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원에서 수학을 10년 넘게 가르쳤다. 대학 시절 과외까지 포함한다면 그 기간이 훨씬 길어진다. 그러나 사교육 자체를 고민해 본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전에는 수학 문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학생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궁금했다.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 아이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없는지 보다는 어떻게 지내는지가 궁금해졌다. 마침 내가 근무하던 학원의 주인이 바뀌면서 대형 강의식 수업에서 소수 그룹 수업으로 학원 컨셉이 바뀌었다. 학급당 인원이 적어지고, 그중에 시험 기간이 되면 결석하는 아이들도 있고 해서. 어떤 날은 매우 적은 인원이 수업에 나오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게 어떤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묻곤 했다.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하는 걸 매우 좋아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을 갖춘 환경에서 자라고 있음에도 우울해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사교육 자체에 대한 고민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인간을 복제하는 방식, 다시 말하면 성공한 누군가가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은 모두에게 적용될 수 없다. 우리는 다 다르다.
나는 어떤 사교육 강사가 되어야 하며, 아이에게는 어떤 교육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동네 엄마들을 만나면 내게 수학 공부를 어떻게 시키냐고 묻는 질문들이 불편했다. 학원 정보를 나누는 대화에는 흥미가 없었다. 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찾았다. 이 단체를 찾은 것은 필연이었지만, 그것이 계속 머무를 이유가 되진 못할 거다. 이 단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없다면, 나는 이곳을 구경 좀 하다 떠났겠지. 이곳에 3년여를 머물며, 지역 등대장도 맡고, 출신학교차별금지법을 위한 1인 시위도 참여하고, 여러 행사에 참석했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백하자면 이곳을 통해서 나는 '면죄부'를 받고 싶었던 거 같다. 나는 공범이 아니라고, 그렇게 나쁜 어른은 아니라는 확인을 받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모두가 엄마의 책임이라고 하는 자녀 교육의 짐을 좀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런 생각이 서로를 불행하게 하는 거 같았다. 사교육이 먹이 삼는 욕망과 불안 자체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또 학창 시절 상처에 대한 위로를 이곳에서 받았다. 수포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많은 수포자를 만들어내는 수학 교육이 문제라는 지적. 통쾌했다. 몇 학번인지 전공이 뭔지 아무도 묻지 않는 곳. 그 집 아이가 공부 잘하는지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 내가 엄마가 아닌 시민으로써 존재하는 느낌이 주는 편안함과 힘을 느낄수 있다.
30대 여성 두 분이 대표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좋다. 이 큰 조직을 30대 내부 운동가에게 대표직을 맡기고 떠나신 송인수, 윤지희 전 대표님을 존경한다. 한 명의 영웅을 만들려 하는 곳이 아니다. 언니, 동생 하지 않는 문화도 나는 좋다. 나이와 친한 정도에 따른 서열이 만들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성별, 나이, 학력 등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결국은 사람이 남는다. 이곳에 오면 좋은 사람을 보고, 만날 수 있다. 매우 특별하고 귀한 사람들이다. 다양한 삶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나 같은 수학강사, 아니 나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분들을 이곳에서 만났다. 나는 그저 물음표 하나 가지고 이곳에 왔다면, 이미 질문을 품고 삶 속에서 실천해 가는 분들을 만났다.
인생을 산을 오르는 것에 비유한다면, 산을 오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 가고 싶은 길도, 갈 수 있는 길도 다르다. 모두 다른 마음으로 다른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답이 없다며 떠나는 사람도 있고, 이곳에서 답을 찾았다고 하는 이도 있다. 나는 답이 없기에 더욱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답이 없다고 말하는 용기와 답을 강요할 수 없다는 진실마저 사랑하게 되었다. 답이 없어서 계속 고민해가야 하기 때문에, 그 고민을 기꺼이 함께 해주는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난다.
나도 단체도 살아 있는 생물이다. 우리는 각자 변할 것이다. 매번 다른 이유로 단체의 운동을 지지하기도 했다가 또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앞으로 새롭게 만나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기다려진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그 부름에 기꺼이 응답하고싶다.
물론 나로서는 누군가 공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심히 냉소적이다. 공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시작부터 잘못된 토대에 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수용되어 있는 수많은 아이들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어떤 노력이든 갈채를 보낸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p.246
19년 등대학교 14기 모임 미션 '침묵할 수 없다고' -무엇에 침묵 할 수 없을까요?
19년 5월. 영유아 인권법 서명 받던 날
- 새힘 -
첫댓글 마음으로 지원하고 후원만 할 수도 있는데, 단체 활동에 깊이 들어와서 활동하신 선생님만의 고민과 성찰이 느껴져요. '답이 없다고 말하는 용기와 답을 강요할 수 없다는 진실마저 사랑'하신 선생님과 동지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나도 단체도 살아 있는 생물이다. 우리는 각자 변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공감됩니다.^^ 우리의 얼굴이 바뀌고 우리의 언어가 바뀌고 우리의 삶이 바뀔 때 세상도 우리를 따라 변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찌보면 제도 변화 이전에 사람의 변화가 증거가 되는 것이 우리 운동의 가장 큰 동력이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