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5년 11월 16일 영혼육 환경 치유 간증문 > 장선령
기도치유 아카데미 9기, 특강반 5기를 졸업한 충만 교회 사모 장 선령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교회를 갔고 중 3 겨울 방학 때 성령 체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 불같은 소원이 일어나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심방 전도사로 일을 하다 중매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2000년 11월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충만 교회에서 남편과 함께 단독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남들 목회 하는 걸 보니 놀고먹는 것 같고 목회하기만 하면 부흥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었습니다.
목사와 사모의 말 한마디면 모든 성도가 100% 순종하고 따르리라 의심치 않았습니다.
마을과 지역이 변화되기는 순식간이고, 한 번 나온 성도는 죽기까지 함께 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보다 더 큰 환상은 없었습니다. 목회 시작은 곧 성공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났습니다.
5, 6년은 애 낳고 키우다 보니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당시 60세 넘은 세 분이 청소며 김장이며 제초작업이며 놀라울 정도로 잘해 주셨습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한 겨울 눈도 치워지고 새벽 3시 반이면 오셔서 불도 켜고 기도하셨습니다.
머리 하얀 성도들만 있다가 어느 날 새로운 성도들이 꾸준히 들어오고, 암 환자로 인해 온 가족이 출석을 하고, 읍내에서도 성도들이 들어오니 신바람이 났습니다.
뱃속 아이부터 청년, 장년까지 또 천국가시는 분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교회는 행복했습니다.
교회 안은 리모델링이 되고 사택은 지어지고 식당도 생겼습니다. 부러울 것 없이 잘 나갔습니다.
성도에게는 권위 있고 힘 있는 사모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궂은일을 하며 자리를 지키던 어른들이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마을과 읍내 사람들 간의 갈등, 젊은 사람들 간의 시기 질투로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목회자와 사모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더니 성도들의 마음이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이 되는 어느 날 그렇게 충성하던 부부가 교회를 훌쩍 떠나 버렸습니다.
이듬해 장로님 부부가 수상하더니 떠났습니다. 성도가 교회를 떠나는 것은 팔 한 쪽을 잘라내는 아픔이었습니다. 눈물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성도가 하는 말에 어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억울해서 눈물이 납니다. 아픔을 준 사람이 생각나 원망하며 울었습니다. 사택의 모든 문을 잠그고 울고, 교회 가서 찬송하며 울고 호소하며 기도했습니다. 성도에 대한 마음이 닫히고 입이 닫혔습니다. 기쁨과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은 “두 겹 세 겹으로 묶였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움츠러들었습니다.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 가도 위로 받기보다는 나의 잘못으로 지적을 당하기만 했습니다. 병들어 해부된 짐승의 상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꿰맬 수도 없고 고치자니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날 위해 눈물로 기도하지만 목회자와 교회를 안고 함께 아파하며 기도할 힘도 없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교회의 문제를 나누고 기도하며 힘이 되던 성도마저 떠나버렸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소망 없이 지낸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2012년 제 1회 사모 기도치유 인텐시브를 만났습니다. 무료 세미나였습니다. 환경치유에 대한 주제로 2박 3일 동안 열렸습니다. 장요한 목사님의 설교는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며 서서히 기도치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 때 당시 아직 복음화 되지 못한 가정의 부끄러움은 벗을 수 없는 저주라고 생각했던 올가미가 벗어졌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조상대대로 지켜오던 제사를 폐하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또 1년이 지난 올해 가을 저의 친정아버지가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가셨습니다.
9기 첫 강의가 시작 되던 날 저는 두 가지 꿈을 꾸었습니다.
① 헌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도 살지 않아 폐허가 되어 버린 그 집은 거미줄이 끼어 있고, 지붕도 꺼지고 흙 담이 다 드러난 상태였습니다.
또 하나는
②까만 기와집 한 채가 있는데 그 집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이 툇마루 한 곳만 겨우 괜찮은 정도였습니다. 그 집은 잡초가 우거지고, 소도 없는 빈 마차가 마당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아무도 오갈 수 없게 된 그림이었습니다. 두 가지 모두 내 영혼과 사역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꿈은 인턴 반 강의를 들을 때 비로소 해몽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꿈을 꾸고 어쨌든 기도치유 모임이 있는 서울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로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3시간 걸려 이 곳을 다녔습니다. 강의와 집회가 거듭 될수록 나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기도하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초라한가. 버려야 할 것도 변해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시골 교회는 날 풀리면 잡초가 납니다. 풀을 뽑으며 한숨 쉬고, 나물을 캐면서도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하며 절망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아이고 하나님 언제 좋은 목회지로 옮겨주시렵니까” 하면서 신세를 한탄하며 살았던 것이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치유 집회 시간 마다 하나님은 나를 만나주셨습니다. 요란스럽게도 치유집회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원장님의 지식의 말씀은 모두 나를 위한 것이었고 한 순간도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육체의 치유를 경험 했습니다. 결혼하기 전 언제부턴가 자꾸 눈썹이 빠졌었습니다.
그런데 집회 시간에 원장님께서 “눈썹이 빠지던 사람이 치유 되었습니다.”고 할 때 저 말씀은 내게 주시는 것이라고 믿어졌습니다. 그 후 눈썹이 빠지지 않습니다. 중 3 때부터 아프던 무릎 관절을 치유 받았습니다. 어깨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심장이 가끔씩 철렁 내려앉는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행주를 짜기도 힘들던 손목이 치유 되었습니다. 최근 6개월 동안 아팠던 목과 어깨가 나았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살던 것들이 치유되고 보니 그 모든 것들이 질병이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셨구나. 병든 나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셔서 쓰시기 원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 영광을 선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나도 가기 원하셨습니다. 주님의 손에 들려졌던 오병이어처럼 드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교회와 사택 주방에서만 살던 나에게 새로운 무대가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특강반을 마치며 강의할 기회들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아직도 남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바로 혼적인 질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깊은 두려움과 불안, 초조함 낙심 패배감 분열 원망 불평 시기심이 내 안에서 요동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씩 풀어질 때마다 내게 밀려오는 기쁨과 소망 그리고 자유함은 아주 거대한 것이었습니다.
우연히 온 것 같은 기도치유였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 혼 육 환경을 붙들고 계심을 믿습니다.
또한 온전치 못한 나를 사용하시며 기뻐하시고 응원하심을 느낍니다.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도 하십니다. 우리 함께 영 혼 육 환경 치유를 통해 감추어진 보화와 보석들을 캐내길 원합니다. 못난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죄와 질병 그리고 저주와 사망의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도록 우리를 회복시켜 주심을 찬양합니다.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는 자가 되게 하심에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