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권태응. 권오순*
풀잎가족문학기행을 위한 사전답사
*2003년 9월 21일*
감자꽃
-권태응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구슬비
-권오순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2003년 9월 21일. 일요일 새벽이다. 04시 30분, 긴장으로 밤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선지 머리가 무겁다. 오늘은 아동문학가 권태응 권오순 문학기행을 위한 사전답사 일이다. 며칠간 준비한 자료와 권태응 동요집 <<감자꽃>>과 카메라, 필름, 필기구 등을 가방에 챙겨넣고 간단한 식사를 한다. 세안을 하고 옷을 챙겨입고 다시 한 번 간단히 자료를 검색한 후, 첫 전동차를 타기 위해 일어선다. 곤하게 자고 있는 용환이와 지환이 그리고 아내에게 미안하다. 현관의 신발들을 정리하고 밖에서 대문을 잠그고 2호선 건대역으로 향한다.
날씨가 쌀쌀하다. 가을 옷을 입고 나올 걸-- 텅빈 골목. 이렇게 혼자 떠날때면 정말 쓸쓸하고 외롭다.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오른다. 문학은 이런 것인가. 하늘을 본다. 건대역 옆 포스코건설 타워 크레인 사이로 조각달이 떠 있다. 한강을 향해 달리던 전동차의 뒷모습을 보며 강변역을 벗어나 횡단보도를 건너 동서울 터미널에 들어선다. 이른 시간인데도 충주행버스는 만원이다.
잠실대교를 건너 한강을 왼편에 두고 달린다. 강물 속 고기들도 나누어 살고 있을까. 북한강 물고기, 남한강 물고기- 답답한 우리처럼 살지는 않으리라. 하남시를 뒤로하고 중부고속도로를 달린다. 동쪽에서 퍼지는 햇살은 산들을 검게 칠한다. 그 고운 햇살이 산등성이를 넘어오면 이 쪽 골짜기들도 일어나 기지개를 켜리라. 산행을 위해 혹은 친지의 결혼식을 위해 혹은 고향을 다녀오기 위해 충주행 버스를 탄 사람들- 하나 둘 잠이들고 햇살은 반짝이며 어느 새 산등성이를 넘어 내린다. 아직도 누런색이 되지 못하고 푸른색으로 얼룩진 논빼미들- 태풍 매미의 울음이 농부들의 통곡과 뒤섞여 들려온다. 곡식이 잘 되어 풍년이 되어도 걱정, 이렇게 곡식들이 제대로 여물지를 못해도 걱정-
왼쪽 차창엔 모두 커튼이 쳐졌다. 눈부심 때문에 또는 햇살이 따가워서 잠자는데 방해가 되어서 커튼을 쳤으리라. 난 마냥 햇살을 안고 달리고 싶은데, 옆에 앉은 사람이 자꾸 이마를 찡그린다. 난 가끔 산 때문에 그늘이 질때 혹은 동쪽으로 달릴 때 순간순간 커튼을 제치고 산도 또 보고, 냇물도 보고, 나무도 보고, 풀들도 본다. 모두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아름답고 그립다.
버스는 호법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선다. 그리고 여주분기점에서 충주까지 개통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린다. 감곡, 북충주 나들목을 지나자 멀리서 안개가 달려든다. 호반의 도시 충주다. 수도권에 상수도를 공급하는 고마운 도시다. 충주 나들목을 빠져나와 조금 달리면 제천을 향해 달리는 충북선을 만나고 그 충북선의 중요역 충주역을 만난다. 탄금대는 충주역을 지나 처음 만나는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조금만 달리면 된다. 충주공용터미널은 충주역에서 달려와 처음 만난 위 사거리를 직진하면 바로 오른편에 있다. 어느 공항터미널에 온 느낌이 든다. 택시를 타고 탄금대로 향한다.
*탄금대 유래를 알리는 비
산 정상에 있는 주차장까지 올라갈 것이냐고 택시기사가 묻는다. 정중하게 거절을 하고 기본요금을 내고 차에서 내린다. 하늘이 맑다. 타박타박 걸어 오르며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고 또 하늘을 본다. 정말 맑다. 입구에 서서 탄금대의 유래를 알리는 비를 만난다. 그 내용을 읽고 있는데 어디선가 쥐 우는 소리가 들린다. 소나무 가지에서 청설모가 낯선 손님을 반기는 소리다. 숲이 낮게 흔들린다. 탄금대 유래를 다 읽고 정상을 향해 걷는다. 다시 숲은 조용하고 가을 햇살도 숨죽여 나뭇잎에 내린다. 도토리 한 알이 굴러온다. 도토리 한 알이 구르기 시작한 곳은 내가 올라야 할 길. 그런데 그 도토리는 내가 온 길을 저도 가야만 한다고 생각할까? 피식 철없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정상에 오르니 충주문화원 앞은 주차장이고 주자창 입구에 매표소가 있다. 이른 시간이라 매표소는 굳게 문이 잠겼고 운동을 하는 시민들만 오간다.
