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놀자~”
아침밥 숟가락 놓기 무섭게 노트북을 켜고 1시간 만에 온라인 수업을 ‘해치운’ 아들 녀석의 목소리다.
늦은 나이에 첫 아이를 낳고 처음 해보는 부모 노릇에 우왕좌왕하며 지낸 시간들이 벌써 꽉 채운 10년, 다음 주면 아들 녀석은 만 10살이 되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학교에선 고학년으로 불리는, 이제 공부도 제법 해야 할 시기지만 아직 아이들 공부방법에 대해서 이렇다 할 확답을 갖지 못한 나는 오늘도 아들 녀석이 부르는 대로 “뭐하고 놀까?” 하며 대답해준다.
학창시절 시험을 잘 봤던 나는 (지금의 4-50대가 알다시피 당시는 암기를 잘하면 어지간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수험체계였다. ‘공부를 잘했던’이라고 쓰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고3 시절 마지막 두어 달, 암기과목을 한다고 수학을 게을리했는데 하필 그 해 입시에서 수학이 쉽게 나와 수학 과목의 평균 점수가 높아졌고 나는 지원했던 학교에 불합격했다. (당시는 학력고사 체제가 끝나기 1년 전이었고, 선지원 후 대입시험을 치르는 시기였다) 어찌할까 하다가 학교의 ‘네임밸류’를 원하시던 부모님의 은근한 바램과 드러내진 않았지만 내 욕심도 더해져서 1년의 재수 과정을 거친 후 소위 서열 높은 대학교에 입학했고, 약간의 굴곡을 거쳐 무난히 취직했다.
고등학생 때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고, 그 단순한 이유만으로 국문학과를 택했기에 (부끄럽지만 당시는 대학만 잘 가면 전공에 큰 상관없이 취직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취직을 하면서 고려한 것은 입사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회사가 안정성을 추구하는 내 성격에 얼마나 잘 맞는지, 급여는 많이 주는지 등과 같은 일 외적인 요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에서 20여 년을 보냈다. 입사 이후 단 한 순간도 이렇게 오랫동안 회사를 다닐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긴 시간 동안 일을 하며 내 일에 자부심을 갖고 보람을 느꼈는지, 이 일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었는지 묻는다면 ‘예스’라는 답을 쉽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무슨 일을 하든 후회가 없을 수 없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입사하면서 내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해야할지 생각지 않았던 결과가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적도, 도달하고 싶은 비전도 없이 그저 주어진 시간을 보내고 월급을 받는 지금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일말의 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사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무난하게 취직해서 살면 되지라는 생각에 큰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었고 취업 후 수 년이 지나는 동안은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주변에 인심쓰는 재미에 그런 생활을 뒤돌아볼 필요도 못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회사를 다니며 재미가 있었는지, 일을 하며 가슴 뛰는 기억이 있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부끄럽게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대학에 입학하며 고민 없이 전공을 선택하고 진로를 결정한 댓가로 내게 남은 모습이다.
그리고 진로를 고민했어야 할 그 시점에서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을 하며 내가 속한 사회에도 조금씩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런 모습을 두고 거창하게 정체성을 찾는다거나 사회문제를 고민한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가식없이 표현한다면, 사는 게 별로 재미없어서 어떻게 살아야 날마다 신나게 지낼 수 있을까를 비로소 고민한다는게 더 적합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였을까. 아직까지 나는 아이들에게 학원이나 학습지를 강권해본 적이 없다. 학창시절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가서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갔지만, 이제 와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험문제 하나 더 맞히기 위해 공부하던 그 시절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좀 더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그게 가능하다고. 잘 모르겠다.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니 백 프로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이 입시에 신경써야 한다는 중고등학생이 되더라도 나는 아이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지금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수학 한 문제, 영어 단어 하나를 더 풀고 외우는 것보다 나중에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철학’을 가지는 거라고. 거창하게 말해 ‘철학’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아이들이 매 순간 맞닥뜨릴 선택의 순간에 그들의 생각을 지지해줄 삶의 자세일 것이다.
학창시절, 너는 공부만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함께 살며 의식주를 해결했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부모님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 물론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꼈고 몸은 편했지만, 온전한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나 자신’을 실감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리고 그만큼 내 선택에 대한 만족도는 낮았고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내가 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예전보다 생활은 풍요로워 졌고 상대적으로 아이들에게 ‘결핍’을 가르치기도 힘든 요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스스로의 일을 할 수 있게 키울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빅데이터니 AI니, 내가 지나온 시간처럼 그저 학교 시험을 잘 보고 대학을 잘 가는 것만으로는 안정적인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아이들의 시간, 그 시간 안에서는 내 아이 하나만 잘 사는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가 주변 사람들과 ‘함께’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그 속에서 안정을 찾는 삶을 꾸리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 자신의 소신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는 것, 그리고 시민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제도 안에서는 어떻게 그런 모습들을 만들어나갈지 뾰족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게 오늘도 아들의 “엄마! 놀자~”라는 부름에 이의를 달지 못하고 “그래~” 대답하는 이유다.
첫댓글 '온전한 독립적 개체로서의 나 자신을 실감해 본 기억'... 저 또한 별로 없는 것 같네요. ㅠㅠ
공감되는 글입니다. '내 아이가 주변 사람들과 ‘함께’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그 속에서 안정을 찾는 삶을 꾸리기를 희망한다' 저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더욱 공동체와 함께 함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되네요. 이 코로나 사태를 통해 더욱 인간은 함게 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