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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12월 13일] 난징 대학살 82 주년 추모식
[사진] [12월 13일] 난징 대학살 82 주년 추모식
[동영상] 12.13 난징 대학살 희생자 82주년 추모식
제 82주년 난징 학살 추모식 초대의 글
또 다시 난징대학살 추모식이 돌아옵니다. 벌써 8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거의 한 세기가 다가도록 이 비극적인 역사에 얽힌 일본과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제주도는 과거의 원한과 고통의 세월을 한치도 비켜나지
못한 채 그 속박에 갇혀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둡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들추어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의 악령을 알고 있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알뜨르의 빈터에 해마다 이때에 모이는 이유는 서로 함께 손을 맞잡고 우리의 악마성에
대항하고자 함입니다.
난징의 기억은 과거에 묻어두고 도망쳐
버릴 수도 없고 민족주의적인 선동의 도구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다시 난징의 영령들 앞에 서는
이유는 어두운 과거로 돌아가서 우리의 미래를 구해 내야하는 오늘의 절박한 현실 때문입니다. 이미 지어진
제주 해군기지와 앞으로 지으려고 하는 성산의 공군기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들과 일본의 자위대 기지들, 세계로 확장하는 미국과 나토의 군사 기지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중국의 확장되는 군사기지들은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불러옴으로써 또 다른 난징의 희생을 부르고 있습니다. 알뜨르에서
난징에서 스러진 인류의 절규를 기억하고자 다시 모입니다. 우리를 부르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다시 알뜨르 어두운 카미카제의 격납고 앞으로 초대합니다. 다시는 이 제주가 침략의 발판이
되지 않도록 함께 성찰하고자 초대합니다. 올해는 송악산 공군기지 반대 투쟁 승리 3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알뜨르에서 난징을 바라보며 시공을 넘나드는
간절한 평화의 염원을 같이 나눌 수 있도록 꼭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19,
12, 2
비무장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 사람들과
평화의 바다를 위한 섬들의 연대.
(아래 오키나와와 밴쿠버 연대 메시지 전달: 카레, 평화의 바다를 위한 섬들의 연대, 비무장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 사람들)
난징대학살 82년에 즈음하여, 오키나와에서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
2019년 12월 13일
오키나와와 한국의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통한 민중연대를 지향하는 모임
1937년 일본의 천황제 군대에 의한 난징대학살 만행은 결코 지워져서는 안 될 역사의 진실입니다. 제주에 계신 여러분의 매년 활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올해는 오키나와에서도, 난징대학살 82주년인 12월 13일에, 일본군의 전시 폭력의 잘못을 거듭 직시하는 '12・13 난징사건을 생각하는 영화 감상과 학습회'를 개최합니다. 주최는 '난징・오키나와를 잇는 모임'입니다.
다큐멘터리 영상 상영을 통해서 일본의 중국・아시아 침략의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여러번 난징을 방문해 시민 교류를 계속해온 분에게 발표를 듣는 학습회입니다.
아베 정권이 평화헌법 개악을 강행하고, 중국・아시아 사람들에게 다시 총구를 겨누는 일이 없도록, 국경을 넘은 민중의 연대한 힘으로, 아시아・세계 평화 구축의 길을 계속 걸어갑시다.
12·13 난징사건을 생각하는 영화감상과 학습회에 즈음하여오키나와에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
난징 대학살 82주년 추모식에 모인 우리는 오키나와의 시민들과 벗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82년 전에 일어났던 난징 대학살은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졌던 20세기의
야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난징 대학살의 잔혹함과 비극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홀로코스트에 비해서 그 역사적 의미도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고 가해자들은 여전히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새로운 평화의 세기를 염원하는 모든 시민들이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제주에서는 2014년부터 알뜨르 비행장에서 제주와 난징의 ‘이어짐’을 생각하는 추도식을 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뜨르가 난징 폭격의 중계기지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바로 그 자리에서 평화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올해에는 오키나와에서도 학습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제주의 시민들도 연대의 의지를 더하고자 합니다.
또한 뜻밖의 사고로 슈리성을 잃은 오키나와의 벗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보냅니다. 역사 속에서 모든 나라와 사람들을 연결했던 ‘만국진량’의 다리는 오늘날 평화를 염원하고 연대하며 투쟁하는 우리 모두일 것입니다.
1937-2019 알뜨르에서 난징을 보다, 추모식 참석자 일동
(작성: 정영신)
캐나다 밴쿠버로부터의 연대메시지
올해 12월은 난징 학살 82주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난징 학살에서는 수십만명이나 되는 중국인 전쟁 포로와 시민이 몇 달에 걸쳐서 불법적이고 무자비하게 학살되고, 강간당하고, 박탈당했습니다. 이것은 1937년 12월 초로부터 1938년 3월 말까지 제국 일본 군의 점령하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곳 밴쿠버에서, 평화철학센터(Peace Philosophy Center)는 대부분이 일본인 강연자로 이루어진, 작지만 중요한 모임을 12월 14일에 조직하려 하고 있습니다. 금년 8월에 일본 출신인 이 지역 예술 치료사인 유키 가토는 난징에서 열린 NARPI (동북아평화교육훈련원)에 참가했었습니다. 유키는 이 국제 평화구축 회의에서의 그녀의 경험을 보고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난징 학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예술 활동을 행할 것입니다.
