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0일 5차 생태영성 공부모임 나눔
“한국 교회의 생태 복음화 역사”
찬미 예수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어느새 10월 중순입니다. 지난 10일, 11일에는 안동에서 창조보전전국모임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10일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강연을 하고 한순희 수녀님의 따뜻한 강의를 들었답니다. 요가 체험도 하고 가모메 식당 이야기도 보았어요. 사람들과 함께 살 줄 아는 영을 만나서 참 좋았답니다.
다음날 일찍 절 기도를 하고 낙동강을 따라 순례하고, 저는 조금 걷다가 차로 움직였어요, 부용대에 올라 주변을 살펴본 다음에 미사를 드렸어요. 그리고는 배를 타고 하회마을로 가서 그곳을 둘러보았어요. 부용대에 오를 때는 경산성당 윤석준 형제님이 손을 잡아 주셨고, 하회마을에서는 한 수녀님이 힘이 되어 주셨어요. 제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그분들이 함께 동반하면서 하도록 해주셨는데, 역시 사는 것은 받아서 사는 게 맞아요. 부용대 절벽 좁다란 길을 따라 걷던 수녀님들을 보면서 바닥이 무엇인지 다시 절감하였습니다. 부용대 돌산을 돌아 흐르는 낙동강을 보면서 물이 어떻게 부용대를 아름답게 하는지 다시 물이 바닥이 되어 주는 법을 묵상하였답니다. 원래는 12일까지였는데, 저는 다섯 시 기차를 타고 원주로 돌아왔답니다. 이동훈 신부님이 차를 태워 주셔서 역에 잘 도착하였답니다.
부용대를 오르고 하회마을을 돌아보았더니 몸이 아프긴 한데, 가볍더라구요. 자주 걸어야겠다 생각은 하지만, 잘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좀더 잘 해봐야겠다 마음 먹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그분의 도우심 안에서 아름다운 가을 날들 맞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올해 5차 모임을 20일 월요일에 배론에서 11시부터 갖게 되었습니다. 부디 오셔서 함께 축복과 비전을 나누는 충만한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번 모임 때 마지막 모임을 어떤 방식으로 가질지 제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작년에처럼 공개 나눔을 갖는다고 하면 어떤 주제로 어떤 분들이 나누어 주면 좋을지를 생각해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가지 앞으로는 매년 말에 공개 나눔을 가지면서 공부모임과 연구원이 함께 <벌레들의 합창>(가제)이라고나 할까, 자료집을 좀더 잘 준비해서 간행물을 내면 어떨까 싶습니다. 여기에는 참여하시는 분들의 묵상과 소식, “기도 안에서 자라는 사랑”(자신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하는 기도와 청하고 싶은 기도를 나누는 공간)과 같은 난을 통한 기도 나눔 등이 포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에 관해서도 좋은 의견들 나누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그럼, 20일에 기쁘고 복된 나눔 함께 이룰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분의 도우심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원주에서
황종렬 올림
2008년 10월 20일 5차 생태영성 공부모임 나눔
“한국 교회의 생태 복음화 역사”
기도: 땅성을 기억하며
인사와 생활 나눔
붇다는 흙을 집어들어 제자들에게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제자들이 “흙입니다” 하고 답하자, 붇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닙니다, 이건 생명체입니다, 중생입니다.”
한 환경운동가가 무씨를 뿌렸다. 몇 달이 지난 뒤에 자란 무를 뽑게 되었다. 그때 무가 뽑힌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아! 무가 흙을 먹고 자랐구나. ... 우리는 흙을 먹고 사는구나.”
흙이 무뿌리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버티면, 무는 죽는다. 하지만 역으로, 흙이 그렇게 자기 자리를 고집하는 한, 흙은 영원히 흙일 따름이다. 무의 생명에 참여할 기회를 잃고, 무를 통하여 인간 생명체와 교류할 기회를 잃고, 인간 생명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하느님과 교통할 기회를 잃고 만다.
그러나 흙은 하느님에게서 왔다. 그리하여 하느님에게서 온 창조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자기 자리를 내주었다. 자기 자리를 내준다는 것은 자기를 내준다는 것을 뜻한다. 자기를 내주는 이 마음을 읽을 줄 알 때, 흙이 무엇인지를, 그것이 왜 생명체인지를, 그것이 왜 생명체의 어머니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흙은 생명의 씨에게 자기를 비워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자기 품에 안긴 생명의 씨가 그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와 우주에 생명의 길을 열어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십자가의 케노시스를 닮았다.
우리는 흙을 딛고 흙에 안겨 흙을 먹으며 산다. 흙이 무를 통하여 생명으로 매개되는 것을 보았는데, 붇다는 이 매개 없이 바로 흙을 생명으로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흙을 노래하며 사는가, 아니면 착취하며 사는가? 흙을 닮아 자리를 내어 주며 사는가? 흙을 닮아 너를 너로, 무를 무로 살아가게 하며 사는가? 아니면, 자기 자리를 고집한 채, 무씨를 짓누르는가? 하느님의 살리시는 손길을 매개하는 저 흙은 무에게 구원의 원천이다. 자기를 내어주는 저 흙의 품을 떠나서 무가 이번에는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흙에서 자기를 내어주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런 취지에 따라 인간과 자연과 문명이 한데 어우러져 하느님의 생명의 다스림을 더욱 더 아름답게 증거하고 찬양할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생태 복음화, 생태 사도직에 비추어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아래에서는 먼저 이땅에서 이루어진 생태 복음화를 위한 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검토하기로 한다. 여기에 이어서 오늘 이 시대에 구체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모델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생태 복음화와 사도직의 여정을 통하여 우리 교회가 자기가 누구를, 누구의 어떤 태도를 닮은 존재로 살 것인지를 성찰하는 충만한 은총을 넘치도록 체험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생태 복음화 운동의 역사
1. 생태 복음화 운동의 현재: 기존 활동에 대한 비판적 인식
2. 생태 복음화를 향한 여정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농촌 살리기운동
원주교구 농민사목
한마음한몸운동과 하늘·땅·물·벗 운동
(가톨릭교회의 생태복음화-패러다임과 모델 연구, 101-130쪽 참조)
나눔
막힘과 돌파의 여정-“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의 씨앗”임을 기억하면서
-누르면 옆으로 퍼져 나가고 퍼진 자리에서 다시 뿌리 내려 자라 오르는 사람과 생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