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5 – 4. 1 갤러리별 (T.051-744-2883, 부산)
여행과 힐링으로 인도하는
정인숙 초대전
글 : 정창권 ((사)한국시스템다이내믹스학회 학회장, 경영학 박사)
칠하는 과정은 흐르는 것이고, 색이 덧입혀지는 것이 쌓이는 것이라면
정인숙 작가는 흘러가듯 색을 덧입힌 다음 흘려 내보내듯 사포질해서 쌓여있는 색을 깎아내고 있기 때문에 나와 마찬가지로 변화를 이야기하는작가다.
OVER THERE 바람
정인숙의 개인전은 여행이다. 힐링이다.
정인숙의 개인전은 프랑스의 아기자기한 가게를 보면서 각자가 가진 문화와 예술의 판타지에 흠뻑빠지는 여행이 아니다. 런던 뒷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어느 명사가 애용했다는 선술집(pub)을 탐험하는 여행도 아니다. 마치 하늘을 이불 삼아 길을 침대 삼아 길 가다 만난 사람을 의지하며 뚜벅뚜벅 걷는 산티아고 도보 명상에 가깝다. 정인숙의 개인전은 내면을 탐색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마치 초파리 날개를 현미경으로 바라볼 때 펼쳐지는 놀라운 또 다른 세계처럼 작품을 마주하고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다시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겹겹이 쌓여있는 자신을 탐색하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려고 했을까. 작가는 한 작품에 많게는 백 번도 넘게 색을 덧칠했다고 한다. 일필휘지의 붓 놀림으로 색이 겹겹이 쌓이면서 또 다른 질감을 만드는 모습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떠 올리게 하지만 그리는 작업보다 더 많은 공을 들여 사포질했다고 하니 마크 로스코와는 또 다른 정인숙만의 색의 세계를 만들었다.
OVER THERE Earth
나는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다. 변화를 계산해서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여주는 입장에서 세상 만물을 흐르는 것과 쌓이는 것으로 구분한다. 세상은 흐르는 것과 쌓이는 것의 이중주 결과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인숙의 작품에서도 흐르는 것과 쌓이는 것의 변주곡을 듣는 듯 해서 반갑다. 사회과학과 예술이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저수지의 물이 쌓이고 줄어드는 것은 흘러 들어가고 나오는 물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쌓이는 것은 흐르는 것을 기억한다. 칠하는 과정은 흐르는 것이고, 색이 덧입혀지는 것이 쌓이는 것이라면 정인숙 작가는 흘러가듯 색을 덧입힌 다음 흘려 내보내듯 사포질해서 쌓여있는 색을 깎아내고 있기 때문에 나와 마찬가지로 변화를 이야기하는작가다. 나는 과학으로, 작가는 예술로 변화를 노래한다. 수십 번에 걸친 덧칠과 그보다 더 많은 사포질 덕분에 쳐다볼수록 다양한 색이 우리에게 속삭인다. 도저히 사회과학이 흉내 낼 수 없는 경지다. 그렇게 남아 있는 색은 역사를 품고 있다. 이 색의 역사는 이야기가 되어 우리에게 속삭인다.
OVER THERE #5
여백이 있으면서 가득 차 있고, 안정감을 주는 듯하지만, 어딘가 삐뚤어진 OVER THERE 바람은 정인숙 작가의 장난기가 발동한 것 같다. 풋풋한 소년 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다. 세차게 바람이 부는 날 소년은 바람막이가 되어 주려고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이런 소년의 등 뒤에서 소녀는 고마운 마음에 감싸듯 소년을 안아주고 있다. 오히려 바람에 고마워할 판이다.
작품 OVER THERE Wish - Human은 분리된 세상을 그렸다. 분리되었기 때문에 갈망은 더욱 커진다. 그런데 아우성치는 것은 저쪽일까? 이쪽일까? 분리된 세상 저편이 현실인가? 이쪽이 현실인가? 사람의 눈은 앞을 바라보게 달렸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남의 떡이 커 보인다. 누가 누구를 부러워하는 것일까?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오롯이 객체화할 수 있을까? 수백 번 수천 번 덧칠하는 작업을 하면서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상무념의 세계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해탈의 경지라서 그런가? 작가는 분리된 틀을 무겁지 않게 그려서 심각한 담론 논쟁을 회피한다. 화려한 색이 조화를 이룬다. 마치 2~30대 젊은이들이 70년대 유행가에도 어색하지 않게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다양성이 용광로처럼 넘쳐나는 클럽을 연상시킨다. 이런 클럽에는 머리 허연 내가 가도 어색하지 않으리라.
색이 덧입혀지는 과정을 추적하고 추억이 쌓이는 과정을 기억하며 시간이 누적되는 과정을 그리는 정인숙 작가는 1989년에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터키 아제르바이잔 문화사절단을 수행한 바 있고 오랜 시간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OVER THERE Festival
OVER THERE Wish-Human
글 : 정인숙
이유있는 바람
바람이 부는 것도
이유가 있다
봄은 바람으로 온다
재밌는 것들을 버리고
비로소 혼자일 때
바람은 내게 온다.
나는 습관처럼
자유로운 붓질로
바람을 마주한다.
미칠 듯한 정적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