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원 이전을 계기로 여는 문화 이야기 마당
계절과 상관없이 강폭 전체를 덮은 강물이 넘실거리는 것을 보기 위해 보를 막고 중장비를 동원해 모래구릉을 수면 밑으로 감춰야만 마음이 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살에 따라 해마다 모양과 크기, 위치가 변하는 모래언덕, 그리고 사구와 수면이 만나 그리는 선을 보고 싶어 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무령왕릉에서 고마나루 솔밭까지 수만 기의 무덤들이 있었습니다. 왕릉이 발굴된 후 그 무덤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왕릉을 관리하는 사무실과 부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 이렇게 기획된 것들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의 주차장, 도로, 운동장, 체육관, 숙소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겐 수만 기의 무덤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와 강제적인 명령의 근거에 대해 별다른 의문이 없습니다.
공산성 성곽 주변의 나무들을 모두 베었습니다. 수령이 200백년이 넘는 나무만 해도 수백 그루이고 전체 숫자는 수천 그루에 달합니다. 밀림 속에서 앙코르와트가 발견되었을 때는 위대한 건축물을 휘감고 자란 나무들을 다 베고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자는 시각과 거대한 건축물을 휘감아 무너뜨린 경이로운 자연(나무와 시간) 또한 역사라는 시각의 충돌과 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캄보디아 뿐 아니라 인류에게 중요한 학습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상명하달의 개발시대를 통과하면서 이러한 학습의 기회를 번번이 놓쳤습니다. 지방자치가 시행되면서 오히려 개발경쟁은 심화되었습니다. 도시와 고을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시각은 외면당했고 이른바 선진도시 벤치마킹으로 전국은 복사지를 깔아놓은 것처럼 획일화 되었습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전후해 당시 문공부는 ‘한국미술 5천년전’을 기획하고 해외순회전시를 했습니다. 한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이 아니라는 것과, 축약된 산업화를 이루었지만 오천년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당신들의 역사문화는 박물관에 박제되어있는가, 아니면 당신들의 생활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는 ‘한국미술 5천년전’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어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 전시는 근대의 개발광풍으로 획일화된 신도시들이 범람하는 국토환경 속에서 사라져 가는 역사적 자산을 보존하고 오래된 도시와 오래 전 생활 방식도 공존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갖춰야 할 필요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문화재 보호법, 무형문화재법, 고도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등 많은 법들이 만들어졌지만, 법을 만들게 된 맥락과 취지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상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정한 시대를 통과하면서 몸에 밴 개인의 습관과 집단의 관성에 대한 성찰의 시각이 열릴 때, 객관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이에 공주의료원 이전을 계기로 상명하달의 행정 관행과, 개발과 재개발로 점철된 성급함에서 벗어나 조금은 다른 자세와 시각으로 공주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마음을 담아 듣고 의견을 모아가는 절차도 학습해 나갔으면 합니다. 여럿이 모여 상의하고 결정하고 책임도 함께 지는 동네의 문화민주주의를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