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근(四善根)
다음 단계에서, 우리 마음을 한껏 다스려 선근(善根)을 깊게 하는 공부가 이른바 4선근입니다. 우리한테 얼마만치 4선근이 많이 있는 것인가? 이런 것도 역시 4선근 정도에 따라서 점검 할 수가 있습니다.
4선근은 난법(煖法)․정법(頂法)․인법(忍法)․세제일법(世第一法) 입니다.
난법을 유식론에서는 명득정(明得定)이라 합니다. 어째서 명득정이라고 했는가? 난법상(煖法相)이 미처 나타나지 못한 범부는 항시 마음에 어두운 구름이 오락가락 하듯 눈만 감아도 어두컴컴하고 깜깜하고 불교 법문을 보고 듣더라도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을 못하고 부질없는 분별시비가 일어나고 마음이 잘 트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기도를 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이 점차로 정화됨에 따라 흐린 구름 같은 것이 활짝 개어서 머리도 가슴도 몸도 시원스럽게 느껴져서 마치 전류에 감전된 듯 쩌르르 하며 온 몸이 아주 쾌적하여 피로라든가 언짢은 생각이 싹 가셔 버립니다. 물론 완전무결한 것은 아닙니다마는 그런 경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쩌르르한 전류 같은 것을 느끼면 무슨 병증세가 아닌가? 하고 기우(杞憂)를 합니다마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오염된 것이, 산란스럽고 분별시비 많이 하던 망념이 스러지고 우리 마음이 그만치 진여불성쪽으로 다가서는 조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불성의 훈기가 어느 정도 다습게 우리한테 다가온다는 의미로 난법이란 명의(名義)를 썼다고 설명이 되써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명득정이라 하여 어두운 데서 밝음을 얻는 삼매의 시초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한테 가장 큰 병통은 한낱 가상(假相)인 것을 있다고 집착하는 유병(有病)입니다. 물질이 아닌 것을 물질로 보고 실체가 아닌데 실체로 보는 것이 유병 아닙니까? 중생은 지금 유병을 앓고 있습니다. 유물주의, 물질지상주의 같은 것은 모두가 유병인 것입니다.
물질이라는 말이나 색음(色陰)이라는 말이나 같은 뜻입니다. 색음의 구우(區宇)를, 곧 물질로 덮여 있는 경계를 타개(打開)하는 전상(前相)이 난법상이요 명득정인데 밝음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정법(頂法)입니다. 이때는 명득정의 밝은 기운이 더 증장(增長)되어 옵니다. 처음에는 조금 왔다가 그만 두면 사라지고 하지만 정법상에서는 밝은 기운이 점차로 증가되어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우리가 별로 망동만 않으면, 파계무참한 짓만 않으면은 계속이 됩니다. 그러나 음식을 함부로 먹는다거나 이상한 짓이나 할 때는 밝은 기운이 간곳없이 사라집니다.
정법은 밝음이 증가되는 명증정(明增定)인데, 질다심상(質多心相) 곧 분별하는 마음 상태, 성자의 마음이 아니라 범부의 마음 상을 의미하는 질다심상을 직견(直見)하는 법상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라는 것은 대체로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짐작이 되는 경계입니다.
다음이 인법(忍法)입니다. 이것을 대승법인 유식론적으로 말하면 인순정(印順定)이라 합니다. 욕계(欲界)의 가상(假相)이 허공 같음을 믿고서 확실히 인증한다는 경계입니다.
'내 몽뚱이가 비어 있어 사대색신(四大色身)이 허망하다. 수상행식도 허망하다'고 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했으니까 사실은 사실인데, 감이 안 잡히는구나' 이렇게 보통은 느끼지 않겠습니까마는, 마음의 맑은 기운이 더욱더 증가되어 오는 때에는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모두가 다 정말로 무상하고 허망하구나' 하는 것이 몸에 가슴에 사무치게 명심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리를 많이 공부한 분도 꼭 선을 닦아서, 기도를 하건 참선을 하건 적어도 며칠 동안만이라도 밀어붙여야 합니다. 그래야 '아 이 몸뚱이가 허망하구나 물질이라는 것도 모든 제법이 다 공이구나' 하고 확실한 믿음이 오는 것입니다.
난법(煖法)을 얻었다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행동하면 소멸되고 맙니다. 또 명증정(明增定)인 정법(頂法)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렁저렁 생활하면 그냥 후퇴하고 맙니다. 그래서 난법 정법을 얻은 단계에서는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함부로 살아버리면 지옥도 가고 아귀도 에도 가고 축생도 에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순정, 인법으로 해서 확실히 믿고 잠재의식 가운데에 그 종자를, 뿌리를 명확히 둘 때는, 인법을 증득한 사람들은 삼악도에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쇠뿔은 단김에 빼라고 하듯이 공부할 때는 간단없이 지속을 시켜야지 하다 말다 하면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공부가 진척이 안 됩니다. 또는 우리 잠재의식은 과거 숙세부터의 습기가 많기 때문에 하다 말다 하면 잠재의식 가운데서 다시 또 망념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마땅히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잠재의식에 선 근이 뿌리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제일법(世第一法)입니다. 인간 범부 세상에서는 제일 높은 법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무간정(無間定)이라 합니다. 무간정은 번뇌가 낄 사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직 성자는 미처 못되었다 하더라도 번뇌가 낄 사이가 없다, 또는 견도 하는 지위와 세제일법과는 찰나의 사이이기 때문에 간격이 없다는 뜻도 됩니다. 무간정에서 비로소 모든 존재의 본질인 금강불성(金剛佛性)의 심일(心日)을 견증(見證)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선 세간정법(世間頂法)에 안주해서 동요가 별로 없습니다. 무상하다고 확고하게 달관한 경계에서 고민이 나올 수가 없겠지요. 자기 몸뚱이가 상처를 입으나, 아프나, 이별을 하나 또는 재산 문제로 실패를 하나, 원래 없는 허망한 꿈같은 것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그런 것 때문에 우리 마음이 상처를 입을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경계를 여법하게통찰하게 되는 경계입니다.
여기까지가 4선근 입니다. 이런 경계도 난법, 정법, 인법으로 점차로 올라가는 분도 있고 또 용맹정진을 잘하고 과거 숙세부터 선근이 깊은 사람들은 비약적으로 뛰어 올라가기도 합니다. 난법에서 인법으로 바로 가기도 하고 인법에서 세제일법을 안 거치고 견도(見道)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자칫하면 '아, 차서가 본래 없는 것인데 집착할 필요가 있겠는가'하고 이런 차서를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달도(達道)한 도인들이라든가 부처님께서는 일반적인 수준을 위해서 한계 있게 합리적으로 체계를 세운 것이니까 일단 알아두면 편리합니다. '아, 내 공부가 지금 난법정도구나, 이때는 정법이구나' 이와 같이 스스로 점검할 수가 있어서 섣부른 스승이 없다 하더라도 혼자 토굴에서도 공부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유익하며 소중한 공부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건승하시며 성불하소서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