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찾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나와 엄마의 복잡한 관계처럼 나와 내 아이들의 관계가 뒤틀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의 사건 장면 하나.
‘나를 향해 날아오는 문제집’
그날 그 책 귀퉁이에 내가 맞았는지 아니면 무사히 맞지 않고 피했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날마다 풀어야 하는 수학 문제집이 있었고, 그것을 채점하는 엄마 옆에서 벌벌 떨면서 오늘은 몇 개 틀리지 않았기를 빌고 또 빌었었던 기억이 가득하다.
채점하는 시간마다 엄마에게서 떨어져 태연한 척 있으려 했지만, 머리는 지끈 지끈 했고, 모든 신경이 곤두서서 마음속으로는 ‘제발...제발...’만 되뇌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째 틀리면서 엄마의 얼굴이 찌푸려지고 짜증 섞인 신음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가 네 개, 다섯 개..
‘나는 오늘 죽었다.’
문제집이 부욱... 찢기는 소리가 들리고 내 쪽으로 찢어진 문제집이 날아왔다.
나를 향한 욕지거리와 고함소리...
“그때는 다~ 너를 위해 그렇게 했었다.”
“그 시절에는 어느 집이나 다 그렇게 가르치며 키웠다.”라고 훗날 들었다.
결혼을 하고 어렵게 쌍둥이들을 낳았다.
젖 먹이고 번갈아 가며 업어가며 밤잠을 못 잘 때는 힘에 부치기도 했었다.
그런 어느 날 기어 다니는 녀석들을 보는데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났다.
‘저렇게 예쁜 아이들을 향해 세상의 온갖 욕을 퍼붓게 되는 그런 어느 날이 나에게도 올까?’
지금은 한 없이 예쁘기만 한 아이들이지만, 부모의 말을 안 듣고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그 어느 날이 온다면... 그때 나는 어쩌지?
그 어느 날이 나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할 수 없다.
나의 부모도 나를 위해 그렇게 했다니까...
나는 과연 다를 수 있을까?
나는 달라야 한다.
나는 저 예쁜 아기들의 기억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엄마로 남을 수 없다.
그래서 방법을 찾기로 했다.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육아서를 찾아 읽고 그렇게 실천해 보려고 애썼다.
부모 교육을 찾아가서 듣고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했다.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다그치지 않는 것은 어찌 어찌 하겠다. 그런데...
아이가 남들보다 좀 더 앞서 나갔으면 하는 나의 기대를 내려놓기는 힘들었다.
나의 부모와 나의 관계를 비틀어 버린 것이 교육열인데, 그 교육열이 나에게도 내제되어 있었다.
‘아깝다 학원비’ 소책자를 통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알게 되었다.
후원을 하고 등대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인 그들은 자식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동안 학원을 최대한 안 보내려고 애쓰는 나는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내가 학원을 안 보내는 좋은 엄마 자리에 있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교육을 하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학습법이 궁금해서 모임에 나가게 되었는데, 아이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는 점점 부모의 개입을 거두어야 한다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 아이를 독립시킬 나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아이를 독립적 인격체로 인정하고, 나는 나의 삶을 살란다.
그런데 나의 삶이 아이에게서 안 떨어진다.
이러다간 내 교육열에 아이가 나처럼 화상을 입을 지도 모른다.
끔찍하다.
그럴 수는 없다.
그런데 내 교육열을 억누르고 꺼트릴 필요가 있을까?
내 교육열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단체에서 하고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옮겨 보기로 했다. 그래서 상담넷 상담위원으로 지원을 했다.
내가 상담을 해 줄 능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교육적 관심을 여기에 풀어보기로 했다.
단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며 나는 그들의 선의를 보았다.
그들의 선의가 큰 물줄기가 되었으면 하고 그 물줄기에 나도 선한 뜻으로 함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엄마이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아이들은 사춘기의 끄트머리에 섰다.
“엄마, 엄마!” 나를 부르는 엄마 소리가 정말 듣기 좋다.
나는 교육 때문에 학대당하는 아이가 없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그 길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나에게 안내해 준다.
나는 후원하고 그들과 함께 동참하며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첫댓글 아, 그 문제집 제가 맞을 뻔 했던 것처럼 생생 ㅠㅠ
저는 아이에 대한 제 마음에 '교육열'이라는 말을 쓰기가 힘들어요. 교육적이지도 않은 그저 탈락에 대한 불안의 과잉과 내가 살아온 방식을 기준 삼은 욕망의 투영이라고 해야 하나요
...저도 글 쓰신 분처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여전히 회원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