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침묵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희망입니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박목월, 윤사월)
다음 달이 윤사월인데 온 동네엔 이미 노란 송홧가루가 뽀얗게 날리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코로나19의 창궐과 상관없이 3월부터 계절의 변화를 따라 농사일을 준비해왔습니다. 겨울을 지내온 마늘밭을 손보고, 감자를 심고, 쪽파와 시금치를 거두고, 고추밭을 준비했다가 고추를 심고, 논을 갈고 못자리를 만들고,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논에 모를 내고 있습니다. 옆에서 보기엔 그래도 전통적인 논밭농사가 코로나19의 위협을 덜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촌과 산촌의 삶도 도시나 공장노동자들의 삶보다 코로나19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교회가 문을 닫고 주일 예배가 멈추면서 저는 뜻하지 않은 ‘실직 상태’를 겪었습니다. 신자들이 모이지 못하고 주일 예배도 스마트폰으로 녹화를 하고 심방도 못 하게 되니까 목회자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신자들을 만나지 못하니까’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목회활동이 별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해왔던 목회의 중심 활동이 멈췄습니다. 세상과 이웃을 위하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교회가 가만히 있을수록’ 더욱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교회, 목회, 예배, 선교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가 문을 닫고 신자들과 함께 해왔던 모든 활동이 멈추니까 사제 홀로 하는 기도시간이 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2월 중순부터 새벽기도를 마치고 이른 아침에 가까운 동네 산을 걸었습니다. 거기서 조용하게 조금씩 껍질을 벗고 드러나는 봄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땅은 얼어 있었고 나무는 죽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풀리고 바람이 점점 따뜻하고 부드러워지니까 얼음이 녹고 땅에선 풀이 솟아나고 나뭇가지엔 물이 오르고 꽃순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진달래부터 개나리, 산수유, 매화, 산벗꽃, 자두꽃, 조팝나무, 이화, 도화... 정말 찬란한 꽃들의 향연입니다. 지금은 아카시아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따뜻한 봄바람이 땅에 없던 풀을 돋아나게 하거나 나뭇가지에 싹도 없는 꽃을 만들어 내지는 않습니다. 봄기운과 따뜻한 바람은 땅에 묻혀 있던 풀과 나뭇가지가 품고 있던 꽃눈이 피어나도록 도울 뿐입니다. 날이 풀리고 기운이 점점 높아지고 훈풍이 불기 시작하니까 그 동안 잠들어 있던 풀들이 돋아나고 나뭇가지에선 꽃이 피고 잎이 나왔습니다.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기만 했는데 풀은 돋아나서 꽃이 되고 나무에선 꽃이 피고 잎이 나면서 새가지를 뻗었습니다. 마치도 사람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이 가만히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침묵 속에 앉아 있는 동안에 그 사람에게서 피어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침묵 속에서 기다리면 ‘하느님의 사랑이’ 훈풍이 되어 우리 안에 있는 신성을 피어나게 할 것 같습니다.
“산지기 외딴집에서,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는 처녀”에게 꾀꼬리가 따스하고 향기로운 봄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고요한 침묵의 관상기도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안에서 부활의 생명이 피어나게 할 것입니다. 깊은 침묵의 기도는 따뜻한 생명의 바람이 되어 사람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을 드러내서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합니다. 어둡고 불안한 오늘의 현장에서 이곳저곳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조용히 침묵하며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새 희망의 빛입니다. 찬란한 이 봄날에 침묵하며 사랑으로 기다리는 이들이 희망입니다.
정길섭신부(성공회 안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