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국제관함식 평화도, 경제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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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30일 강정마을은 총회를 거쳐 국제관함식이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는 것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렸다. 강정마을은 지난 십여 년 동안의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정부와 해군 때문에 수백 년 이어져온 마을 공동체가 갈가리 찢겨졌다. 이제 막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이니, 또 한 번 찬반으로 마을이 나뉠 수 있다는 걱정 속에서 신중하고 사려 깊게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강정 주민들이 반대하면 제주에서 국제관함식을 하지 않겠다던 정부와 해군은, 자신들이 스스로 한 약속까지 어기려하고 있다. 마을이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 채, 국제 행사이니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한다며 마을 주민들에게 재차 의견을 묻고 있다. 이는 절차적으로 옳지 않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동이다. 내용을 보더라도 청와대와 해군은 강정마을의 갈등을 국제관함식을 통해 치유하겠다고 하는데, 힘들게 결론 내린 마을 총회를 무시하고 다시 찬반양론으로 마을 주민들을 몰아넣는 일은 갈등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유발하는 일이며,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을 주민들에게 떠넘기는 비겁한 행동이다.
한편 해군이 마을 주민들에게 건넨 설명회 자료를 보면 국제관함식은 ‘제주의바다, 세계평화를 품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건군 70주년 축하, 국위선양 및 강한 해군력 현시, 동북아 평화협력 구축, 방산수출 증진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군이 도발하는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강력한 군을 원하는 국민들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하거나 연기하는 등 최근 정부가 취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기조에도 어긋나는 인식이다. 30억 가까운 국민의 세금이 들어갈 대규모 해상 군사이벤트를 벌이는 것이 평화와 안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구시대적인 사고이며,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가시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제주 바다에서의 국제관함식 밀어붙이기는 오히려 평화와 안보 실현을 저해한다.
해군은 또한 국제관함식 기간에 내부 방산전시회를 열면 수 천만 달러의 계약이 체결되어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기를 판매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국익과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동조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이미 전 세계 10위권수준의 무기수출국으로, 터키,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이스라엘, UAE 등 분쟁 중이거나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있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한국산 최루탄은 바레인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시민들을 탄압하는 데 쓰여 바레인 시민 수십 명이 죽음에 이르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 무기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쓰이는지 통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무기 수출은 매우 엄격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지 장려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해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어긋나고, 지양하는 것이 마땅한 방식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국제관함식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수십억 혈세를 들여서 이런 퇴행적이고 파괴적인 행사를 해야 할 까닭이 없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승리해서 돌아오는 군을 장례식을 치르듯이 맞이하라”고 이야기했다. 건군 70주년을 굳이 기념하고 싶다면 새로운 한반도 평화 시대를 맞이해서 군의 역할과 책임 있는 성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나라를 위해 희생된 한국 군인뿐만 아니라, 한국이 동참한 전쟁의 상처로 인해 고통 받고 제대로 치유 받지 못하고 있는 모든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기리며 국가적 반성을 통해 평화의 실현을 다짐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가 11년 전 찬반으로 나뉘었던 강정 주민의 상처와 갈등을 봉합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첫 번째 단계로서 무엇부터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한다.
2018년 7월 20일 전쟁없는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