2016년에서 2018년까지, 캐나다의 지방과 연방 의회들에서는 난징학살 기념일(NMCD)을 제정하려는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2017년 10월에, 난징학살 기념일이 온타리오주 의회의 발의로 제정되었습니다. 하원에서는, 11월 28일 난징학살 기념을 제정하자는 하원의원 제니 콴의 발의가 통과되지 못했지만, 총리 쥐스탱 트뤼도는 난징학살의 공포와 그것을 기억하는 일의 중요성을 인정하였습니다. 서구의 제3국 지도자가 아시아 태평양 전쟁(1931-45)의 이러한 잔혹행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금년은 한국의 3.1 독립운동 100주년과, 제주 4.3 학살 71주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난징학살은 1868년에서 1945년까지 일어난 일본의 제국과 식민지의 확장이라는 배경 아래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난징 학살을 기억할 때, 우리의 기억이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넘어서 일본 제국의 공격적 팽창이라는 전체 일본 제국 역사로 확장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별히 이 팽창과정에서 일본 제국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중국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서, 다가오는 행사에서 저는 금년 여름 두 코리아에 대한 저의 여행의 경험과 발견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또한 저는 어떻게 우리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내며 분단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오는 해결책의 일부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도록 이 행사에 참가자들을 초청하려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난징 학살을 위한 기념일정을 고수하고 있는 제주도민들에게 최고의 존경심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태평양 8,500 Km 너머에서, 동아시아와 그 너머의 평화를 위한 행동에의 우리의 성실한 바램과 결의를 가지고, 여러분들과 연대하여 서 있습니다.
2019년 12월 6일
사토코 오카 노리마츠, 평화철학센터 (Peace Philosophy Centre),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주, 밴쿠버
(번역: 강물)
제주로부터 캐나다 밴쿠버에 보내는 연대 메시지
난징 대학살이란 그 잔학 행위 이후 82년이라는 한 평생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생존자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히바쿠사, ‘위안부’ 제도의 생존자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 같은, 다른 잔학한 행위의 생존자들처럼 난징 대학살의 생존자들은 “결코
다시는 안된다”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나눕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으면 누가 이 메시지를 나를까요?
제주도의 알뜨르 비행장은 일본 식민 점령 아래 7만 이상 지역 주민들의 강제 노동으로 건설되었습니다. 1937년 가을, 이 곳은 난징에 폭격을 가했던 비행기들을 무장하고 주유하기 위해 이용되었습니다. 이는 1937년 12월 13일, 난징에 들어갔던 침략적인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손에 3만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학살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제주 알뜨르 비행장이 어떻게 난징 대학살을 위해 준비되었는지 기억하기 위해, 제주의 시민들은 2014년 부터 매년 알뜨르에 남아있는 한 일본 전쟁 비행기 격납고에 모여 추모식을 가지고 제주가 그런 잔혹함을 위해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을 서로 격려하였습니다,.
일본 점령으로부터 독립을 하였지만 알뜨르의
비극적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분단과 외국 군대의 지속되는 주둔에 반대하였던 1948년 제주 4.3 항쟁은 무자비하게 진압되었습니다. 그리고 3만 이상의 제주 시민들이 그 후 몇 년간 학살되었습니다. 그 중 252명은 1950년
알뜨르 비행장 바로 옆에 있던 섯알오름에서 학살되었습니다. 지역 농민들로부터 강제로 빼앗은 그 비행장은 그 원 소유자들에게 결코
돌아가지 못했고 원 소유자들은 한국 군대로부터 그 땅을 빌려야 했습니다. 1989년 제주시민들은 성공적으로
저항했고 알뜨르 비행장에 새 공군 기지를 지으려는 계획을 중단 시켰습니다.
현재 제주시민들은 섬 반대 쪽에 위치한 성산에 제2공항(그리고 공군기지)을 짓는 것과 섯알오름 반대쪽에 거대한 중국 휴양지를
건설하는 것에 반대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12월 13일 이
투쟁 및 다른 제주 평화 운동의 대표들이 알뜨르 추모식에 모여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과거의 악과 현재의 도전에 마주할 것 입니다.
