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동생과 스킨스쿠버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내가 7살적에.
연년생 여동생이 있었어요.
6년을 떨어져 난 외할머니댁에서, 동생은 부모님과
살았었습니다.
7살에 남동생과 두여동생 총 6섯 식구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목포 일번국도변 어디쯤 동네에서.....
엄마는 집앞 방죽(그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음)에서
빨래도 빨고, 김장배추도 씻고 했어요.
어느날 노래 잘하고 예쁜여동생과 손을잡고 시장통엘 갔더니...., 장사 하는 아줌마들이 '숙희야 노래좀 해봐라' 하니, 동생은 저푸른 초원위에를 부르고....
셀레민트껌 두개를 받아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무척 신기하고 부러웠답니다.
매일 손을 잡고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엄마가 방죽에서 빨래를 빨았는지, 설겆이를 하셨는지....., 동생은 엄마를 부르며 저보다 앞서 언 방죽으로 뛰어 갔습니다.
엄마처럼 동네 엄마들이 얼음을깨고 빨래했던 아직 덜 언 방죽모서리로.......
동생은 그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손을 뻗어 허우적 거리는 동생을 붙잡았지만 ............
오돌오돌 떨며, 아버지의오열과 늘어져 계셨던 엄마가 어렴풋 하게 기억 납니다.
깨북쟁이 어린시절에도 물은 무서움과 같은 단어였습니다. 많이 무서웠었습니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나도 물은 무섭습니다.
남동생은 구경만 하라며 절 데려 갔습니다.
바닷속을 유영하는 조카와 남동생이 멋졌지만 들어가고 싶진 않았습니다.
다이버교육을 받긴 했지만 바닷속을 들어갈 계획은 없었답니다.
들락달락하는 스킨스쿠버들이 너무 재밌어 하길래 벼르고 별러 머리만 들어갔다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는데..........
저는 죽는 줄 알았답니다.
갖은 두려움을 안고 일분, 오분, 십오분.... 삼십이분까지 물속에 있었답니다. 꼼짝않고...
강사님손을잡고ㅡ온몸을 부여잡고 ㅡ 그렇게.
남동생이 버디가 되어 팔뚝 하나를 내어주며 바닷속을 안내하는데..........
펑펑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냥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숙희, 엄마, 아버지, 어린나.....
긴시간 묶였던 기억이 풀어지는 듯.........
첫댓글 글을 읽는 저도 가슴이 메어지고 아파오는데 차차로님과 가족분들 얼마나 오랫동안 아파하셨을까요.
이제 물속을 유영하며 숙희동생이 옆에 있다 여기시고 함께 훨훨 날아오르세요.
그 연배에 스킨스쿠어 도전하신것 숙희동생분이 응원하실 것 같아요~^^
화이팅입니다~^^
물이 무서우셨군요. 저는 남편아플때 했던 병원생활이 무서워 왠만치 아파도 병원을 못간답니다. 지난주 아들녀석 신장정밀검사 받는데 체혈하는것도 못 쳐다봤어요. 아직도 병원가면 머리가 아프고 울렁거려요. 차차로님은 극복을 하셨는데 저는 아직 멀었나봅니다. 10년 밖에 안지나서 일까요?
기억의 한조각이 참 애잔합니다!
바닷속 아름다움이 차차로님을 쓰다듬어 주었기를~~~
이제 슬픈 기억을 놓고 평화를 누리세요.
이젠 마음의 아픔일랑 내려놓고 멋지고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시길 바래요~^^
에구~그런 아픈 기억이 있었네요.
저도 바다에 빠진 기억이 있어 아직 물을 무서워한답니다.
차차로님께서는 이제 극복 하셨으니 바다랑 친하게 지내셔요.^^
마음과 몸 생각에 늘 평화를 빕니다.
이제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셨으니 멋진 물과의 동행이 기대 됩니다~~
그때 그곳에서 길고길었던 트라우마를 깨고 잘하셨습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