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간 중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쉼을 가졌어야 했는데, 오히려 혈압이 올랐었습니다.
그 당시
정부의 교회 소모임 자제가 아니라 금지 발표가 났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나뉘었습니다.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차별 혹 탄압이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요. 반면, “이건 아니다! 이는 기독교 탄압의 전초이고, 좌파 정권의 본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라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그런 발표가 마음이 불편함을 넘어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요. 그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클럽,
맛집,
커피숍,
정말 거리 두기 하지 못하고 놀고, 먹고, 마시는 장소 보다 교회를 더 코로나 확산의 근원지로 보고 있는 듯했습니다.
코로나로
교회 출석 인원이 1/3, 1/4이 되어 가고 있었는데요.
정부의 발표로
교회를 향한 시선은 더 안 좋아졌습니다.
전도의 문이 막힐 뿐만 아니라
기존 성도들도 교회에 나오기를 주저하게 했습니다.
정부도 그렇지만
믿는다고 하는 자들도 문제였습니다.
쇼핑할 것 다 하고,
맛집 찾아가서 다 먹고,
카페에서 커피 다 마시면서 교회는 안 오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 할 거면
동일하게 교회에서 예배 쇼핑하고,
교회 맛난 밥 먹고,
교회 커피숍에서 커피 마셔도 되지 않았을까요?
일관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이유가
그 동안 교회가 성도들을 그렇게
축복, 웰빙, 등 기복적, 인본주의적 가치를 가르쳤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예배보다
행사, 프로그램 중심으로 하다 보니
정작 행사와 프로그램이 중단되니
누릴 것이 없으니 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지요?
구약에 이스라엘도 똑같았습니다.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 중심으로 모여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럴 ‘타이밍’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그런 때’가 아니라고 한 자들이
자신들의 안전과 편안함을 추구하면서 자신들의 집을 짓는 데는 혈안이었습니다.
아니
성전에 지붕은 없는데,
자신들의 집은 제대로 건축하였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아니
과거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었나요?
그 방향성대로
지금 믿는 자들이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구약의 이기적인 백성들이
구약에서 없어졌어야 했는데요...
그 후손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후손들이 적지 않습니다.
#학개 1장 1-7절, #김영한, #아침개인묵상, #성경 하브루타 코칭
<성전을 건축하라는 여호와의 말씀>
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1) 언제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였나요? (1절)
- 다리오 왕 제2년 6월, 그달 1일에 임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B.C.521-486년 동안 다스렸던 페르시아 왕이었습니다.
2) 학개는 자신이 받은 말씀을 누구에게 전하였나요? (1절)
-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게 임하였습니다.
3) 학개는 자신이 받은 메시지를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전했습니다. 나 자신은 받은 은혜의 말씀을 누구에게 전하고, 나누고 있나요?
4)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1절)
- 스룹바벨은 유다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 에스라 5:2은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이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에스라 5:2)
- 마태복음 1:12-13은 스룹바벨의 족보(여고냐-스알디엘-스룹바벨-아비훗-엘리아김-아소르)를 이렇게 언급하였습니다.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으로 아론의 후손이고,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이주시킬 때 끌려간 여호사닥의 아들이었습니다.
- 역대상 6:3, 4, 14, 15은 이렇게 그 족보를 말하였습니다.
“아므람의 자녀는 아론과 모세와 미리암이요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며 엘르아살은 비느하스를 낳았고 비느하스는 아비수아를 낳았고.....아사랴는 스랴야를 낳고 스랴야는 여호사닥을 낳았으며 여호와께서 느브갓네살의 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옮기실 때에 여호사닥도 갔었더라”
5)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2절)
- 하나님은 “이 백성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함을 개탄해 하셨습니다.
6) 하나님은 21세기 이 시대 한국 교회 그리고 성도들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무엇을 안타까워하실까요?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1) 하나님은 명확히 선지자 학개에게 무엇을 질문하셨나요? (3-4절)
-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이스라엘은 그런 시기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은지 물으셨습니다.
2) ‘판벽한’이란 무슨 의미인가요? (4절)
- ‘편벽한’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세푸님’(סְפוּנִ֑ים)으로, 수동분사 형태로, ‘덮힌’, ‘입힌’이라는 뜻입니다.
-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지붕으로 덮히고, 입힌 상태이고, 하나님의 성전은 그렇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무엇을 하기를 원하셨나요? (5절)
-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를 살피기를 원하셨습니다.
- 테일러와 클렌더넨은 그들의 학개 주석에서 이스라엘은 성전을 재건할 때는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안전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아주 혐오적 제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요점은 그들 중 일부가 그랬던 것처럼, 아직 사원을 재건할 때가 아니라고 제안하는 동시에 그들의 개인 안전과 편안함에 기여하는 건축 프로젝트를 착수할 때라고 제안하는 것은 혐오스럽다는 것이다.”
(테일러, R. A., & 클렌더넨, E. R.(2004). 학개, 말라기 (Vol. 21A, p. 122), 내슈빌 : Broadman & Holman 출판사)
(His point is that it is repulsive to suggest, as some of them have done, that it is not yet time to rebuild the temple while at the same time suggesting that it is time to undertake building projects that contribute to their personal security and comfort.)
Taylor, R. A., & Clendenen, E. R. (2004). Haggai, Malachi (Vol. 21A, p. 122).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4) 학개를 통해 이스라엘이 이런 메시지를 들었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과 느낌이었을까요?
5) 잠시 눈을 감고, 나 자신의 행위, 즉 삶을 돌아보자!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나 자신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요?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나요? 나의 물질은 대부분에 어디에 쓰이고 있나요?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1)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은 이스라엘의 삶은 어떠하게 될 운명이었나요? (6절)
-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고,
-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고,
-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고,
-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고,
-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2)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이 무엇하기를 원하셨나요? (7절)
- 자기의 행위를 살피기를 원하셨습니다.
3) 잠시 다시 눈을 감고, 나 자신의 삶에 무엇이 문제인지 숙고해 보겠습니다! 나 자신의 생각, 마음, 몸에 문제는 무엇 때문인가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4) 오늘 말씀 중 받은 도전 혹 은혜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