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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트던 때
매화 트던 때
조윤수
남녘에서 매화 소식이 귀를 간질이는데, 그미는 오지 않았다. 지난가을부터 병실에 갇혀서 일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그를 본 게 지난 설날 전날 중환자실에서였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온몸에 달고 있는 각종 줄들이 그를 옭아매고 있었다. 눈물 어린 눈빛과 입 모양으로 겨우 의사소통을 하고 쓸쓸히 뒤돌아 나왔다. 과연 그 병실에서 걸어 나올 수 있겠는가?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이라 했던가. 납월매가 유난히 춥던 겨울의 고통을 이겨내고 꽃망울을 터뜨린다. 찬바람에 홍매화 꽃잎이 화사하게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긴 겨울의 추위 동안 안으로 꼭꼭 청향을 쟁였던가 보다. 매화 향이 병실에까지 날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절한 마음으로 빌어 보았다.
다음에 부산에 갈 때 오마 했던 동생은 끝내 올 수 없었다. 비보를 받은 날은 하늘이 찌뿌둥하고 저녁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꽃샘추위였다. 다음날 아침에 창밖을 보니 온 산과 나무들이 소복을 두껍게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경한 봄 설경에 오히려 아린 마음이 앞섰다. 아무리 두꺼운 흰옷이지만, 눈바람 속에서 봄이 오고 있었다. 오전에 내리던 눈발은 오후에는 비가 되어 뿌렸다. 하늘 길에서 가다 멈추고 머뭇거리며 나머지 못다 한 이야기를 그렇게 쏟아내는가. 눈발과 비속에서 내내 동생의 영혼 길에 동참하고 있었다. 발인 날은 아침부터 햇살이 산뜻하게 내리비쳤다. 동생은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떠날 수 있게 되었구나 하고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애통하지만, 우리도 그렇게 밝게 보냈다.
세상 떠나는 날은 나이대로도 아니며 누가 먼저일지도 모른다. 오 형제 중에 끝은 남동생이고, 우리 네 자매 중에서 여동생으로서 막내인 셈이다. 나는 셋째여서 언제나 그냥 실려 다녔다. 위 언니 둘과는 약간의 세대 차가 있었고, 고향 사람들과의 연락도 주고받는 사이였지만, 나와 동생은 늘 언니들 이야기에서는 해설이 필요했다. 그럴 때마다 동생은 나에게 ‘언니, 우리는 외계인 같지?’라는 말을 했다. 전국을 유람한 뒤 마지막 장소인 전주에 나를 떨어뜨려 놓고 가니 내가 더욱 외계인으로 살았던 셈이었다. 그러더니 끝내 진짜 외계로 먼저 떠나고 말았다.
매화가 피기 시작하더니 산수유 꽃 폭죽을 터트리고, 하얀 목련이 탐스러운 봉오리를 벌리는가 하면 개나리 가지가 언덕에서 손짓한다. 강가에서 눈록(嫩綠) 버들가지 실실이 하늘거리고, 벚나무는 꽃구름을 이루는 이런 봄날, 우리 자매가 함께 꽃동네를 찾아다닐 때이건만, 애틋하게 보고저워도 같이 할 수가 없다니!
인봉간난현기절(人逢艱難顯其節)이란 말이 더욱 가슴에 절절히 와 닿는다. 매화가 그렇듯이 사람도 모진 고통을 겪어낸 뒤에야 좋은 철이 드러난다는 말이지만, 사람은 끝까지 이겨내지 못하는 역경에 맞닥뜨리게 된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한다. 형태 있는 것은 그 무엇이건 아무리 노력해도 언젠가는 결국 사라지게 마련인 것을.
오 형제 중에서 동생 둘이는 6·25 수난의 역사를 힘겹게 지낸 어머니의 고난을 가장 많이 함께했다. 9·28 서울 수복 때 아버지 따라 개성까지 올라갔다가 1·4 후퇴 때 도로 부산으로 내려왔으니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통탄할 노릇이었다. 맨몸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임신 중이었고 동생은 어머니 등에 업혀서 피난 아닌 피난살이를 겪었다. 어머니가 폐결핵을 얻어서 요양 생활을 하는 동안 따뜻한 돌봄을 못 받은 탓으로, 늘 애 어른으로 살았다는 푸념을 했던 동생이었다. 나는 학업 때문에 자주 객지로 떠돌았으니…. 내가 먼저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을 얻고 동생을 대학에 인도하기도 하여 우리는 가장 가깝게 속살 이야기도 나누던 사이였다. 엉뚱하게도 전주로 시집와서 어려웠던 젊은 시절에는 동생 집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자식들이 다 성가한 뒤에는 네 자매가 자주 모여 여행하면서 지난 이야기들을 엮어가던 중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한 집에 모여서 옥신각신 살지를 못했기에 모이기만 하면 각자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이 했다. 못다 이은 이야기들이 아직 많은데 그 줄거리 끈 하나가 떨어져 나가버렸다.
사람의 약속은 이렇게 알 수가 없다. 다시 오겠다는 동생은 오지 않았지만, 언젠가 우리를 데리러 올 것이란 약속 아닌 큰 약속을 한 것이 아닌가? 우리도 그 길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일러주었다. 관념으로 알고 있던 진리가, 반드시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깨달음으로 사실과 진실로 다가온다. 이것이 바로 대신불약(大信不約)이라는 말의 뜻이리라. 큰 믿음은 약속을 하지 않지만, 반드시 지킨다. 자연은 약속하지 않지만 어김이 없다는 뜻이다. 매섭던 겨울바람 속에서도 매화는 아프게 꽃망울을 피워내지 않았는가. 언제 어느 날 필 것이란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그때가 되면 봄이 오고 이렇게 꽃피는 4월의 만화방창 한 세상을 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또 때가 되면…….
큰언니 꿈에 동생이 떠나던 날 어머니가 동생을 이끌고 가는 것 같은 꿈을 꾸었다더니. 그래 어머니를 만나서 원망도 풀어놓고 다시 어린양도 맘껏 피워보면 좋겠구나.
그랬다. 더 큰 약속과 믿음을 동생은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간 것이다. 이 엄연한 대자연의 법칙 안에서 넉넉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살다가 아름다운 마무리하고 오라고. 그미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 같아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처음 보는 봄을 맞는다. 엊그제 활짝 피었던 옥 같은 매화는 오늘 비바람에 처량하게 부서지겠다.
첫댓글 아픔을 겪으셨네요!
이벤트글로 올리셨다면 방을 옮기시는 건 어떠시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