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은 날이 거듭될수록 가벼워진다 강정마을의 투쟁이 예와 같음을 알리며 세인들의 관심 또한 사그라들지 않음을 거듭 확인한다 예상과 달리 관의 감시나 제재가 혹심하지 않다 어젠 콜트콜텍의 본사집회를 처음 따라갔다 강정과 같이 2007년부터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흔히 말하길, 장기투쟁사업장. 박용호는 콜트판 해군이다. 수십 수백억의 흑지를 내고도 위장폐업에 공장의 해외 이전. 음악을 만드는 기타노동자들은 직업병에 걸려 쓰러져가는데도 사장은 돈자루를 지고 꽁무니를 뺐다. 나쁜놈. 강정마을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는 투쟁단위이길래 국방부 시위도 빼먹고 결합한 연대. 염두에 둔 발언을 그런대로 잘 마쳤다. 청와대는 어제따라 중국인이 많았다. 해운기지 결사반대 깃발을 no naval base로 바꿔들었다. 그 덕인지 청와대를 향했던 카메라가 나를 더러 향한다. 옆에서 일인시위를 하시던 세월호 유가족 석준이아버지는 인터뷰를 하시다가 화단에 앉으신다. 허리와 고관절에 큰 수술을 한 아버지는 서 있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하지만 고이 키운 석범이를 보내지 못해 거리에 설 수 밖에 없는 신세. 박근혜 이 나쁜년. 저녁엔 어쩌다보니 또 연대발언을 하게 되었다 명동 세종호텔이 또 다시 악랄한 구조조정을 자행하여 호텔노동자들이 또 다시 투쟁을 결의한 것이다. 해거름에 찾은 집회현장은 체크인 체크아웃하는 투숙객들과 투쟁노동자들로 가득 강정구면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한번즘은 다 강정에 다녀간 강정구면. 이들이 거리에 있는데 찾지 않을 수 없다. 더우기 노조위원장이 고씨성을 가지신 덕분에 홀홀단신 재경시위중인 나를 살갑게 보듬어 주신다. 반가운 얼굴 맹봉학 선생님도 만나고 2012년 해적발언으로 구럼비 이쓔 메이킹에 큰 몫을 했던 김지윤 동지도 만나고 너무나 뜻깊은 자리였다 힘들고 길어지기만 하는 투쟁. 세종노조 부디 승리하십쇼! 순화동철대위의 천막 한 켠엔 윤용헌 열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참사 당시 경찰도 한 명이 죽었다며 끌리다시피 맺은 협상. 고백 하나 하지면 막역한 친구의 아버지끼서 당시 협상의 중재를 맡아 하셨다. 아버지의 밀씀이다. 경찰의 희생도 있었으니 서로 양보해야 한다는.. 나는 동의하지 못한다. 아무리 통일운동의 역군이신 아버지의 말씀이라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경찰은 가해자다. 순직한 두 명 역시 국가폭력의 희생자이지 협상의 조건이 아니다. 오늘 낮, 그 살인자들이 천막 앞에 진을 쳤다. 개자식들. 나는 원래 욕쟁이에 건달이다 제발 내 명대로 살다죽게 도와주길 바란다 내일은 토요일. 쉬었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