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5 – 11. 14 갤러리두 (T.02-3444-3208, 청담동)
안녕? Seoul! 야경이야기
전동민(호준) 개인전
글 : 김성호 (미술평론가)
I. 도시 야경
작가 전동민(호준)은 ‘도시 야경’을 화제(畵題)로 삼는다. “낮에 보는 도시의 고층건물들은 복잡하고 무질서한 모습이지만 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둠과 불빛, 색채만이 남는다.” 그가 느끼는 낮의 세계는 숨 막히는 공간을 드러내지만, 밤의 세계는 숨통을 열어주는 공간을 만든다. 생각해 보라. 태양광이 모든 것을 점유하고 거침없이 포진하는 낮의 세계에선 숨을 공간이 별로 없다. 간신히 도시의 그늘을 찾은 이들이 잠시 동안 쉼의 공간을 만들 따름이다. 이처럼 낮의 세계에서 여유의 그늘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모든 것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낮의 시공간에서 사람들은 은폐와 위장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자신을 가둔다. 반면에 밤의 시공간에서는 그 내면세계에 걸어둔 은폐의 빗장을 스스럼없이 풀어 젖힌다. 어둠이 그것을 도와 사물과 존재들에게 쉼의 공간을 주기 때문이다.
II. 도시 야경의 이면
이번 전시에서 전동민(호준)은 도시 야경을 ‘한 풍경 안에 두 이미지가 쌍(雙)으로 된 작품’를 선보인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는 우리가 앞서 보았던 이미지이고 또 하나는 전시장의 불을 껐을 때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같은 작품의 또 다른 이미지’이다. 전동민(호준)의 전시는, 마치 하나의 이야기 속 또 다른 이야기를 삽입시킨 ‘액자 소설’처럼, ‘이중의 내러티브를 지닌 액자 회화’의 의미를 지닌다. 하나의 내러티브는 한지 위에 물감을 입힌 전형적인 한국화의 조형 방법론 위에 형광도료를 얹어 현대화시킨 ‘이미지(image)의 언어’라고 한다면 또 하나의 내러티브는 축광도료가 발화시키는 가시광선 이면의 ‘이미저리(imagery)의 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심상(心像) 으로 번역되는 ‘내적 형상’인 이미저리는 전동민(호준)의 작품 속에서 ‘외적 형상’인 이미지와 하나의 쌍을 이루면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 구성을 통해 그것의 숨겨진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III. 회화의 매체 실험이 지향하는 빛의 미학
전동민(호준)의 최근작이 도시 야경을 담은 ‘이중 회화 장치’를 통해서 본질적으로 ‘가시계의 이면’을 성찰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초기의 작업을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그의 초기작은 “열상(熱像)카메라를 통해 드러나는 사람과 사물의 내면을 열로써 감지하고 작품으로 옮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열상카메라’, ‘열화상카메라’, ‘열적외선카메라’ 등으로 불리는 이것은 “생물과 물체가 각각의 고유한 온도에 따라 적외선 형식으로 방출되는 복사에너지를 검출하여 그 온도 분포를 영상화하는 카메라”를 가리킨다. 이 카메라는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을 감지하는 까닭에 태양광이 없는 밤에도 사람과 물체의 위치 및 동태를 파악할 수 있고, ‘가시광선에서 육안으로 결코 볼 수 없는 것’ 또한 포착할 수 있다.
전동민(호준)은 초기작에서 이러한 사물의 적외선을 추출하는 열상카메라로 풍경을 기록하고 그것을 자신의 회화적 언어로 번안했다. 바다가 방사하는 원적외선(열선)을 노란색 바다 풍경으로 번안한 그의 작품 〈바다〉(2013)와 〈물결 속으로〉(2014)을 보라! 이 작품들에는 극지방에서 관찰되는 오로라(aurora)와 같은 빛의 마술적 향연으로 넘쳐 난다. 한색과 난색이 현기증 나게 부딪히는 바다를 그린 작품 〈다른 세상〉(2014)이나 붉은 계곡물과 푸른 바위가 만나는 작품 〈계곡 속으로〉(2013)는 또 어떠한가? 이러한 초기작들에는 현실을 그렸으되 현실 너머의 초현실이 화면 안에 판타지의 세계로 깊이 들어온다. 이러한 작품들은 열상카메라가 포착한 이미지를 변주하고 왜곡하는 방식으로 극대화된다. 형태는 보다 더 단순해지고, 변형될 뿐만 아니라, 일반 물감에 병치하는 형광 물감의 사용을 통해서 화면은 더욱더 오색 창연한 화면을 구사하게 된다. 그는 〈여의도 야경〉(2016), 〈삼성동 야경〉(2016), 〈잠실동 야경〉(2017)처럼 서울 여러 곳의 야경은 물론이고 부산, 광주의 도시 야경을 실험한다. 뿐만 아니라 베네치아, 런던, 뉴욕 등 서구의 화려한 도시의 곳곳을 횡단한다. 보라! 눈이 시릴 만큼 분홍색 에펠탑이 멋들어진 〈파리 야경〉(2017)이나 동화 풍경 같은 〈독일 야경〉(2017) 그리고 공상과학만화 속 풍경 같은 〈두바이 야경〉(2017)은 강렬한 형광색이 내뿜는 화면 속에 보색이 맞부딪히면서 생동감 넘치는 야경을 창출한다. 이러한 조형적 특성은 분명 현실 속 도시이면서도 마치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진단한 시뮬라시옹의 세계가 부유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보라! 서울의 고지도를 역사의 씨줄(緯)로 꿰매고 ‘지금, 여기에서의 작가적 해석’을 날줄(經)로 삼아 삼아 새롭게 해석한 〈고조선부터 대한민국까지 서울의 모습〉(2016) 은 도시 야경이라는 테마에 천착하기 전에 작가의 본질적 관심이 무엇이었는지를 여실히 살펴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