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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지 않았던 ‘서울페스티벌 무산’ 민사소송
블로그에서만 2010/05/01 15:55 http://blog.hani.co.kr/catalunia/30529
법원이 자난 해 5월 2일 하이서울페스티발을 방해한 혐의로 시위대 9명에게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에 2억여원을 배상하라"고 지난 4월 29일 판결했습니다. 시위대 일부가 단상을 점거해 이날 페스티발 개막행사를 중단시켜버렸던 일을 두고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민사 소송을 건 것에 따른 판결입니다.
대부분 언론들이 간략한 수준에서 이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별 생각없이 보면, 이 판결은 상식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피해를 줬으니 배상하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실제 서울시는 공들여 준비한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행사가 중간에 중단된 것 때문에 손해를 본 것도 사실일테고,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린 9명의 시민이 무대에 올라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렇게 단순하게 보고 넘길 사안이 아닌 것 같아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서울시의 이번 소송은 적절하지도 않을 뿐 더러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된 시민들이 이날 시위를 주도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들은 당시 행사장 무대를 점거한 여러 시민들 중 경찰에 연행돼 형사처벌 받은 시민들입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이들 9명 중에는 일반 대학생도 있고 어쩌다 이날 무대 점거에 함께 한 노숙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들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습니다. 정작 시위를 주도하고 무대를 점거하도록 지시한 지도부에는 소송을 걸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민사 소송이라면 시위 주최자를 찾아 소송을 걸어야 했을텐데 서울시는 왜 단순참가자들만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소송인데 말입니다. 그날 행사장 무대를 점거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경찰에 연행된 사람들한테만 모든 배상 책임을 지라는 건 말이 안되지요.
여기에 서울시의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는 하이서울페스티발 행사가 무산된 데 따른 손해를 감당하기 위해 민사 소송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시위 단순참가자들도 이렇게 무거운 민사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의 시위를 예방하려 한 듯 보입니다.
이게 바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형적인 '전략적 봉쇄소송'입니다. 최근 미국에서도 이게 굉장히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영어로는 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이라고 불립니다. 공공의 참여를 저해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를 보면, SLAPP 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SLAPP은 비판이나 반대를 포기할 때까지 법적 방어 비용을 부담지우는 방법으로 비판자들을 검열하고 위협하며 침묵을 의도하는 소송이다. 승소는 SLAPP를 제기하는 자의 필요적인 목적이 아니다. 원고의 목적은 피고가 공포, 협박, 늘어나는 소송 비용 또는 소모전에 대한 굴복 및 비판을 포기하면 성취된다. SLAPP은 또한 다른 이들이 토론에 참여하는 것도 위협한다. SLAPP은 종종 법적 위협으로 행해진다"
이게 왜 문제냐면, 아직 우리나라 재판부가 이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여 '전략적 봉쇄소송'을 다른 잡다한 민사소송과 마찬가지로 그냥 평범한 소송처럼 생각해버리고 판결을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전략적 봉쇄소송'이 마치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광우병 쇠고기' 발언을 한 배우 김민선씨가 쇠고기 수입업체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린 것이 바로 전형적인 전략적 봉쇄소송입니다. 쇠고기 수입업체들은 아마도 이 소송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애초부터 이기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이번 소송으로 김민선씨에게 정신적 압박을 가하고, 이것이 여론화 되어 촛불시위를 위축시키려는 것이 더 근본적인 소송의 목적이었을 겁니다.
이 외에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참여연대에 대한 경찰 및 광화문 주변 상인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PD 수첩 제작진에 대한 형사고소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애초부터 소송의 승패여부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여론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진행한 소송들이지요.
미국에서는 이 전략적 봉쇄소송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를 반대하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고요.
우리 사회도 이제 이 음흉한 소송의 실체를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한 시민이 '전략적 봉쇄소송'을 비판하는 옷을 입고 시위하고 있다.
글을 마치며, 이런 말씀을 덧붙여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해 5월 2일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식 중단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촛불 1주년 행사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무리한 행동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관련한 분들은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는 반복되선 안될 일입니다.
그러나 이날 경찰이 청계광장에서 촛불1년 행사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던 점. 경찰이 이날 무리하게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을 서울광장으로 몰아버려 페스티벌 행사장에 혼란을 가중시킨 점. 5월 2일은 '촛불 1주년' 기념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서울광장에서 행사를 강행한 서울시. 모두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불행한 사건이었습니다. 시민 9명에게만 책임을 물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