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페이지 맨 밑에 행사발언 기록을 추가 업데이트하였습니다. 기록,정리하여주신 류복희 선생님께감사드립니다.
“대정 사람들은 전쟁에 동원된 아픈 역사를 넘어 난개발과 군사화, 군사기지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알뜨르에서 난징을 기억해야 하는지, 알뜨르 비행장 일대의 장소성과 전쟁과 평화에 관한 제주의 역사성 등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행사가 이어집니다” (관련 링크 가기)
83주년 난징대학살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알뜨르에서 보는 난징 첫번째 행사, 영상상영회가 잘 끝났습니다. 2020년 10월 31일 (토) 7시, 대정 웅비관에서 열린 이 행사는 시작인사-난징추모제 소개-애국자가 없는 세상 공연 소개-상영회 영상 소개-소감 나누기 진행-마무리 인사로 진행되었습니다.
대정의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시대 일제해군에 의해 건설된 곳으로 중일전쟁 당시 중국의 난징과 상해 폭격의 중간 급유지이자 폭격 출발지이기도 했습니다. ‘제주도로부터의 난징 공습은 36회, 연 600기,투하 폭탄 총계는 300톤에 이르고 난징의 많은 시민이 살상’되었습니다.(참조:조성윤,난징대학살 77주년 추념 비무장평화의 섬 선언대회 6차심포지움 자료집, 2014,12,13 )
제주의 우리는 알뜨르 비행장이 그러한 학살의 발원지 였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당시 수만의 제주도민들이 일제에 의해 비행장 등 일제군사진지 건설에 강제동원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알뜨르 비행장이 연루된 난징대학살에 대해서, 난징의 고통에 대해서 거의 묻지를 않습니다. 83주년 난징대학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난징대학살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질문하고자 영상 상영회를 열어 친구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우리가 같이 본 영화는 '난징대학살_잊혀진 홀로코스트'로 2005년 MBC 창사 특집다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본 것은 그 1부인데 여러분도 유튜브로 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iCZQDT6mjvU)
행사 이후 우리는 소감을 같이 나누었고 11월 28일 잡담회, 그리고 12월13일 추모제에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행사 준비에 같이 애써주시고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사주최는 대정여성농민회, 비무장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 사람들, 송악산개발반대위원회, 평화의 바다를 위한 섬들의 연대이고 .현재까지 후원해주신 분은 강정국제팀, 강정친구들, 개척자들,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 핫핑크돌핀스, 권태원, 고길천, 한은정님등이십니다, 고맙습니다.12월 13일추모제이후 후원인과 후원 금액을 일괄 공개할 에정입니다. 10월 31일 행사 준비와 후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회: 황현진
인사말:김정임
난징추모제 취지 소개: 최성희
공연: 조약골 (1곡: 애국자가 없는 세상)
마무리 발언:김형자(대정여농)
기타 준비물: 현수막 고정 청테잎, 가위, 온도계, 소독제, 방명록, 노트북(영상파일), 리모콘 건전지, 마이크 스텐드 2개, 포스터, 행사장용 현수막(김정임)
발열체크 및 방명록 작성 안내: 대정여농
간식: 찐고구마(여농)/귤(공소회장님)
책걸상 배치: 카레, 다같이
행사장내 현수막 부착: 하띠, 다같이
테크니션: 이성준
행사 사진기록: 엄문희
행사발언기록:류복희
운전:하띠,카레
후원: 빵(김선)
물품 후원: 공소회장님, 카레, 어나더 페이지
(아래 사진:황현진)
(아래사진:엄문희)
~행사 발언 기록
(기록: 류복희)
1. 개회인사; 김정임
알뜨르가 대정에 있는데,지역 주민들이 주최가 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송악산 난개발 싸움이 3년째 되어가고 있습니다.
몇일전 원희룡 도지사가 난개발에 대한 발표를 한다고 할 때 기대를 했었는데, 특별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부영호텔 짓는 것에 대해선 간신히 막았지만, 중국인에게 넘어간 땅을 어떡해 돌려 받을지…중국 자본들의 대거 유입을 어떡해 막아내야할지.. 대정의 미래를 어떻게 대정주민들이 만들어 갈지…많은 숙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연대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제주의 평화가한반도의 평화로 동북아의 평화로 세계평화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대정은 일제시대부터 투쟁의 역사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알뜨르의 지역성과 역사성은 대정의 주민들을 깨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취지발언: 최성희
2014년 처음으로 난징 학살 추모제를 시작했습니다.
