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요?
2008년, 화폐가 거대하게 몸집을 불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고 금융위기가 찾아오자 세계 각국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언 발에 오줌누기’ 정책을 앞다투어 시행했습니다.
금리를 내려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전대미문의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앞일은 생각하지 않고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위험만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거품의 붕괴를 막기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로 찍어낸 화폐는 노동자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찍어냈으면 노동자의 지갑은 두꺼워지고 경기는 살아나고 물가는 올라야 하죠.
그러나 그 많은 돈은 자본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어디엔가 또 다른 거품으로 고여있을 뿐입니다.
결국 돈을 돈으로 막겠다는 고식지계는 부메랑이 되어 더 큰 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는 우리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의 위기입니다.
모두가 움켜쥐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던 ‘돈’이 이제 우리의 생존 뿐 아니라 스스로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붕괴의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는 세대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자본가들과 제도권 경제학자들조차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측하고 있으니까요.
system risk는 이제 예측이 아니라 기정사실처럼 보입니다.
지금의 위기는 비단 못난 대통령을 뽑아 생긴 위기가 아닙니다.
대중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시리자 열풍, 스페인의 포데모스 돌풍.
영국 노동당에서는 강경 좌파 제레미 코빈이 압승했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조차 버니 샌더스가 부상 중입니다.
견고한 체제에 파열음이 들리고 여기저기 균열이 가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그럼 우리는요?
가만히 들여다 봅시다.
노오오력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흙수저론’.
‘죽창은 공평하다. 너도 한방 나도 한방’이라는 ‘죽창론’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때 보여준 대중의 분노.
학습되지 않고 조직되지 않았다 뿐이지 우리 사회에서도 균열의 조짐은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진보정당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의석 하나를 얻기 위해 합종연횡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오른쪽으로 옮겨가는 것 밖에는 길이 없습니까?
옆 사람이 낙오해도 나만 성공하면 된다는 야만의 시대, 일해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는 사회, 돈이 돈을 벌고 돈이 돈을 낳는 사회를 바꿔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우리당의 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인식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는 자본에게 위기가 닥쳤음을, 큰 흐름이 방향을 틀어 전환되고 있음을 대비하고 대중에게 알리고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우리 당은 대중에게 ‘많은 돈을 벌 기회’를 포기하자고 설득해야 합니다.
다가올 저성장의 위기로 ‘어제보다 풍요로운 내일’이 불가능하다는 ‘우울한 전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으로 현실을 탈출하는 대신 모두가 손을 잡고 연대하자고 설득해야 합니다.
대중에게 이것은 받아들이기 매우 고통스러운 것일 테며 참으로 힘든 과정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큰 일’은 사람과 돈이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더군요.
시쳇말로 ‘아다리’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아다리’가 맞아 뭔가 일이 되는 건 우연이나 행운이 아닐 겁니다.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바로 당의 역량일 것입니다.
저는 이른바 촛불당원입니다.
창당 당시 활기차고 발랄한 당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대중은 당의 이름을 연호하며 기대에 차서 몰려들었죠.
하지만 그 당시 당은 그런 대중을 받아들일 준비를 못 했습니다.
한 번은 그렇게 놓쳐버릴 수 있지만 두 번은 안 됩니다.
또 다시 찾아올 기회를 잡기 위해 참으로 바쁜 여정을 재촉해야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력이 있을까요?
저는 대중정당은 대중보다 딱 한 발짝만 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발짝을 앞서기 위해 정책과 기획이 필요한 것이겠죠.
그런 이유로 저는 ‘사회운동정당’과 ‘기본소득’을 지지합니다.
4년 전 2012년 총선 때였다면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만이 유일한 선택이냐에 대해서 확신까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쯤 됐으면 이야기해볼 만 하겠다, 잘하면 승산이 있겠다라고 판단합니다.
‘사회운동정당’과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편의 논리가 빈약하기도 하고,그 이외의 뚜렷한 대안이 발견되지도 않고요.
우리에게 보장되는 미래가 있습니까?
그 동안 얼마나 큰 무력감에 시달렸습니까. 무엇이든 모험을 걸어봐야 할 때입니다.
여러 가지 궁리를 하다가.
대중과의 거리를 딱 한 발짝으로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봤습니다.
경제 전문 심층 팟캐스트를 시작한 것이 그것입니다.
세계 경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 조금씩 대안을 말해나가는, 당원 중심이 아닌 대중 중심의 방송입니다.
실제로 진행하는 사람들은 노동당원 뿐 아니라 녹색당원도 있고 심지어 어느 당에도 속해있지 않은 사람도 있답니다.
당원들께 먼저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칭찬만 해주실까봐(!) 일반 대중의 반응을 살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제야 당게에 소개하게 됐네요.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알음알음으로 들어본 당원들은 죄다 악평을 했으니까요.)
이제 두 번째 방송이 나갔는데 첫 시작치고는 나름 반응이 좋은 편이라 고무적입니다.
아주 작은 시작이긴 하나 이 당의 체질을 바꾸는 시도라고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혁명은 ‘아다리’이고 ‘타이밍’입니다.
계속 숨을 불어넣어 커지는 풍선이 언제 터질지는 모릅니다.
지금 당장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 시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요.
다만 계속 커지고 있으며 조만간 터질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 시점을 준비하고 그 시점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당의 총의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여러 사람들과 머리를 모아 끊임없이 제안하고 많은 시도를 하겠습니다.
대중의 뒤를 쫓아다니느라 급급해 하거나 저 하늘 어딘가에서 내려다보며 훈장질하기에 바쁜 당이 아니라 대중보다 딱 한 발짝 앞서 나가며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당을 만듭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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