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사순절 첫째주일예배 설교요약문
영적 소생의 환상
본문: 에스겔 47:1-12 첫 찬송: 183장 빈들에 마른 풀같은 봉헌찬송: 213장 나의 보화 드리니 마침찬송: 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교독문: 79번 요한복음 15장
산산조각 난 청년의 불행 에스겔은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인생이 송두리째 부서져 버린 불우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25세에 바벨론으로 잡혀가(주전 597년) 난민촌 노동캠프의 제사장 노릇하면서, 끝내 가나안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부시의 아들로서 예루살렘 성전의 견습제사장으로 막 봉사할 나이였던 25세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는 바벨론 유배 중에 몇 차례 중대한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습니다. 초기 5년 동안은 암흑천지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조국, 친구, 고향, 부모친지 행복한 인생을 위한 모든 필수적 자원들을 다 잃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사장으로 살기 위해 받았던 모든 영적 지적 품성적 훈련이 바벨론 포로들의 노동캠프에서는 아무런 쓸데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낙심, 낙담, 절망, 의기소침 우울증, 냉담함....이런 감정들이 지배하고 득세할 때 보냈던 초기 5년은 앞이 전혀 안보였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간 지 5년이 되는 해 4월 5일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거대한 이동용 보좌전차 위에 앉으신 영광의 광채를 보면서 에스겔은 하나님나라의 중력장으로 끌려가 전혀 새로운 안목을 가진 예언자로 환골탈태합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후의 그의 생애 연표를 작성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전 597년 16세 소년왕 여호야긴과 유다의 귀족자제 중 엘리트 청년 바벨론으로 유수. 에스겔은 5년간 참혹한 노동캠프 시편 137편의 정경. 흑인 3인조 보칼 보니 엠의 By the Rivers of Baylon. 혹은 베르디의 오페라 <나브꼬>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Va Pensiro) 분위기 참조. 주전 592년 서른 살이 된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인자로 부르심 받음. 인자는 하나님의 우편 보좌(시 80:17)에 앉아 하나님의 왕명출납을 담당하는 부왕적 존재(하나님의 아들로서 버금왕의 역할)로 스카웃됨. 인자는 단순한 예언자가 아니라 왕적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아담적 인물이다. 다윗왕실의 왕들은 <인자>(벤-아담)로 불림(시 8:4) 에스겔 1-7장 주전 592년 인자로 부름받은 첫 해 받은 말씀 에스겔 8-19장 유배 후 6년째 591년 6월 5일에 받은 말씀. 8-11장은 우상의 소굴로 전락한 에루살렘 성전을 버리고 바벨론 포로들의 노동캠프에 오셔서 임시성소가 되어 주신 하나님(겔 11:16) 에스겔 20-23장 유배 후 8년째 받은 말씀 에스겔 24-25장 유배 후 9년째 받은 말씀. 주전 588년 유배 후 9년째 되던 해 에스겔은 아내를 잃는다(24:16). 아내의 죽음은 예루살렘의 죽음의 전조이자 예고. 에스겔 26-28장 유배 후 11년째 받은 말씀. 어느 달 초 하루에 수수된 비전. 에스겔 29-30장 유배 후 10년 10월 12일에 받은 말씀 에스겔 31-32:16 유배 후 11년째 3월 1일 에스겔 32:17-33:20 유배 후 12년째 어느 달 15일
주전 587년 예루살렘, 유다왕국멸망, 예루살렘 성전파괴와 소화 소식듣고 천근의 침묵깨고 이스라엘의 미래회복 예언시작 에스겔 33:21 유배 후 12년 10월 5일 <우리가 사로잡힌 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에.....> 부활, 소생, 회복예언 시작. 33:22 <그 때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 에스겔 33:21-39장 유배 후 12년 10월 5일 이후