2014년은 중국에서도 처음으로 난징 추모제를 시작한 해입니다. 사실 저희는 그래서 시작한 것은 아니고, 그해에 난징을 갔다온 대만친구 에밀리가 난징을 방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에밀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자신을 성찰하며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알뜨르에서 거쳐갔던 비행정들로 난징에서 무엇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성찰이 추모제를 시작하게 했습니다.
첫회에 눈보라를 맞으면서 많은 분들이 육지에서까지 찾아와 주었습니다. 난징에서 온 방송국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를 해 가셨습니다. 캐나다에 사시는 일본분이 오셔서 놀라셨다고 합니다.직접 가해를 한 것도 아니면서 이러한 성찰을 하고 난징을 기억하는 추모제를 지낸다는 것에 크게 영감을 얻었다 하시면서 캐나다로 돌아 가셨는데,그 후 매년 난징 추모제를 캐나다에서 열고계십니다.
왜 우리는 알뜨르에서난징을 기억해야 합니까?
현재의 난징은 지금 어디일까요?
호르무즈 해협으로, 하와이로, 우리의 군함은 파송되어 바닷속 뭇 생명들을 죽이고 있습니다.역사적인 성찰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어떠한 학살에 동원될 수 있습니다.
아래의 시는 2014년 난징대학살77주년 추념(비무장 평화의섬 선언대회 6차심포지움) 때 김수열 시인이 읽으신 것입니다.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김수열
일찍이 어느 시인이 말했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일본 군부가 오끼나와를 조선의 성노예를 반성하지 않고
우리 군부가 제주4·3을 강정마을을 반성하지 않고
반성을 모르는 일본은 그래서 절망이다
반성을 모르는 우리는 그래서 절망이다
절망은 더 큰 절망을 낳고
절망이 낳은 더 큰 절망은 거짓을 낳고
거짓은 더 큰 거짓을 낳고
거짓이 낳은 더 큰 거짓은 폭력을 낳고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고
폭력이 낳은 더 큰 폭력은 광기를 낳고
광기는 마침내 아무렇지도 않은 학살을 낳고
그런 학살이 낳은 더 큰 학살은 마침내 집단학살을 낳고
오끼나와가 그랬고 제주4·3이 그랬지
중국 난징이 그랬고
베트남 중부 썬미가 그랬고 빈호아가 그랬지
하지만 우리는 알지
제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은 절망의 끝에서
새로운 희망을 본다는 것을
그리하여 학살에 대한 성찰은 생명을 낳고
생명에 대한 성찰은 아름다운 평화를 낳고
평화가 낳은 더 큰 평화는 화해를 낳고
화해가 낳은 더 큰 화해는 참된 진실을 낳고
진실이 낳은 더 큰 진실만이 사랑과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먼 훗날 어느 시인은 말하겠지
희망은 그리고 사랑은 죽는 날까지 제 자신을 돌아보고 돌아보는 거라고
3. 영상 끝나고 나눈 소감들
신도리 부녀회장님
‘크고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데 그곳이 이런 끔찍한 일을 벌어지게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장소를 자세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준묵
이 영상을 본 방송으로 봤는데..정말 이 시대의 난징이 많다고 생각한다.쌍용,평택,군산…
민영선
젊은 작가가 저렇게 힘들게 과거를 기억해 냈는데…일본군이 정말 오만 나쁜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리리스 장의 어머니가 슬픈 역사를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 다고 하는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비콜
저는 전문가도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것이 중국인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도 아닙니다..그냥 제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중국에서 함께 공부한 친한 친구가 난징 출신인데, 그 친구는 정말 일본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자주 말합니다. 그 친구을 좀 더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고,,,,슬픈 현실을 소환해 낸다는 것이 우리 자신이 경각심을 갖게 하고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그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 난징 사람들의 아픔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다는 마음이 듭니다.
최성희
1937년 12월 13일 난징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주의 알뜨르 비행장의 공습에 대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조성윤 제주대학 교수님이 2014년 난징학살 77주년 추념 심포지움에서 하신 발언의 한 부분입니다.
