한다.
3일간의 휴식 뒤에서야, 감정을 소모하게 하던
것을 놓아버리기를 시작했다.
기준은, 내게 도움이 되는가? 아니라면, “의미없다.” 버리자.
생각해보니, 힘들 때 참고 열심히 하는 것은 그 동안 많이 해왔었나보다. 그런데 문제가 있을 때 잘 안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연습이 부족했던 것 같다.
힘든 일을 잘 이겨내고 나면 힘든 만큼 성장할 거라고 한다. 성장하기 전에 항복할 뻔
했다.
극복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참.
2020년 새해에는 자잘하게 연습하고 싶다. 큰일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