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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은 모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안티 크리스천
안티 크리스천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회심 전의 사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안티 크리스천이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청년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가 크리스천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달려갈 때만 해도, 그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유대교에 충성하는, 그래서 유대교의 지도부에서 신임받는 인물이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신학자요 탁월한 그리스도의 사도로 존경받는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기 전까지는 가장 악명높은 안티 크리스천이었다. 중세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로 존경받는 어거스틴은, 청년의 때에 깊은 영혼의
방황을 경험하였다. 그가 영혼의 잠에서 일어나 바울의 편지를 읽고 회심하기까지, 그는 조로아스터(Zoroaster)교에 심취하였으며 육체적 쾌락에
빠져있었다.
19세기의 유력한 철학자인 니체는
근대 안티 크리스찬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안티크리스트” 라고 하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 이론적인 면에 있어서 안티 크리스천의
이론적 기원을 형성하였고, 사울과 어거스틴과는 달리 정신병으로 미쳐서 죽기까지 회심하지 않았다. 목사였던 니체의 아버지는 니체가 다섯 살 때에 돌아가셨고, 그는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20대 중반에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강의하였지만, 그가 근대의 가장 대표적인 안티 크리스천이 된 이유는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해석이었다. 그는 18세기 계몽주의 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의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서있는 “하나님의 책임”이라는 개념조차도 거부하였다. 그는 인간의 모든 종교적인 것을 거부하였고,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오직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만을 추구하였다. 그는 스스로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도, “나는 이제까지 존재했던 가장 무서운 인간이다.”라고 부언하였다. 그는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 조로아스터는 페르시아어
차라투스트라의 영어명이다.)에 심취하여 그를 “선한 사람들의
첫 심리학자”이며, “악인들의 친구”라고 추앙하였다. 니체의 아버지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그리고 그가 젊은 시절에 성경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의 천재성에 비추어 사도 바울과 어거스틴과 칼뱅의 뒤를 있는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그를 택하시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이미 10대 후반부터 두통을 앓았고, 20대 중반에 전쟁에 참가하여 건강을
해쳤으며(그는 심각한 매독을 앓았다고도 전해진다.), 이
때부터 줄곧 어딘가 몸이 좋지 못하고, 특히 심한 편두통을 앓았다. 이에
더해 눈병과 위장병이 악화되었고, 청혼에 실패했으며, 병세가
나빠져 대학에서의 강의도 어려워 대학을 퇴직하였으며, 맹렬한 발작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병적인 발작 중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출판하였고, “안티크리스트” 등의
여러 저작을 탈고하였으며, 이후부터 정신착란 증세가 나타났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50세에 이미 광인이 된 니체는 그의 가족에 의해 “안티크리스트” 등의 저작이 출간되고, 급기야 마비증세를 겪으며 5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까지 회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자신을 초인이며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에
비유하였던 니체는, “나는 이제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던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사도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나는 언젠가 신성하다는 말을 듣게 될까 봐 겁이
난다.”고도 하였다. 오늘날에도 니체의 뒤를 이어 안티 크리스천의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니체를 따라 절망의 확신을 가지고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바울과 같이, 그리고 절망의 잠에서 깨어나
바울의 편지를 읽고 회심한 어거스틴과 같이,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인간의 자유의지나 이성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사명이 있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를 의무가 있다.
하나님께서 예견하신 대로 사탄은 자신의 탐심을 이루기 위해 동산 중앙의 나무그늘 속으로 숨어들었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첫 사람을 속여 하나님의 명령을 배반하게 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였다. 사탄은 첫 사람을 미혹하여 자신의 소유물로 탈취하였으나 이로 인해 자신의 반역의 증거가 드러나 심판의 선고를 받았다. 마치 완전범죄를 위장하고 뻔뻔한 모습으로 생활하던 살인범이 살인의 증거가 드러나면서 갑자기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처럼 사탄은 그 반역의 증거가 드러나면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힘을 잃고 말았다. 이로써 사탄을 찾아내 영벌의 선고를 내리려던 하나님의 첫번째 목표는 달성되었다.[2]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일까? 과연 첫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만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이 선악을 분별하게 된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다음이 아니던가?[3]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동산에는 생명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새로운 피조물을 위한 생명양식으로 준비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동산 중앙에 심겨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첫 사람을 위해 준비하신 것이 아니라 사탄의 반역의 증거를 드러내기 위해 준비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 나무는 사탄을 위한 심판의 나무요 그 열매는 사망의 열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을 수 있다고 첫 사람에게 경고하셨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해주신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넘치는 사랑과 신뢰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첫 사람은 마치 기저귀를 차고 대소변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와 같이 지극한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천사의 배반으로 극심한 전쟁의 혼돈을 경험하신 하나님은 천사보다 조금 못하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새로운 피조물에 큰 기대와 신뢰를 가지셨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첫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신뢰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에 담겨있었고 이러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신뢰가 곧 모든 인류의 구원의 근거가 되었음이 확실하다.
