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8월 27일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
양동안이라는 이름을 얘기했을 때 누구지? 고개를 갸웃할 사람이 99퍼센트겠지만 “이 땅에 우익은 죽었는가?”를 말하면 아 그 글 쓴 인간이야? 머리를 크게 끄덕일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헌법이 바뀌고 직선 대통령을 뽑은 후 1년도 안돼서 1988년 8월 현대공론이라는 잡지에 정신문화연구원 교수였던 양동안은 “이 땅에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글로 풍파를 일으켰다.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그럴 수도 있다 넘어가려 해도 넘어갈 수 없는 일이 1987년 8월 27일 일어났다. 대한민국 내무부에서 이 글을 팜플렛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웃기지도 않는 일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이 땅에 우익은 죽었는가?”를 다시 읽어 보면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느낌에 전율하게 된다. 25년 전의 자칭 우익 교수나 25년 뒤의 전직 국가정보원장 이하 이 땅에서 우익을 자처하는 이들의 논리가 한 치의 변동이나 진보도 없이 동일한 것이다. 한 번 읽어 보자. ‘좌익’이 ‘종북’으로 바뀌었다는 것만 빼면.
“이 나라에서는 좌익세력이 사회 각 분야에서 치열한 사상적·조직적 공세를 전개하고 있다. 정부나 언론이 「좌경 세력」이라고 관대하게 불러 주고 있는 이 나라의 좌익은 때로는 민주주의 세력으로, 때로는 민족주의 세력으로, 또 때로는 순수한 양심세력으로 자기들을 위장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 침투하여 자기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좌익세력은 대학을 장악하여, 대학 캠퍼스를 혁명의 요새로 만든 지 오래다. 그들은 각 대학의 학생회와 대학신문·대학방송국 등을 장악하여 학생들을 선동, 소요행위에 끌어넣고 있으며, 교수들을 겁주어 그들의 행위에 감히 맞서지 못하게 하고 있다. (중략) 좌익은 대학가와 노동자사회 이외에도 문화예술계·언론출판계·종교계·교육계 등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빠짐없이 침투하여 그들의 세력을 부식·확대하고 있다. 추측컨대, 야당은 물론이요 여당까지도, 심지어는 관계와 법조계에도 좌익이 침투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여기서 잠시 전직 국정원장 원 주사님 말씀
“판사도 아마 저기(종북) 되버려서 사법처리 안 될 거야. 다 똑같은 놈들일 텐데…총선도 대선도 있고 종북 좌파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정권을 잡으려고 하고, 야당이 되지 않는 소리하면 처박야지, 잘못 싸우면 국정원이 없어져…”
뻘건 수건 눈에 두르고 눈에 보이는 건 다 빨갱이라고 울부짖는 저 가련한 증상은 4반세기를 사이에 두고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보다도 더 닮아 있다. 판사까지도 종북이 됐다고 몰아붙이는 국정원장이나 법조계에까지 좌익이 들어갔다고 흥분하는 양교수나 그 생긴 형상은 모르되 머리 속에 든 생각은 복제한 듯 똑같다. “무엇이 무엇이 똑같은가. 원세훈 양동안 똑같아요.” 더 나가 보자.
“이처럼 각 분야에 침투한 좌익은 각 분야에서 민주주의자·민족주의자·양심인사로 자처하면서 주변 인사들의 반공의식을 약화시키고 반미 감정을 고조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좌익 문필가들은 글이나 말을 통해 불특정 多衆(다중)에게 반공의식을 약화시키고 반미감정을 북돋우는 활동을 하고 있다. 민주화의 진전으로 좌익에 동조하는 비우익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좌익세력 자체는 민주화 진전으로 얻어진 합법적 활동공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그들의 세력을 확대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언론계·정계·법조계 등에서 좌익에 대한 관용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여 좌익의 세력확대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그들은 좌익을 「순수한 세력」 「이상주의 세력」으로, 그리고 좌익의 反국가 범법행위를 순수의 발로라고 호도해 주고, 민주화만 이루어지면 좌익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엉터리 주장으로 정부와 대중을 오도한다. 그들은 좌익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강구하는 사람들을 「강경파」 또는 「매카시스트」로 매도하여 무력화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좌익으로 하여금 보다 자신을 잘 보호할 수 있게 해 주고, 보다 활발하게 「운동」을 전개할 수 있게 해 준다.”
