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에서 용역업체 직원들과 해군, 경찰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입니다.
용역업체는 해군공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해군의 꼭두각시가 되고 경찰의 방패막이가 됩니다.
그 중에 한 친구! 우리들을 못살게 굴기도 하고 마을 청년들과 실갱이도 있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얼굴이 까맣고 배는 통통하고 가끔은 못된짓을 해서 미웠던 녀석이었습니다. 2년 전에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이 친구도 강정을 떠났고 모두들 까맞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비오는 깜깜한 밤 군관사 천막 앞의 난로가에 살며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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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고위원장님은 피곤해서 천막에서 쉬고 난로에 장작을 넣고 있는데 렌트카 차량이 멈춰서더니 한 사내가 인사를 합니다.
낮이 익은 용역 친구인지라 묘한 기분으로 담배 한대 피고 가라고 하고 난로에서 장작을 꺼내 담배불을 붙였습니다.
'추운데도 다들 여전하시네요. 강정에 있을때 만났던 아가씨인데 얼마전에 결혼했어요. 마을도 궁금하고 신부님들도 뵙고 싶어서 신혼여행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이곳에서 했던 짓을 생각하니 신혼여행길에 들렀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2년전에 용역업체가 바뀌고 그때 강정을 떠나서 육지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니까 이곳에 있는동안 선생님들 힘들게도 하고 저도 힘들었던 기억이 가끔 나더라구요. 오늘 신부님이랑 지킴이들 보니까 참 힘들텐데도 여전하시네요. 우리들이나 경찰들이 못할 짓 참 많이 했었는데요. 그래서 우리도 선생님들한테 많이 혼나기도 하고 욕먹기도 했었구요. 용역업체 직원 입장에서 보면 다른곳보다 강정은 많이 힘든게 있기는 했어요. 용역업체는 돈되는 업체나 돈많은 사람을 지키는게 일반적이라 싸움을 하더라도 상대방 직원들이나 깡패들하고 치고받고 그러거든요. 심하게 맞고 다칠때는 화도 나지만 때리거나 상대방이 병원에 실려가도 별로 미안하거나 심적인 부담감은 없거든요. 그런데 여기 강정마을은 무슨 깡패들이나 건달들도 아니고 주민이나 성직자나 지킴이나 그냥 일반인들하고 부닥치는 일들이라 그게 기분이 좀 묘해요. 무슨 힘을 쓰는것도 아니고 그냥 몸으로 막아서고 이런저런 말로 설득하잖아요. 거기에다가 경찰이나 우리가 힘으로 대응하는게 좀...'
작은차 타고 다니면서 핸드폰으로 영상 찍던분 잘 있냐면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아마 방은미 선생님인듯...
'그 여자분이 저를 많이 혼냈는데 강정 생각하면 그분 생각이 가끔 나요.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군인을 상대로 술집이 들어설거고 술집이 생기면 여자들이 따라올테고 그러면 용산미군기지랑 이태원이랑 똑같아질거라고 했거든요. 서울에서 살기도 하고 그곳에서 용역일도 했던 적이 있어서 강정마을이 꼭 이태원같지는 않겠지만 아마 비슷해질것같은 생각이 들긴 해요. 집안 어르신이 해군 장교였고 동생이 해군 하사관 출신이라 지금도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기는 한데 마을에 들어서는건 좀 그런거 같아요. 마을 아닌곳에다가 만들면 그런일 없이 피차 좋을텐데'
못된 짓을 했던 친구라 그런지 좀 의외였습니다. 차에 임신한 아내가 있어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아내도 이곳에서 만났는데 그때는 해군기지 사무실에서 업무 보는 여자였어요. 2년전에 저희 업체가 해군이랑 선생님들한테 비판을 많이 듣고 그래서 용역업체 자체가 바뀌었잖아요. 그때 강정에서 함께 육지로 떠났고 저는 한동안 용역 일을 더 했어요. 아내가 임신하고나서 아이가 생기니까 사람때리고 상처주는 일 이제는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때려치웠습니다. 지금은 자동차 파는 일 하고 있습니다. 결혼했는데 아내가 임신한 상태여서 비행기타고 제주도까지 오는게 힘들었는데 둘다 강정마을에 꼭 들르고 싶어서 왔습니다. 오니까 참 좋긴 하네요. 신부님들이나 지킴이들 보려고 낮에부터 차를 타고 강정마을 돌아다녔는데 공사장정문에도 사거리에도 안보여서 못뵙고 가나 아쉬웠어요. 아까는 군관사 천막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그냥 지나쳤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조금 한산해지고 사람도 많이 없어서 들렀습니다.'
남자는 아내와 아이가 생기면 철든다는게 맞기는 한가 봅니다. 사랑이 답인것만은 사실인것 같습니다. 고위원장님께 인사드리라고 했더니 천막으로 들어가 반갑게 인사합니다. 고위원장님은 강정이 지킴이들이나 용역들이나 사랑을 만들어주는 마을이라면서 일 그만둔것은 잘했다고 합니다. 용역 친구랑 난로가에서 담배 한대를 더 피우고 가는 길에 차에 타고 있는 와이프한테 말했습니다. 강정 빨리 떠나서 신혼여행 재밌게 보내라고, 애기도 이쁘게 잘 키우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수줍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작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고맙습니다. 추운데 힘내세요.'
고맙다는 힘내라는 말이 오늘따라 묘합니다.
첫댓글 가슴이 찡합니다.... 사람 본심은 다 같은데.... 돈이 사람을 만들고 있으니...
지금 이 나라는 모든 가치들이 죽고, 오로지 '돈' 하나만 남아서 무소불위의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