*탄금대 전경
*탄금대 공원 안내도
탄금대는 원래 대문산 혹은 견문산이라고 불리워 오던 작은 산으로 그 밑으로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며 남한강 쪽으로 기암절벽에 소나무가 우거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탄금대는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전 신라 진흥왕때에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탄주하던 곳이라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우륵은 가야국 가슬왕 당시의 사람으로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하니 진흥왕이 기뻐하며 충주에 거주케 하였다. 그리고 신라의 청년 세명을 뽑아 우륵에게 배우게 하였으니 법지에게는 노래를, 계고에게는 가야금을 만덕에게는 춤을 수습시켰다.
*팔천고혼 위령탑(충장공 신립장군)
탄금대는 임진왜란 당시 순변사 신립장군이 휘하장병 8천명을 거느리고 배수진을 친 곳이다. 격전 끝에 참패하게 되자 신립장군은 남한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열두대는 신립장군이 100척이나 되는 절벽을 열두번이나 오르내렸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뜨거워진 활줄을 물에 식혀가며 아군을 독려한 장군의 모습이 선하다.
*열두대
*권태응(1918-1951),아동문학가
*권태응 <<감자꽃>> 노래비 앞에서 필자
충혼탑, 팔천고혼 위령탑을 지나 아동문학가 동천 권태응 노래비 앞에 선다. 노래비에는 작가의 대표작 <<감자꽃>>이 새겨져 있다. 아동문학가 동천 권태응은 1918년 충북 충주시 칠금동에서 태어나 충주 공립보통학교와 서울 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를 졸업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유학 와세다대학을 중퇴했다. 대학 재학 중 이른바 치안유지법위반으로 1년간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0년 병 폐결핵에 걸려 출감 귀국한 권태응은 인천 적십자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결혼 후에도 계속 치료를 하며 1948년 12월 동요집 <<감자꽃>>을 (글벗집)에서 출간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난생활 때문에 병세가 악화되어 이듬해인 1951년 3월 28일 34세의 생을 마감했다. 1968년 5월 5일 이곳 충주 탄금대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이 작품은 일제시대 때 창씨개명 등 민족말살정책에 항거 민족의 혼을 지키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동요시로 유명하다.
자주 꽃 펴도 하얀 감자 /파보면 간혹 하얀 감자 하얀 꽃 펴도 자주 감자 /파보면 간혹 자주 감자
필자가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내용을 바꿔 보았다. 동천 선생님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어느 날 아이들이 권정생 선생님께 묻더란다. (하얀 꽃이 핀 감자를 캐 보았더니 하얀 감자가 아니고 자주색 감자라고- 왜 어른들은 거짓말을 하느냐고) 그래서 권정생 선생님이 직접 캐 보았더니 아이들 말이 맞더란다. 우리가 자랑하는 유전자 조작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냉철하게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 보아야 한다.
*들꽃 고마리
들꽃 고마리다. 대흥사로 내려가는 길 양쪽에 지천으로 피었다. 이 고마리는 도랑이나 물가에 자라는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다. 꽃은 8-9월에 피고, 줄기와 잎은 지혈제로도 쓴다. 고만이, 극엽료, 고만잇대라고도 부른다. 가을 아침, 햇살에 더 눈부신 꽃송이를 본다. 눈물처럼 아름답다.
<<감자꽃>> 노래비를 관람하고 왼쪽으로 몸을 돌려 산등성이를 타고 내린다. 매점 앞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대흥사로 간다. 바로 보이는 계단을 오르면 노송이 오붓한 숲길이다. 탄금대기비를 지나 탄금정에 오른다. 남한강이 황토물이다. 태풍의 영향 탓이리라. 걸려있는 여러 시문 중에서 홍태유 선생의 <<탄금대>> 詩를 읇조려 본다.