왜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나게 하시고 첫 사람에게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일까? 아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나게 하지 않으셨으면 될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농부가 쥐약을 놓을 때 개를 묶어 두는 것과 같다. 쥐약을 놓지 않으면 개를 묶어 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쥐약을 놓지 않으면 쥐를 잡을 수가 없기에, 지혜로운 농부는 창고 안에 쥐약을 놓으면서 소중한 개를 부엌 앞에 묶어 두었다. 그런데 악한 쥐가 와서 개의 목줄을 갉아먹었고, 개는 달려가 쥐약을 먹어버렸다. 결국 악한 쥐는 악한 정체를 드러내어 심판의 선고를 받았고 쥐약을 먹은 개는 서서히 죽어갔다. 개는 쥐약을 먹고 미쳐버렸고 그것을 인본주의자들은 ‘이성의 동물’ 이라고 자랑한다.
농부는 죽어가는 개를 살리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였다. 농부는 수의사가 오기까지 열 줄로 꼰 줄로 죽어가는 개의 목에 목줄을 하고 든든한 기둥에 다시 묶어 두었다. 농부가 열 줄로 꼰 목줄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주신 계명이요, 목줄을 묶어 둔 든든한 기둥은 이 땅에 세워진 교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부활을 통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신뢰에도 불구하고 첫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사탄의 유혹을 따라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의 종이 되었으며, 그 결과 임신의 고통과 노동의 수고 그리고 사망의 선고를 받았다.[4]
만약에 첫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애초에 계획하신 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천사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첫 사람은 하나님의 신뢰를 배반하고 사탄의 종이 되어 고통과 고난의 삶을 살다가 그 육체의 마지막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저주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5]
하나님께서 첫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사망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선악을 분별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반역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진 천사가 하나님을 배반한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는 분열되고 파괴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분별하는 자유의지가 선을 행하기보다는 오히려 악으로 치닫게 될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계신 것이다.[6]
인간의 이성을 신봉하는 인본주의자는 인간이 이성을 가진 유일한 존재이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한다. 인간은 이성으로 본성을 통제하며 인간 이성이 지배하는 유토피아(utopia)를 건설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들은 인간이 본성을 따라 살면 “개와 같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을 따라 하나님을 부인하고 악행을 저지르면 “개 만도 못한 존재” 가 된다. 지난 역사를 뒤돌아볼 때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얼마나 악랄한 짓을 벌였는지, “개 만도 못한 인간 이성의 핏자국”을 어디에서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성이 아닌 계명을 주셨다. 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선악을 분별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자연스럽게 악에 대항하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게 한다. 그러나 인간 각자가 스스로 분별하는 선악의 기준은 매우 다양하며 자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에 따라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은 자기 정당화 또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도구로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에 올라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7]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빛의 천사와 어둠의 천사를 분명하게 구분하셨다. 하나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빛의 천사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을 따르는 어둠의 천사를 특정하여 분명하게 분리시키셨다. 이때 이미 하나님에 의해 선악의 분별은 분명하게 정해졌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과 사탄의 사이에 서서 선악을 분별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인류역사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참사가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과한 표현일까?
노아(Noah)의 당대에 하나님께서 인간 피조물에 대해 크게 한탄하시며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고 모든 인류를 물로 심판하신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9] 또한 인류가 시날(Shinar) 평지에서 탑을 쌓아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시도하다가 분열된 이후 정치제도와 이념으로 인한 세계적인 전쟁과 학살과 차별과 억압은 다름 아닌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과이다.[10]
16세기의 식민지배 시대 그리고 20세기의 공산주의 혁명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원자탄의 등장, 이어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신 자본주의와 다국적 기업의 출현 그리고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인한 부의 편중과 국제난민 문제 그리고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고 있는 환경파괴 역시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원하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우리를 죽이는 것이요 그렇게 얻은 자유의지는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1] 개역개정, (창 2: 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2] 개역개정, (창 3: 1-15)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 개역개정, (창 3: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4] 개역개정, (창 3: 16-21)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5] 개역개정, (창 3: 16-21)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6] 개역개정, (창 11: 1-9)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7] 개역개정, (마 5: 38-42)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8] 개역개정, (창 1: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9] 개역개정, (창 6: 35-8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10] 개역개정, (창 11: 1-9)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