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여생은 당신의 틀 속에서 살겠소”
글 홍준식 72세. 경북 경산시 진량읍 선화리
옛말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과 싸워 이긴 성인군자가 얼마나 있을까. 나 역시 자기와 싸워 승리하는 것이 난제(難題)라 알고 칠십 평생을 살아왔다. 나는 빈민농가에서 5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열한 살 때 6.25전쟁이 나면서 형제들과 뿔뿔이 헤어져 살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버지는 지게품을 팔아서라도 너만은 공부시켜주겠다고 하셨지만, 내 나이 열두 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그야말로 절망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열여섯 살에 돈을 벌어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집을 떠나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열여덟 살 때 몸이 아파 5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홀로 있으면 외로우니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재촉에 군 입대 전 원치 않은 결혼을 했지만, 군 생활 15개월 됐을 즈음 아내마저 7개월 된 딸을 두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어미 없는 아이를 데리고 재혼을 하여 살면서도 나의 불행은 벗을 날이 없었다.
직장생활에 적응하기도 어려웠다. 예비군 창설 당시 중대장을 했던 아상과 우월감, 배우지 못한 열등감 때문에 늘 부딪쳤고, 그럴 때마다 세상을 원망했다. 아내와도 한 달이 멀다 하고 싸웠다. 가족들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무시하기도 하고 화도 많이 냈다. 외롭다는 생각에 안식처를 찾으며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세상이 싫었고, 마음을 의지할 곳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려고 야학에 입학, 65세에 검정고시를 거쳐서 한문학과에 진학했다. 야학에서 한문을 지도하고 아내와 작은 농장을 사서 채소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지내리라 생각했다.
어느 날,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내와 크게 싸웠고 결국 아내는 집을 나가 보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화가 날대로 난 나는 이참에 이혼하고 서로 편하게 살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2005년 지하철 안에서 마음수련 책을 보고는 공개세미나를 들은 후 즉시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일주일이 지나니 눈물이 흐르고 참회가 되면서 ‘내가 이 세상에 죄인이구나, 죽어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끄러워 세상에 나가기가 두려웠다. 1과정을 통과하고 아내에게 ‘40년 동안 이 더러운 인간 틀에 살면서 고생이 많았소. 남은 여생은 당신 틀 속에서 살아 줄 것이니 빨리 오십시오’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다행히 아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아내는 별 꼬라지를 다 보겠다는 듯 방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뒤따라 들어가서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가끔 화가 나면 물건도 던지며 역정을 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저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그저 참회가 될 뿐이었다. 내 말이 곧 법이라 여겨 가족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바랐던 세월들. 내 말을 안 따르면 막 화내고 물건도 던지던 내가 아니었던가. 집에 들어가면 울고 웃던 아이들도 아버지가 무서워서 갑자기 조용해지는 모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수련을 하면서 돌아보니 나의 강한 성격이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잘 참지 못하고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폭언을 했던 모습. 그래서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 모습이 내가 되어 있었다.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삶을 반복한다는 게 너무나 끔찍하다. 마음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이 지옥 같은 마음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더 젊은 날 하루빨리 마음수련을 접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지금은 청소, 설거지 같은 집안일은 거의 도맡아 한다. 40년 동안 아내가 나를 위해 옷을 빨아주고, 청소해주고, 밥상을 차려주었듯이 이제는 내가 아내를 위해 해야 할 차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불을 개키고 널면서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화할 수 있을까 스스로 놀랍고 감사해서 눈물이 난다. 이젠 화가 날 상황에도 화가 나지 않고 웃음만 나온다. 아내는 “누구 덕인지 모르지만 참 내 맘이 편하다” 하면서 행복하다고, 날이 새는 게 아까울 정도라고 말한다.
42년간 원수같이 지낸 아내와 이젠 결혼을 약속하던 날의 설레었던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완고하고 고집이 세었던 내가 변한 것을 보고 아내, 자식들, 손자들까지 마음수련을 하고 싶어 한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마음수련을 하여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 |
첫댓글 ㅇㅇ...^^
아름다운 모습이네용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