그옛적신공이겪었던최악의싸움 우리군사이강언덕에서그목숨다하였도다 반평생을싸움터에서끝내는얻은바없이 한목숨버림으로다한마음속서린사연 새재에뜬구름그행상장하기만하고 탄금대드리운고목울창도한데 나라일위급할때뽑아보낸장군이여 그대사랑앞에눈물과콧물흘리며 흐느껴보는것을
탄금정을 내려와 절벽 쪽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신립장군순국지지)비가 있다. 신립장군이 최후를 마친 곳이다. 바로 앞이 30여미터 높이의 절벽이다. 그 절벽위에 작은 바위 열두대- 그 바위에 올라 남한강을 본다. 강물은 무섭게 흐를뿐 말이 없다. 내 몸속에도 말없이 저 강물처럼 흐르는 그 무엇이 있을까. 가슴에 손을 대어보니 허전한 게 부끄러움 뿐이다. 그 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아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열두대를 뒤로하고 탄금정을 지나 (우륵의 탄금대) 앞에 선다. 탄주를 하는 우륵 선생의 모습이 조각 되어 있다. 남한강 강물소리와 어울어진 가야금 소리가 마음 가득 그리움으로 고인다. 우륵의 탄금대를 지나 조금 내려가면 왼쪽으로 신립장군 순절비가 있다. 바로 옆 대흥사를 다니러 온 할머니들이 날씨 이야기를 하며 계단을 내려간다. 뒷모습들이 이슬처럼 곱다. 햇살처럼 따뜻하다. 대흥사를 왼쪽에 두고 비탈길을 오르면 궁도장이다. 신립장군의 활시위를 떠난 활이 표적에 무수한 햇살로 박힌다. 문화원을 향해 비탈을 또 오른다. 밤송이를 뒤적이며 밤을 줍는다. 두 알을 주웠다. 토종 밤나무라서 알은 작지만 맛은 좋다. 문화원으로 돌아오니 문이 열려있고 김영대 사무국장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인사를 드리고 문학기행반과 동문회를 소개하고 탄금대를 비롯 충주의 문화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중에 박재륜 시인에 대한 이야기도 하신다. 충주시 가금면 가흥리 박재륜 시인의 고향이 바로 사무국장님의 고향이기도 하시단다.
박재륜 시인의 시비는 고향에도 있고 충주체육관 앞에도 있다. 사무국장님이 커피를 타 주시며 <<충주의 향토사>> 책도 한 권 주신다. 우리 방송대학 중문학과에서 강의도 하신단다. 마지막 답사지인 충주호반 권오순 노래비까지 동행해 주겠다고 하신다. 그것이 자기들의 할 일이기도 하다고 웃으신다. 문학기행을 다니면서 그 지역 문화원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모든 문화원 관계자께 감사드린다.
충주호 공원, 작은 연못 앞에 (권오순 노래비)가 있다. 연못 분수대에서 시원하게 물이 솟는다. 비상을 꿈꾸는가. 무지개가 되고 싶은가. 아주 낮은 곳을 사랑한다는 몸짓인가 아동문학가 권오순(1919-1995)은 황해도에서 태어나 해방 후 월남한다. 충북 제원에 거주 하면서 충북지역 아동문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1933년 동시 (하늘과 바다)가 (어린이)지에 추천되었고 1937년 18세 때 동요 (구슬비)가 (카톨릭)지에 발표 되었으며 해방 후 안병원에 의해 작곡 되었다. 지체가 자유롭지 못하고 피붙이가 없는 외로움 그리고 망향의 한과 불우한 환경에서도 독신으로 깨끗하고 순결하게 사셨다. 카톨릭 신앙과 농촌생활 속에서 순진무구한 동심을 노래로 아름답게 표출했다.
이슬처럼
-권오순 마리아
아침이슬 따다 묵주 만들어 이슬같은 기도 바치고 싶네 이슬처럼 살다 이슬처럼 져 천국 잔디 길에 이슬 이슬 이슬 이슬 한 알 되고 싶네
이슬처럼 아름답고 기도처럼 경건한 작가의 마음이, 눈빛이, 걸음이, 손길이 만져지네요. 천국에서 이슬처럼 아름다우리라.
*권오순 노래비 앞에서 필자
구슬비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새는 창문가에 두라고 보슬보슬 구슬비는 종일 예쁜구슬 맺히면서 솔솔솔
작은 목소리로 동요 (구슬비)를 부르며 충주호 공원을 떠난다. 일 주일 후면 또 오리라. 어린이들과 함께 오리라. 그들과 함께 (구슬비) 노래를 부르리라. 가슴이 뜨거워진다.
사무국장님이 충주공용버스터미널까지 친절하게 동행해 주신다.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거듭 인사를 드렸지만 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동시인 권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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