주전 572년 유배 후 스물 다섯째 해, 예루살렘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1월 10일). 우상숭배의 소굴이었던' 예루살렘성이 완전히 갱신되고 쇄신되어 이상화된 성전으로 거듭 태어나다(40-47장). 43:5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영적 소생의 터전 회복된 예루살렘 성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에스겔은 유배된 지 25년째 되던 날 받은 환상의 일부입니다. 8-11장에 묘사된 성전과는 전혀 달라진 예루살렘 성전모습이 나옵니다. 회복된 성전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는 성전 문지방 밑에서 엄청난 강물이 흘러나와 동쪽으로 흘러가는 장면입니다. 기혼샘에서 흘러나와 암석으로 된 터널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흘러갔던 강물에서 아마 영감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흘러내오는 강물의 양이 엄청 많으며 시간이 갈수록 충일하고 충만해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발목에 차오를 정도였다가. 무릎, 허리까지 수심이 깊어지더니 마침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이 강은 동쪽 아라바 광야를 향해 흘러갑니다. 해저 고도 440미터가 되는 깊게 내려앉은 요단계곡 끝에 있는 염해, 죽음의 바다 사해로 흘러갑니다. 보통 6%의 염도를 가진 일반바다와는 달리 사해는 25%이상의 염도를 유지하는 죽음의 강입니다. 아무런 물고기도 살지 못하는 내륙호수입니다. 이 높은 염도 때문에 주변에는 진펄과 개펄이 형성되었습니다. 메마른 광야가 되었습니다. 사해바다의 물은 엄청난 속도로 증발하지만 그 사해로 유입되는 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아라바 광야가 생겨나고 사해가 형성되었습니다. 성전에서 나오는 강물은 광야를 살리고 죽음의 호수를 살려내고 강 좌우편의 모든 나무들, 유실수를 소생시킵니다. 강 좌우편에 심겨진 나무들은 하나님말씀의 강물을 흡수하는 토라묵상 토라음송성도들입니다. 하나님말씀을 주야로 듣고 즐거워하고 음송하는 사람들이 바로 생명의 강좌우편에 심겨져 있는 나무들입니다(시 1:3-5). 교회는 성전문지방 아래서 흘러내리는 생수의 강, 즉 성령감화감동으로 유지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런 교회를 앙망하고 갈망합니다. 바벨론에 유배당한 포로들처럼 충만한 복된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는 우리 가향성도들에게 성전문지방 아래서 흘려내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소생되기를 간구합니다. 달마다 과실맺는 복을 누리시길 간구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틴 로이드-존스는 <영적 침체>라는 책에서(133-153, <미래에 대한 두려움>) 성도들의 영적 침체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자아몰입, 과도한 자기평가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자신을 스스로 평가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만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패기를 과시하기 힘듭니다. 거대한 회사조직, 위계질서, 방대한 지식, 어마어마한 집값, 생활비, 넘 작은 월급과 수입, 쇠약해지는 건강, 흔들리는 우리 가정, 사랑하는 이와 이별....이런 것들은 우리를 왜소하게 만들고 초라하게 만듭니다. 내 앞에 펼쳐진 미래가 온통 흑암천지로 가득 찬 골짜기길 같습니다. 우리 자신이 홀로 이 모든 무겁고 참혹한 일들을 처리하여야 한다면 절망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무겁고 고단한 염려로 평안을 빼앗기고 있음을 아시고 토라를 주시고 하나님 말씀을 보내주십니다. 교회공동체는 하나님의 성전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의 강좌우에 심겨진 나무들입니다. 교회공동체는 불모의 아라바광야같은 곳이며 심지어 죽음의 바다같은 절망을 안고 온 사람들의 동아리입니다. 해저 440미터 아래의 낮고 낮은 고도입니다. 오늘날 청년들의 고단한 삶의 자리가 특히 사해바다같은 불모지입니다. 하나님말씀은 이런 불모지를 향해 콸콸 흘러갑니다. 사랑하는 교우님,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물을 거부하지 말고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억만번 절망과 우울낙담을 오고가는 사이에도 우리를 수만번 영적으로 소생시킬 말씀, 생명의 강이 성전문지방 아래에서 흘러오고 있습니다. 성전문지방 밑에서 흘러내리는 생명강은 반드시 낮고 낮은 곳, 타는 목마름 가진 영혼을 찾아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죽음의 바다같은 쓰라림으로 가득 차 있어도 여러분 마음에 생명의 강이 흘러들어가면 소생할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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