“제주도로부터의 난징 공습은 36회, 연 600기, 투하폭탄 총계는 300톤에 이르고, 난징의 많은 시민을 살상됐다. 그러나 1937년 11월에 일본군이 상하이 부근을 점령하여 그 곳에 비행장을 마련하면서 오무라 해군항공대의 본거지는 상해로 이동하였다. 본거지 이동 후,제주도는 다시, 조용한 섬으로 돌아갔지만, 제주도 항공기지에는 오무라 해군항공대의 연습 항공대가 설치되었다. 제주도에 주둔한 오오무라 해군항공부대는 모슬봉 앞 지금의 해군 9506부대의 자리에 위치하였다” (* 인용은 정리자에 의해 후에 추가보충됨)
난징의 공습은 기술이 발달되지 못한 시대에 일본인들이 이룬 쾌거로 그들에게 기억되지만 공습을 당하는 난징의 시민들에게는 미증유의 고통이었습니다. 난징 박물관의 공습때의 화보집을 보았는데요. 할머니와 손자가 공습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모습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과 관련하여 대정 주민들의 강제 노역으로 만들어진 이 비행장이 어떤 과정에서 만들어 졌는지 그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1월 28일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카야
난징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2014년 에밀리와 함께 저도 난징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도 갔다왔습니다. 두번 갔을 때 모두 일본 시민단체들이 와 있었습니다.그들은 정부입장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그러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그리고 난징학살 있었을 당시 살아 계셨던 분들의 이야기도 정말 의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분들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이제 정말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들은 없게 될 것입니다.대정에도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다면 잘 들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4. 마무리 인사; 김형자 대정여성농민회 회장
이 행사에 국화꽃을 보내는 정도의 소극적인 참여를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조금 더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농사 짓다보니 참 시간을 잘 못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영상을 보면서 장개석이 수도를 버리고 도망간 것을 보면서 우리 역사에서도 선조 때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왕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부녀자들이 오랑캐에게 끌려갔다가 돌아 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화양년 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했는지..위안부도 그렇고…나라가 힘이 약해서 당한 설움들이 복받치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힘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키지 못하지요..
지키는 것과 비무장 평화의 섬이라는 것이 그래서 어렵습니다.
어찌되었던 열심히 연대하겠습니다.
~아래는 행사이후 소감들을 모은 것입니다.
엄문희
10월 31일 저녁, 제주의 비무장평화 논의를 일으키기 위해 2020년 가을에 만들어가는 세 가지 일 중에 첫 행사인 <난징 영상상영회>가 있었다.
마침 낮에 4.3 평화기행 안내를 하게 됐었고, 나는 알뜨르 비행장에서 난징대학살에 동원되었던 우리의 과거와 <난징강간>의 작가 아이리스 장(Iris Chang 1968-2004)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 비극을 전하고 오는 길이었다. 다큐 첫 장면은 2004년 11월, 아이리스 장의 자살이었고, 나레이션은 “미모의 여성 작가”라며 시작되었다. 아아아.
다큐를 몇 번이나 되감은 후에야 장의 죽음은 자살이기도 하지만, 난징학살의 피해자였음을 알게 됐다. 그는 스스로 권총 방아쇠를 당겨 죽기도 했지만, 반성없는 인간에 대한 절망에 베이기도 했다. 지난한 타자화의 피해자였다.
오늘은 더 생각했다. 학살의 증언에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간 그 악마들에 대해서. 그들이 처음부터 악마가 아닌 바에야 무엇이 사람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비극을 재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질문함을 반드시 깨뜨려야 한다. 무엇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가?
타인의 생사여탈권을 쥔 상태를 상상했다. 강력한 권한이 주어진 인간은 점점 상대에 관한 권한을 늘려가는데 무감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인간에게서 죄책감을 뺏는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첫째, 개별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집단의 일원으로는 가능한 이유, 그것은 양심을 집단성에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이 저지르는 폭력을 정당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공포든 분노든.
그렇다면 우리의 평화운동은 인간성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군사주의에 저항하고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들을 밝혀내자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 조건들로 부터 인간을 해방시키자는 뜻이다.
그래서 질문을 잘 해야한다. ‘다시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이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라고 해야 한다.
2020년 10월 31일.
생각해보니 종일 알뜨르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