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하느님 나라를 보게 될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뒤 여드레쯤 되어,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따로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여드레'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주간의 첫 날'인 '제8요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렇게 오늘의 복음은 사순을 사는 우리에게 부활을 미리 맛볼 수 있게 하시기 위해 마련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삶의 중요한 순간에 제자 대표들을 따로 데리고 산에 가시어 기도하십니다. 특히 겟세마니에서 그렇게 하십니다.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 피땀을 흘리셨던 것과 같은 기이한 현상이 여기 타볼산에서도 일어납니다.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옷은 어떤 마전장이도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희게 됩니다. 수난의 고통 속에서 피어날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모세는 전통적으로 오경의 작가로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예언자의 초석으로 예언서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예수님과 이들의 만남은 신약과 구약의 만남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예수님 안에서 구약의 모든 약속이 성취될 것입니다. 이들은 영광에 싸여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시며 장차 이루실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겟세마니에서처럼 잠들었다가 깨어나 이 두 사람과 함께 서 계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합니다. 베드로는 황홀경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그곳에 머물기를 바라며 초막 셋을 지어 세 분께 드리려고 한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제자들과 같이 이 복음을 통해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영광에 머물기를 바랄 것입니다. 우리의 뜻이 이러하다면 주님의 뜻은 어떨까요?
그 때 구름이 일어 그들을 감쌉니다. 구름은 이집트를 탈출할 때 앞서서 그들을 인도했던 하느님의 현존을 뜻합니다. 이 속에서 "이는 내가 뽑은 아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목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이제는 예수님만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접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을 들어야합니다.
이 복음과 병행구절인 마르 9,2-13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하고 당부하십니다. 수난 전에 주신 영광에 머물려고 하지도 말고 그것을 전하지도 말고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그 때 받을 구원의 영광을 향해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수난을 묵상하며 사순절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난은 고통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을 이끌어냅니다. 고통은 짧지만 영광은 영원합니다. 부활의 그날까지 재계와 단식을 지키며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삶을 꾸준히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들을 생각하며 참 기쁨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대들이 있어 저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