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지적 장애를 앓고 있다. 지적 장애 정도는 일상생활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고, 사회생활을 하기 에는 무리가 있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 남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국가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을 생활비로 쓰며 지내고 있다. 2월 초쯤에 부모님, 남동생과 형제들 부부 그리고 아이들 거기에 나의 외삼촌과 외숙모까지 총 21명의 대가족이 아버지 칠순 기념해 가까운 곳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난 해 여름 발병한 폐암으로 고생 많이 하신 부모님께 좋은 선물이 되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온 직후 엄마에게 연락이 왔는데, 남동생이 밤에 신발을 다 들여놓고 무섭다며 엄마 방에 와서 자더란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며칠 동안 밤마다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남동생을 병원에 데려와서 검사를 하고 있다고 하셨으며 결과는 2주 정도 뒤에나 나온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동생의 상태가 그렇게 심각할 정도는 아니겠지 싶었고 곧 퇴사를 앞둔 내 삶에 집중하다가 쉼을 위한 여행을 떠났었다. 여행지에서 형제들 단톡방에 남동생의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결국 형제들은 대학 병원에 남동생을 입원시켰고, 병원 측에서는 24시간 보호자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단다.
나는 여행지에서 돌아오자마자 병원부터 달려갔다. 남동생의 모습은 가슴이 너무 아플 정도로 정신이 오락가락 한 상태였다. 남동생의 마음의 병이 무엇일까, 지적 장애로 인한 온전히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지 못하는 데에 대한 화가 이제야 분출된 것일까? 나는 사실 남동생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어린 시절 남동생이 지적 장애가 된 원인은 길을 건너다가 교통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에 내가 앞서 그 길을 건넜으며, 남동생은 나를 따라 오다가 사고가 났다. 그때 머리를 다쳤고 지적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그때 일로 나는 남동생에게 마음의 빚을 진 듯했다. 뒤따라오는 남동생을 발견하지 못한 죄책감, 어린 남동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사고가 나서 평생 장애를 가지고 평범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 온통 나 때문인 것만 같은 죄책감들이 내내 나를 따라 다녔다. 그동안 나는 지적 장애가 있는 남동생과 깊이 있는 대화가 부족했다. 한편으로는 지적 장애가 있지만 큰 무리 없이 일상생활도 해내고 나름의 비슷한 친구들도 만나서 잘 지내고 있다고 애써 외면해 왔던 것 같다. 그동안의 외면과 방치로 인한 결과로 지금 남동생이 마음의 병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심리 상담을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그저 그동안 못 들었던 남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남동생의 병원을 지켰고 나는 남동생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이런 저런 말을 많이 걸어 주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남동생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원 한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자 집에 가고 싶다며 괴로움을 표현했다. 이제는 병원에 있는 것이 동생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는 판단으로 입원한지 일주일 만에 퇴원을 했다. 입원 전의 동생의 상태를 알기에 퇴원해서도 부모님과 집에서의 생활이 걱정이 되었고, 매일 전화해서 남동생의 상태를 물었는데, 다행히 이전과 같은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사고에 대한 미안함, 자라면서 내내 평범하지 못함으로 인한 남동생의 힘듬에 대해서 생각만 했지, 남동생에게 마음을 표현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각자 가정을 꾸려 제 가족들에게 신경 쓰며 사느라 마음만큼 부모님을 챙기지 못하는 우리 형제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막내였는데, 형제들 누구도 그동안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병원에 있는 동생을 보며 비로소 그동안 쑥스러워 애써 말로 내뱉지 않았던 고마움을 진심으로 표현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오히려 소중하고 가깝다 생각했던 가족들에게 마음을 더 표현 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말 안해도 당연히 내 마음을 알 것이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마음 표현을 잘 들어주고 받아줘야 한다. 남동생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고마움과 감사함의 말들을 그때그때 표현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