아아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분은 가끔은 들리고 보이는 존재인 변희재 선생이다. (듣보잡같은 소리는 절대로 우리 변선생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진심이다. 그런 말 쓰면 명예훼손에 걸려 마땅하다!!!! 그분은 가끔 들리고 보인다!). “최소한 1주일에 2-3권 이상의 사회과학서, 인문과학서 책을 읽고, 매일 신문과 잡지의 글을 최소 3시간 이상 읽고,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보고서도 주마다 서너 편씩 읽는 것”을 사회적 발언의 조건으로 명시하셨던 불세출의 석학 변희재 선생께서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양동안의 ‘확대된 좌익 세력론’을 집대성하신 ‘광의의 종북’론을 설파하신 바 있다.
“종북주의자에 대해서는 협의와 광의의 개념이 있다..... 가장 좁은 개념은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등 시대정신 멤버들이 규정한 대로 북한의 김씨 일가를 찬양하며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북 개념은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봐야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2008년 대한민국 법원은 북한 김씨 일가의 대남적화 노선으로 국보법 폐지, 미군철수, 연방제 통일안 등 세 가지를 판시했다. 문제는 이런 세 가지 노선을 추종하더라도, 그 사람이 속으로 북한 김씨 일가를 찬양하고,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의도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보법 폐지, 미군철수, 연방제 통일방안을 포괄적으로 동의 및 지원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속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사적 영역 혹은 김일성 수령식의 전지적 시점에서의 판단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종북적 사고다. 근대 자유주의 및 민주주의에서는 사람의 양심과 내면을 재단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며 오직 사람의 말과 행동을 근거로 판단해야 한다..... 광의의 의미에서 박원순도 종북이다. ”
양동안 교수가 들으면 노구를 무릅쓰고 떨쳐 일어나 박수를 칠 청출어람이요 괄목상대요 명불허전이 아닌가. 25년을 사이에 두고 ‘이 땅의 우익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약하고 상대방을 초절정 고수로 치켜 올리는 기묘한 방식으로 ‘죽음’을 피해왔을 뿐 아니라 되레 번성해 왔다. 뿔 달고 근수 나가는 황소 주제에 황소들아 일어나라 외치며 생쥐들을 짓밟아 왔다. 25년 전에는 그나마 책으로 만들어 배포했다가 내무부도 쓴맛을 보고 양동안 교수도 사퇴하는 등 홍역을 치렀던 자칭 ‘우익’은 오눌날엔 “국민의 의사가 많이 반영된 게 여당이다. 많은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일하는 게 맞다.”는 기상천외한 논리를 개발했고 국가 정보 기관의 부서장들에게 “그거 얼마나 더 할 거 같소?” 하면서 황소 등에 타라고 얼르는 꼬라지에 이르렀다. 양동안의 답에 답하면 이 땅의 우익은 죽었다. 이게 우익이냐. 파쇼지. 니들이 우익이면 김일성이 성인이다.
양동안 교수는 그의 글에서 좌익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우익의 조건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우익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한 번 그 조건에 오늘날의 ‘우익’들이 얼마나 걸맞는지를 살펴 볼 일이다. 다음과 같은 조건에 부합하는 우익이라면 나는 기꺼이 지지자는 물론 전위대도 불사할 것이다. 아아 그날이 오면 이 땅에 우익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물을 것도 없이 우익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나라에 그득할 것이 분명하다.
“첫째로 일반 국민대중에 대해 강한 사상적 및 윤리적 설득력을 갖춘 세력이어야 한다. 고(아아 윤창중)...... 또한 그들은 公·私생활에 있어서 윤리적인 흠결이 없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지난날 독재에 기생했고 (지못미 김기춘 비서실장) 부패에 동참했으며 오늘날에도 대중의 빈곤과 소외의 아픔을 외면하고 저만 잘 살려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이론무장이 잘 되어 있더라도 대중에 대한 호소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우익 궐기의 전면에 나서면, 「저 사람들이 또」라는 회의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옳소!!!!)
둘째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교정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의지가 확고한세력이어야 한다. 좌익의 도전에 대응하는 우익의 궐기는 우리 사회의 기존구조와 각종 기득권·기득이익을 보호하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우익의 궐기는 일차적으로 좌익의 제압·제거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향후 내부로부터의 좌익의 위협을 받지 않을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지화자!)
셋째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 지난날 이 나라의 우익 운동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파괴하는 독재정권을 도와주었다는 좋지 않은 기억이 이 나라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우익 운동과 관련된 이러한 국민의 좋지 않은 기억을 씻어주지 않는다면 우익의 궐기는 대중의 광범한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때문에 우익의 궐기를 주도할 세력은 국민의 뇌리에 있는 그러한 좋지 않은 기억을 씻어줄 수 있도록 강력과 행동방식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 실천의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