올해 우리는 많은 후원 단체들 및 난징 대학 손님들과 함께 하고 캐나다와 오키나와로부터 연대 메시지를 받는 것에 고무되어 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은 통탄할 잔혹행위에 의해 이용되었습니다. 땅은 갈라지고 피로 물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기억, 연대, 평화를 위한 새로운 노력들이 자라고 확산되고 결실을 맺는 것을 보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2019년 12월 10일
카야 “카레” 베레이디 (Kaia “Curry” Vereide), 평화의 바다를 위한 섬들의 연대, 비무장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 사람들
(번역: 성희)
A Solidarity Message from Canada
This December marks the 82nd anniversary of the Nanjing Massacre, in which hundreds of thousands of Chinese POWs and civilians were unlawfully and brutally massacred, raped, and deprived, for weeks and months from the beginning of December 1937 till around the end of March 1938 under the occupation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
Here in Vancouver, Peace Philosophy Centre is organizing a small but important gathering on December 14, with mostly Japanese speakers as participants. This August, Youki Kato, a local art therapist originally from Japan, attended NARPI, the Northeast Asia Regional Peacebuilding Institute, held in Nanjing. Youki will report back her experience at the international peace-building conference, and will also facilitate an artistic activity to remember and mourn the victims of the Nanjing Massacre.
From 2016 to 2018, there were efforts within Canada to establish the Nanjing Massacre Commemorative Day (NMCD), in provincial and federal legislatures. In October 2017, NMCD was established as a motion in the Legislative Assembly of Ontario. In the House of Commons, November 28, MP Jenny Kwan’s motion for NMCD did not pass, but Prime Minister Justin Trudeau recognized the horror of the Nanjing Massacre and the importance of remembering it. It was quite significant for the leader of a third state in the West to officially recognize this atrocity of the Asia-Pacific War (1931-45).
This year marked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3.1 Independence Movement” of Korea, and the 71st anniversary of the outbreak of the “4.3 Massacre” of Jeju Island. The Nanjing Massacre occurred in the backdrop of the larger imperial and colonial expansion of the Empire of Japan, which lasted from 1868 to 1945. This is why when we remember the Nanjing Massacre, our memory should extend beyond the Asia-Pacific War to the whole history of the Japanese Empire’s aggressive expansion, particularly the colonization of Korea as a foothold for the invasion of continental China.
With that in mind, in our upcoming event, Satoko Oka Norimatsu will share the experience and findings of her trips to both Koreas this summer and invite the participants to think how we can be part of the solution to end the war, end the division and bring peace to the Korean Peninsula.
Here, we would like to express our highest respect for the people of Jeju who hold the memorial for the Nanjing Massacre. We stand in solidarity with you, 8,500 kilometers away, over the Pacific Ocean, with our sincere wish and determination to act for the peace of East Asia and beyond.
December 6, 2019
Satoko Oka Norimatsu
Director, Peace Philosophy Centre
Vancouver, BC, Canada
Solidarity Message from Jeju
82 years after the Nanjing Massacre, a full lifetime has passed since the atrocity, and few survivors remain to tell their stories. Like the survivors of other atrocities, like the hibakusha, the survivors of the ‘comfort women’ system and the survivors of the holocaust, the survivors of the Nanjing Massacre share a clear message of “Never Again.” But who carries on this message when they have passed away?
Alddreu Airfield on Jeju Island was built under Japanese colonial occupation with the forced labor of over 70,000 local residents. In the fall of 1937, it was used to arm and fuel the war planes that bombed Nanjing, leading up to the massacre of an estimated 300,000 people at the hands of the invading Japanese imperial army, which entered Nanjing on Dec. 13, 1937. Remembering how Jeju’s Alddreu Airfield prepared the way for the Nanjing Massacre, Jeju citizens' groups have gathered at a remaining Alddreu Japanese war plane hangar on Dec. 13 each year since 2014 to hold a memorial ceremony and to encourage one another to work to prevent Jeju from being used for such an atrocity again.
Independence from Japanese occupation was not the end of Alddreu’s tragic history. The Jeju April 3 Uprising in 1948, which opposed the division of Korea and continued presence of foreign troops, was quashed ruthlessly, and over 30,000 Jeju citizens were massacred over the next several years, including 252 who were massacred in 1950 at Seotal Oreum, just beside Alddreu Airfield. The airfield, which had been taken by force from the local farmers, was never returned to the original owners but is rented to them by the Korean military. In 1989[맞아요?] citizens of Jeju successfully rose up and stopped plans to make a new air force base at Alddreu Airfield. Currently, Jeju citizens are struggling against plans for a 2nd Jeju Airport (and air force base) in Seongsan, on the opposite side of the island, and against plans for a massive Chinese resort just on the other side of Seotal Oreum. Representatives from these and other Jeju peace movements will join the memorial at Alddreu this Dec. 13, to face the demons of the past and the challenges of the present in order to create a brighter future.
This year we are encouraged to have many sponsoring organizations, guests from Nanjing University, and solidarity messages from Canada and Okinawa. Alddreu Airfield was used for a grievous atrocity, the land broken and soaked with blood, but it is encouraging to see new efforts for memory, solidarity, and peace growing from this soil, spreading and producing fruit.
Dec. 10, 2019
Kaia “Curry” Vereide
Inter-Island Solidarity for Peace of the Sea, People Making Jeju a Demilitarized Peace Is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