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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화'에 대한 저항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은 1959년에 일본 규슈 북부의 탄광지대에서 창간된 <무명통신 無名通信)이라는 간행물이다. 당시 그 지역에서 활동하던 시인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 중심으로 발간된 이 잡지의 성격은 창간사 ‘도덕 귀신을 퇴치하자’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우리는 여자에게 덮어씌워진 이름을 반납하겠습니다. 무명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 글에서 먼저 비판 대상이 되는 것은 가부장제지만, 그 가부장제 속에서 형성된 ‘피해자의 자유’, 즉 아무도 해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도덕적 안락함을 여성들이 버리지 않는 것이 가부장제가 재생산되는 원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런 성찰 뒤에 이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렇게 보면, 과거 가부장제를 만든 권력을 뒤엎기 위해서 피해자로서 모이는 것만으로는 여자들의 근본적인 해방은 이룩할 수 없는 셈입니다. 자신을 가두는 껍데기를 우리 손으로 깨는 것. 그것은 피해자가 권력에 대한 가해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우연히 알게 된 동무들 속에서 이것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자리는 없습니다.”
후지이 다케시 [세상읽기] 무명으로 돌아가기 - 중에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89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