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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의 의미
**예수님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고,
행복한 삶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갈이요, 사순절의 신앙입니다.
처음에 사순절은 세례 준비를 위한 훈련과 경건한 생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부활절에 세례를 받아서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교인들은 부활절이 되기 전, 40일간을 학습하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회개하는
삶을 살면서 세례 준비를 했습니다.
이제까지 세상에서 살아오던 모든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님 안에서 새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세례를 준비하는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런 관행이 사순절 신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것을 묵상하면서,
과거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과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말씀: 이사야 58: 1-9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우리 주 예수님은 외모로 오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 분은 자라는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어떤 외모도 준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서 싫어 버린바 되었고, 고난을 많이 겪은 분이셨습니다.
그 분에게는 내세울 만한 학력도 지위도 권세도 없었습니다. 그 분은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흑암의 권세에 눌려 있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셨고, 그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그래서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멸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가장 낮은 자리에 앉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을 대신 지시고 가시에 찔림에 당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죄악을 허물을 대신 지시고 가시에 찔림을 당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지시고 상함을 입으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하늘의 평강을 주시기 우해 자기의 몸에 징계를 받으셨고, 우리의 병과 상처를 대신 지시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고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셨고, 우리를 위해서 피와 살을 주셨습니다.
그 분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여 하늘의 풍성함으로 가득 채우시려는 목적만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 분은 자기가 어떻게 되는가를 고려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용서와 치료와 평강과 행복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당신이 영접한 예수님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신 분이요, 당신을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고난을 당하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묵상하세요.
*그리스도의 고난을 선택한 자만이 대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말씀: 히브리서 11: 23-31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본문말씀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믿음을 두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방나라 애굽의 영광보다 자기 민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선택한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애굽의 모든 재물보다도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을 더 큰 재물로 여긴 것입니다.
모세는 고난을 영광으로 여기고, 능욕을 재물로 생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모세를 불러 말씀하시고 사명을 주어서 자기 민족을 위한 사역자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고난 받는 길이요, 능욕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다섯 번이나 거절했습니다.
그 일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어떻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포기할 수 있었습니까?
모세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까?
모세가 어떻게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을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까?
모세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 받는 것을 애굽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이라고 여길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고 말씀하시고 능력으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위대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모세를 불러
역사의 대 지도자로 삼으신 하나님은 정말로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역사 가운데서 끊임없이 모세와 같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와 만나주시고 말씀하시고 능력으로 함께하심으로
그들을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로 만들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약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받을 방안을 생각 보세요.
*십자가의 고난은 축복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말씀: 누가복음 24: 36-53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 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마지막 말씀은 우리에게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어느 사람의 유언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의 유언을 쉽사리 잊을 수 있었습니까?
살아 있는 동안에 나눈 수많은 말들은 대 부분을 잊어버릴지라도 마지막 남긴 말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그만큼 마지막 말은 우리 속에 새겨져서 기억되고 또 기억되는 말씀이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베다니 앞까지 데리고 나가셔서 손을 들어 축복하시는 중에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과 기도는 축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시면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소원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그 복으로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축복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를 포기하시고
성육신하여 고난의 세상을 사신 목적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당하시고 자기의 생명을 제물로 주신 목적은 축복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의 열매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걸고 우리들이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따라서 가는 곳마다 축복의 자국을 남기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통하여 이웃에게 하나님의 복을 흐르게 하고자 하십니다.
수고와 고난은 축복의 수단입니다. 당신의 이웃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할 방언을 생각해 보세요.
*사랑의 축복은 고난과 희생의 열매입니다.
말씀: 누가복음 23:26-43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32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유대인 1천 명을 구출한 독일인 부부가 있습니다.
영화‘쉰들러 리스트’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오스카 쉰들러 부부입니다.
그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었습니다. 쉰들러는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던
독일 치하의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폴란드에 있는 독일군 무기 공장에서
일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1천 명의 유대인들을 이주시켜 살려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체코스로바키아에 있는 무기 공장에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는
구실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200여 명의 유대인들을 더 빼내어 1,200여 명을
체코슬로바키아로 옯겨 보호했습니다. 이 일은 생명을 거는 위험의 연속이었습니다.
1,200여 명의 유대인들은 쉰들러 부부의 고생과 수고로 전원 구출되었습니다.
쉰들러 부인은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는 고생과 위험이 연속이었지만,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나 혼자의 행복을 찾는 것보다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사는 것이 정말 우리에게 행복과 만족을 주었습니다.
그 엄청난 일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성육신하거나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죄에서 건져내고 세상의 모든 고통에서 구원해 내시기 위해
세상을 위한 존재요, 우리들을 위한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남을 위한 존재로 사셨으니
우리도 남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며 십자가의 사랑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남을 위한 존재라는 말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남을 위한
존재로 산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 사순절 묵상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