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아까 버스가 넘어질까 봐 버스가 기우면 전 반대로 힘을 줬어요." ".................. ." "그랬더니 버스가 다시 반듯하게 섰어요." "허 어,그래서 버스가 안 미끄러졌구나....허 허허..."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인가..... 앙상한 나무 가지 마다 하얀 눈꽃이 함박웃음을 토해내던 날, 오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친척집에 다녀 오던 길이였습니다.
빙판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비탈길을 지날 때 마다 버스가 행여 넘어질까 봐 한쪽으로 기우는 좌석 반대편에 온 힘을 내주었지요. 그러느라 땀으로 범벅이 된 저를 보시며 아버지는 너털 웃음으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느긋함이 있었고,화난 모습을 좀처럼 보여 주지 않으셨던 우리 아버지. 우리가 보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을 뒤늦게 느껴 볼 때면 알 수 없는 설움이 되살아 납니다.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은 살아온 생애 만큼이나 힘겨웠습니다. 매일 들리는 아버지의 신음은 얼마큼의 아픔을 짓누르는 소리였는지 아직도 가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홉 살 박이 막내 동생에게 남 몰래 많은 양의 수면제를 사 오게 했다는 얘길 듣고 그 고통을 잠시 생각했을 뿐 이지요. 그러나,그 땐 이미 진통제도 수면제도 아버지 몸 속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긴 투병 중에 산길에 오를 때면 동네 방파제가 보이고,먼 소리도 바다가 보이는 산밭에 묻어 달라시며 쓸쓸히 웃곤 하셨지요.
당신 가시는 날은 너무 많은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우리의 슬픔도 그 날씨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릴 수가 없었지요. 아버지도 집 떠나기 서러워 우시는 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닷새가 되는 날 새벽에서야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 하였지요. 그리고는 며칠을 가만히 기다려 준 꽃 상여가 황토 흙 마당에 아버지를 태울 자세로 야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긴 겨울 다 보내고 봄이 시작 할 때쯤이면 내 마음은 아버지 무덤 가에 가 봅니다. 솔바람이 산을 타고 울어도 아버지 무덤은 따뜻한 햇볕이 친구 되어 드리죠.
작은 산새들의 노래가 있고 제비꽃과 어릴 적 동생들이 심어 둔 나무가 우리가 먹은 나이 만큼 자라서 이제 아버진 그렇게 외롭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 가면 아직도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 옵니다. 먼 바다와 아버지 마당에 들풀들을 바라보다가 얼룩진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