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골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그건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것도 강원도 설악산을 향한 출발이다.
주전골....
철이 많은 지역이라 위조주화를 만들던 곳이라고 주전골이란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선수들이 자주 와야 함직한 이름의 골짜기.
홀림골인지 흘림골인지를 향해 렌트카를 타고 대장님을 비롯,
미리내님, 소호님, 여우님, 엘리스님 그리고 나는 12시가 돼서야 산
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인제의 신남이 가까운 곳에서 푸짐하게 먹은 아침, 보리 비빔밥알이
다시 밭으로 가려고 뱃속에서 궐기를 하는지 곤두선다.
삐죽삐죽 솟은 바위봉우리.....
아, 어느 산에서 저렇게 섬세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적 자태를 볼 수 있으랴.
겨울이면 겨울, 여름이면 여름..... 또 가을은 어떻던가.....
한 바위봉우리를 접수한 우리의 감격은 낱낱이 디카에 적혀졌다.
팔목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끌어 올리는 일이야말로 아짐씨들에게는
적잖은 고역이지만 이까짓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바위에 올라서서
둘러보는 한계령..... 태고의 자태가 그대로 간직돼 있다.
바람이 불어온다.
오오츠크를 달려와서 속초 앞바다를 거친 실바람이 한계령을 휘돌아
우리에게 불어온다.
하늘보다 더 높이 솟은 까마득한 바위벼랑 아래로 흐르는 저 물줄기.
손이 시렵다. 무색투명한 샘물은 아득한 원시의 아침이 묻어있다.
흘림골을 넘어서 계속되는 골짜기의 하행길은 황홀하다 못해 차라리 고문이었다.
하루 길이의 산행이 이리도 빠르게 지날 수 있단 말인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보다 곱다.
쉴 새 없이 재깔이며 우리와 동행하는 저 여인의 품에 윗옷 아래옷 다 벗고 풍덩
뛰어들고 싶은 유혹은 어쩌랴.
주전골이다.
용소폭포를 넘친 물에 산천어가 유영을 한다.
모자도 벗고, 배낭도 벗고, 신발도 벗었다.
그리고 먼 길 달려온 우리의 피로도 벗어 물가에 놓았다.
물에 잠기고 싶다. 주전골의 저 바위숲으로 녹아들고 싶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해는 서산으로 저물어 가고, 주위는 어둑어둑 산그림자가 밀려온다.
용소폭포.... 저 수천 배럴도 더 되는 맑은 물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저 깊은 폭포의 동굴을 더듬어 내려가 보고 싶다.
우리의 차는 하조대로 달렸다.
해수욕장은 아직 한산하다.
하조대 산봉우리 사이로 저녁달이 뜬다. 보름달이란다.
우리네 여인들의 얼굴도 보름달 마냥 고웁다.
한 주일 후면 이곳은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으로 변할 것이다.
주전골....
언젠가 다시 한 번 또 오고야 말리라는 굳은 결심을 한 사람들을 태운
우리의 차는 서울로 달리고 또 달렸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열두시가 가까이 되었을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