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
초등학교 졸업 무렵 이었습니다.집에서 양념 한가지씩 들고 나온 내 친구들은 친구 혜님이 집에 모였습니다. 겨울의 끝자락 섬마을 양지 밭엔 시금치가 듬성듬성 뒹굴어 주었고, 우린 누구네 밭인지도 모르면서 그걸 캐다가 데치고 밥을 지어 비빔밥을 해 먹기로 했거든요.
이윽고 밥이 되어가는 동안 친구네 아랫목에 놓여진 화투를 발견하고는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손등 맞기 내기를 했지요. 한참 그 분위기에 빠져있는데, 유난히 엄격하신 친구 아버지께서 불현듯 돌아 오셨답니다. 일곱 명의 친구들은 일제히 무릎을 끓고 잘 못을 빌었지만, 몹시 화가나신 친구 아버지는 소문만큼 무서운 체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친구들이 윗 마을 숲 속에 살고 있는 친구 민옥이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일입니다. 민옥이는 설탕넣은 동동주를 주전자에 담아와서는 친구들에게 한 잔씩 따라 주었고, 우린 달콤한 맛에 단숨에 마시고 말았지요.이윽고 밤이 깊어 그 숲을 빠져나올 때서야 난생처음 숲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춤을 춘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간 큰 아이들이었어요.
바다 바람에 손등이 트고 볼이 트여도 빈 논두렁을 활개치며 놀 때가 있었지요. 친구들과 놀던 아름들이 동백나무 밑에는 탐스런 동백꽃이 떨어져 주었고, 우린 그 꽃을 주워 짚에 꿰어 목걸이와 화관을 만들어 놀기도 했었지요.
긴 겨울 지나 봄이 오면 저마다 바구니 옆에 끼고 쑥과 나물을 찾아 온 들판을 헤집고 다녔지요. 그래서 그때가 그리운 저는 지금도 봄이 오면 쑥을 캐고 싶어요.
어느덧 중학생이 되어 배를 타고 큰 섬으로 통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객선은 주위보가 내리면 어김없이 발이 묶이게 되었지요. 그럴 때면 우리는 세찬 비바람에 고개 마저 들 수가 없는 고갯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특히나 어린 날 내 약한 심장은 그런 날 만큼은 기억하기 힘들만큼 바닥으로 추락하곤 했지요.
마침내 그 섬의 끝자락에 도착해서야 우리섬까지 건널 수 있는 나룻배에 간신히 몸을 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산길을 걸어야 했던 우리들은 어스름이 짙게 깔린 무렵에서야 동네 불빛을 발견하곤 코끝이 시큰해지곤 했었지요. 친구와 그 고개를 넘던 어느날인가는 바다가 모두 땅이라면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부푼 황홀감에 젖기도 하였습니다.
서쪽을 향해 있는 우리 동네는 맑은날이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노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 그리고 달 밝은 한가위날엔 아주 큰 구렁이가 살았었다는 방파제에 둘러 앉아 달빛 어린 밤바다를 바라보며 밤늦도록 조잘대던 생각이나요.
그 때의 내 친구들은 어느 곳에서 살아 갈까요. 내 기억에 오래도록 멈춰 진 고향에서의 추억은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대로입니다.....................
20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