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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아가서는 솔로몬의 아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가서의 정서는
자연의 아름다운 서정을 사랑으로 승화 시켜 영적인 교훈을 주는
생명의 향기로 가득한 사랑의 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가서에 시선이 머물면......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아가서는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은유적 표현으로 생명의 글향이 묻어나는 문학으로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를
예표적으로 그려낸 영감으로 넘쳐나는 상학의 사랑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가서의 은유적 표현은
상학의 문학으로서의 성경을 최상의 아름다움으로 구현하였습니다.
흐르는 시간을 공간의 예술로 승화 시킨 것이 기적의 사진이라면.....
솔로몬의 아가는 영혼이 담긴 사랑의 지혜를 생명의 향기가 영원히 묻어나는 사랑의 샘터가 되는
거룩한 성경의 문학으로 남겼습니다.
사랑의 입향으로 포도주 향의 교감보다 더 진하게 느끼며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다는 표현으로
비둘기 같은 성령으로 인해 하늘의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시는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암시하였습니다.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는 표현의 말씀은
택함을 받은 성도로 거룩한 열매를 맺으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성도를 바로의 준마로 비유한 것은
애굽산 최고급 준마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진리의 말씀으로 잘 길들여진 성도의 온유에 대한 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택정을 입은 성도의 역동적 생명의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되어
천상의 노래가 되고 찬송이 될 것입니다.
아가서의 은유적 표현은
사랑의 교감을 영원한 생명의 구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품 가운데 몰약 향낭"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 "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유향의 작은 산"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그 양 떼를 먹이는구나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우리가 일찌기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 것, 묵은 것이 구비하였구나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둔 것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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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놀라운 아가서의 은유적 표현은
아름다운 사랑의 향기로 가득하기만 합니다.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서로가 사랑의 매력에 푹 빠져 한결같은 사랑으로 소통하며 교감하는 관계로
그리스도와 성도의 사랑을 섬세하면서도 생명력있게 담았습니다.
아가서를 읽으면서 그리도스의 사랑을 교감하지 못한다면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그 향기를 맡지 못하는 메마른 정서를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풍성한 사랑의 표현으로 확실한 사랑을 즐기는 아가서는
거룩한 사랑학 개론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가서의 옥의 티는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아가서의 아름다운 표현 가운데 옥의 티가 된 여우는
사랑과 행복으로 넘치는 울타리, 그 포도원을 허는 여우의 등장입니다.
에덴 동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듯이
사랑의 노래로 가득한 아가서에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에 대한 경계를 하였습니다.
양 떼 가운데 있는 염소 새끼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가운데 확연히 다른 색깔로 드러나는 작은 여우에 대한 이야기는
꽃술의 행복으로 가득한 포도원을 허는 이방인으로 낯설게 느껴집니다.
믿음과 사랑의 울타리, 그 아름다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작은 여우의 실체......
그것이 무엇이든 방치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잡아야 할 대상입니다.
"여우"란 말은 성경에 몇 번 밖에 나오지 않는데
구약 성경에 삼손의 여우, 도비야의 여우, 아가서의 여우, 에스겔의 여우, 예레미야의 여우가 있고
신약 성경에 예수님의 여우가 있습니다.
삼손의 여우는 삼손의 장인에 대한 분노로
여우 삼백을 잡아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취하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홰에 불을 켜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살랐습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삼손과 블레셋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도비야의 여우는 산발랏이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 건설을 방해하고 훼방하는 가운데
암몬 사람 도비야의 욕설입니다.
도비야는 산발랏과 함께
결국 느헤미야의 성벽 건설을 방해하는 여우가 되었습니다.
에스겔의 여우는
아가서에 나타난 여우의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또 말하노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예루 살렘 성전이 불타고 예루 살렘 성이 무너지고 남쪽 유다가 멸망하는데
일조를 한 이스라엘의 거짓 선지자를 에스겔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라고 말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허탄한 묵시로 거짓 점괘를 말하고
자기 마음을 따라 거짓 예언을 하여 화를 자초하였습니다.
예레미야의 여우도
에스겔이 말한 여우와 함께 아가서의 여우에 대한 실체를 말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애가를 지어 애통하였습니다.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종들이 우리를 관할함이여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대적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방백들의 손이 매어 달리며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소년들이 맷돌을 지오며 아이들이 섶을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노인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소년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쳤고 우리의 무도가 변하여 애통이 되었사오며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
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
시온 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시니이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에스겔과 같은 시각으로
거짓 선지자를 시온산에 노는 여우라고 탄식하였습니다.
거룩한 공동체를 헤치는 여우는
종말론적인 적그리스도요, 거짓 선지자며, 이단들입니다.
예수님의 여우는
헤롯 왕 이었습니다.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헤롯은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공권력으로 공포 정치를 하며
협박하고 생명의 위협을 가하였습니다.
이러한 헤롯을 여우라고 일컬으며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가서에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말씀 다음에 이어지는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는 말씀이 묘하게 대조적인 일치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는 사역의 절정과
아가서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는 말씀을 통시적으로 보게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사역이 포도원의 꽃을 피울 때작은 여유는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며 훼방하였습니다.
문득......오늘날 믿음과 사랑의 아름다운 포도원.....
예수의 참된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허는 작은 여우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
포도원의 꽃이 필 때 나타나는 여유는
황폐한 시온산의 황무지에 놀고 있습니다.
종말론적인 적그리스도와 양의 탈을 쓴 거짓 선지자와 이단은
믿음과 사랑의 아름다운 예수의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허는 드러난 여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작은 여우의 실체는
성도들 가운데와 또한 교회 사역 현장에 있습니다.
성도 셋이 모이면......교회 안의 거의 모든 성도는
도마 위에 난도질 당합니다.
장로 셋이 모이면.....대한 민국의 모든 목사는
양의 탈을 쓴 삯꾼으로 매도당합니다.
목사 셋이 모이면.....믿을 교인 한 사람도 없고,
또한 동료 목사를 타작 기계로 심판합니다.
어느 날 석탄일을 지나면서......
불교 스님들의 수행 과정을 텔레비전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먹는 음식에서 타인과의 관계 하나 하나가
불심으로 채우는 수련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의 문화는
구원을 운운하기 전에 불교의 기본적인 종교 수양이라도 받아야 될 지경에 놓였습니다.
결국 진리의 말씀을 따라 선포된 말씀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못한 모습은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스스로 허는 작은 여우의 실체를 드러내었습니다.
기복과 무속의 인본주의 신앙은기독교의 옷을 입었지만
기독교 유사 종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독교 유사 종교의 문화는믿음과 사랑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허는 작은 여우의 놀이터,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속화된 공동체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더 이상 따르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거룩한 옷을 입지 못한 모습은
유사 기독교의 문화로 작은 여우의 작당만 있을 뿐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는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확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따라 흡족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소경으로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은 종교적 탐욕으로 가득한 모습은
작은 여우라는 유사 기독교의 실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로 비방 하는 문화....뒷담으로 동료를 매장하는 문화....
앞에서는 악수하고 뒤에서는 욕하는 종교의 문화를 가진 유사 기독교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공동체를 허는 작은 여우입니다.
아가서에서 말한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
예레미야가 애가를 지어 탄식한 황폐한 시온산에서 노는 여우
에스겔이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으로 지적한 거짓 선지자라는 황무지의 여우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공권력으로 협박한 여우 헤롯왕
여우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라도 최악의 교활하고 간사한 평가입니다.
성도로 여우짓을 하여 이간질하고 목사로 여우짓을 하여 동료를 매장하면 ......
믿음과 사랑의 아름다운 공동체,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