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7일부터 8월 1일, 제주시청에서 강정마을까지 걷는 2015 생명 평화 대행진에 참여했다. 3년 전 첫 번째 대행진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걱정이 많이 되었다. 게다가 이번 행진 초반에 함께 참여했던 엄마가 급한 일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게 되셔서 나 혼자 걸어야 했던 것이다. 강정마을 일에 관심과 애정이 많은 엄마라서 자주 강정마을도 다녀오시는데 몹시 아쉬워 하셨다. 엄마는 혹시라도 혼자 있기 힘들 것 같으면 같이 올라가도 좋다고 하셨지만 나는 왠지 일찍 가는 것이 아쉽고 떳떳하지 못해서 혼자 계속 참여하겠다고 했다.
행진하는 중간 중간 말도 걸어주시고 여러 가지로 챙겨주신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언니 오빠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감사한데 그때는 워낙 정신없고 긴장하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 이제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그분들 덕분에 내가 이 행진을 무사히 끝마친 게 아닐까 싶다. 행진을 하는 낮 동안은 너무 뜨거운 날씨에 다리가 풀리고 뜨거운 공기 때문에 숨 쉬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우리가 왜 이 뜨거운 날 이렇게 걸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을 때마다 다행히 쉬는 시간이었다.
힘든 하루 걷기가 끝나면 맛있는 밥을 먹었다. 밥은 매일 맛있고 정성이 느껴졌다. 걷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이렇게 많은 음식을 만든 분들도 더운 날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이것을 나르고 배식하고 또 뒤처리 하는 분들. 교통질서 잡아주는 아저씨들, 앞에서 구호 선창 하면서 행진을 가다듬는 활동가분들. 행진 참가하는 사람들 상태를 확인하며 많은 일을 하던 그 모든 분들이야말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그리고 강정 마을에 계시는 문정현 신부님이 다리도 안 좋으시고 연로하신데도 우리와 함께 행진을 하던 날은 마음이 정말 아팠다. 행진 끝난 뒤 나를 집으로 데려가 재워주시고 다음 날 공항까지 태워주신 선생님도 계셨고 강정마을로 나를 찾아온 엄마 친구 사진작가 선생님도 있었다. 모두들 내가 만난 그 어떤 어른들 보다 멋진 분들이었다.
다리 아파하면서 공연도 보고 어떤 날은 쉬는 시간에 바다에 풍덩 들어가 놀기도 했다. 밤에 모여서 치킨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세월호 유가족 부모님들과 유민언니 아버님인 김영호 선생님도 만나서 그 분들 이야기도 듣고 걸으면서 이야기도 나눴다. 용산참사 가족들도 오셨는데 나는 어려서 그 일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엄마에게 용산참사에 대해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너무 많았고 나는 슬펐고 혼란스러웠다. 김영오 선생님께는 열심히 살겠다, 잊지 않겠다고 말씀 드렸는데 말해놓고보니 어떤 말을 드려야 할 지 몰라서 늘 듣던 말을 그냥 한 것 같아 죄송했다. 그런데 그 말은 정말 사실이다. 나는 세월호 사고와 다른 아픈 사고들을 기억하며 살꺼니까.
그리고 힘든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긴 했지만 내 카메라를 집에 두고 온 것을 후회 할 정도로 제주는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이 풍경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다. 평화를 지킨다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날 강정마을에 들어가면서 보았던 해군기지 공사현장이다.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고 높은 크레인들이 서있고 군 관사 건물이 거의 다 지어진 모습을 한참동안 쳐다보고 한숨만 푹 쉬었던 것 같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내가 구럼비를 실제로 보지 못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구럼비를 실제로 본 적 없다. 그래서 늘 아쉬워했는데 만약 내가 구럼비를 한번만이라도 실제로 느껴봤다면 지금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속상한 마음이 더 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그곳을 마음의 터전으로 잡고 평생을 살아오신 강정마을 주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거기다가 해군기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서 원래 사이좋게 지내시던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탓하고 책임을 묻고 그러는 모습을 보면 너무 속상하다는 어느 활동가분의 말도 들었다.
제주도에는 4. 3 사건이라는 아픈 기억이 있다. 내가 그 일을 알았을 때 정말 화가 많이 났었다. 나는 그것이 제주도민들의 트라우마, 아픈 상처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픈 기억들을 이용해 제주 사람들에게 안전한 제주를 만들어 주겠다고 감언이설 하여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정부와 해군의 행동에 정말 화가 난다. 1900명이 넘는 주민들 가운데 87명의 주민들만 데리고 해군기지 건설을 확정하고 평화롭던 마을 공동체를 산산조각 낸 해군. 국가의 안보라는 이름으로 완벽히 무시되어버린 주민(국민)들의 뜻과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정부.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모순덩어리 해군기지. 강정 생명 평화 대행진을 하면서 끊임없이 외쳤던 구호처럼 평화는 평화로서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주도를, 강정마을을 그대로 두는 것이 진짜 평화가 아닐까. 해군 기지가 다 완성되어 가니까 끝난 싸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평화를 위해 해군 기지가 완공되고 가동되어도 그 해군 기지가 철거되는 날까지 싸울꺼라는 사람들의 말에 정말 감동 받았다. 구럼비 바위랑 국가 안보를 바꾸자는 게 아니라 정말 국가의 안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직한 방법으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들이 지켜주겠다는 그 국민들이 개고생 하며 뜨거운 여름에 걸어야 하는 이 일을 없애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 아닐까.
첫댓글 감동이네요. 정말 대행진을 준비한 보람이 느껴집니다^^
어머머 ㅠㅠ 멋진 친구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