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님께서는 수많은 호칭이 있으시겠지만 저희에게는 생명평화결사 순례단장의 자격으로 오셔서 남기신 발자취가 너무 크고도 많아 다른 호칭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사실 단장님의 병세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도 우리는 단장님이 거뜬히 이겨내시고 다시 당당한 미소로 나타날 것을 의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째서 하늘은 인간 세상에 필요한 일꾼들을 이리 빨리도 속절없이 부르심을 하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본격화되던 2011년 봄.
단장님께서는 제주에서 시작하여 판문점까지 이어지는 생명평화결사 100일 순례를 강정에서 계속할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파격적인 제안이었던지!
생명과 평화가 파괴되는 현장이야말로 생명평화결사가 지켜내야 할 진정한 사명이라는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그 결정이 내려진 이후로 강정마을에는 전국에서 지킴이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단장님께서는 매일 한 가마의 쌀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현장으로 만들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면서 구럼비에 식당과 숙소를 만들자고 제안을 해주셨지요. 할망물 식당을 크게 늘리고 100명 이상 머물 수 있는 비닐하우스 숙소를 지어내고, 중덕바닷가 유휴지를 모두 생명의 텃밭으로 일구자면서 직접 곡괭이와 삽을 들고 땀을 흘리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찬란했던 여름.
우리는 하루의 시작을 생명평화백배로 열었고, 새로운 방문자를 맞이하기 위한 터를 일구고, 농사를 짓고, 물놀이를 하고, 밤이면 별과 함께 파도소리를 들으며 촛불을 밝혔습니다.
그 자체가 평화였고 생명의 기운이 넘실거리던 구럼비 바위와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천진난만 하시던 단장님의 개구쟁이 모습도 기억합니다. 연로하신 몸에 어떻게 그런 기운이 샘솟듯 나오시는지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바위 위를 거침없이 돌아다니시고 괭이질을 하셨는지. 젊은 그 누구보다 얼마나 창의적으로 새로운 제안을 끊임없이 쏟아 내셨는지도 기억합니다.
지금의 평화센터 역시 단장님의 제안으로 시작되고 단장님의 헌신으로 완성이 되었으며 단장님의 애정으로 이제껏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강정마을 생명평화 농사를 지원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주셨는지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당신이 원하고 당신이 꿈꾸던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 잠시라도 함께 할 수 있었음을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먼저 다가오시어 함께 고민하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베풀어주셨는지 그 모든 것에 또 감사드립니다.
참 어른으로서 사시다 간 모든 여정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인간사가 왜 이렇게 야속한지 마지막 가시는 길조차 뵈러가지 못 함을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단장님께 받은 사랑을 우리 안에서 잘 키워내어 또 다른 아픈 현장에서 나누며 함께 하는 모습을 결코 쉬지 않겠다는 말씀을 마지막 약속으로 바칩니다.
권술용 단장님!
강정마을에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가슴에 품은 모든 이들의 마음을 모아 부디 소천 하시어 기쁨과 안락 속에 편히 영면하시길 빕니다.
2017. 05. 05
강정마을에서 바칩니다.
#욱꽃이_출력하여_강정마을회_부의금과_같이_전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