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미4:1~5)
19. 01. 13.(주일 낮)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기원전 750-690년)는 유대 역사에서 매우 어두운 시절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멸망당하는 것을 목도했습니다(기원전 722년).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겨우 왕조 멸망만은 면한 남쪽 유다의 형편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왕실과 귀족들은 일반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있었고(미2:1~2, 3:2~3), 누구보다 앞장서서 공평과 정의를 실천해야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조차도 극도의 타락상을 보이고 있을 때(미3:11), 미가 선지자가 등장해 말씀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미가 선지자는 마지막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님의 산인 시온 산과 여호와의 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임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였는데요(1~2절), 그 심판의 내용은 무리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의 포도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는 것입니다(3~4절). 그리고 이 미가의 예언은 장차 평화의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연결되어 있는 예언입니다(미5:2).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미가의 이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보았습니다(마2:5~6, 눅2:14). 복음서 기자들이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예수님 출생과 연결했다는 것은, 예수의 출현과 사역을 평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말이 옳은 것일까요?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에서는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날의 평화는 오히려 폭력적일 때가 더 많습니다. 칼을 더 많이 생산하고 창을 더 많이 생산해서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칼과 창의 우위를 통한 평화는 평화가 아닙니다. 상대가 더 강한 무기를 손에 드는 순간 그런 평화는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평화가 되신다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가 평화의 담지자(擔持者), 즉 예수가 평화의 왕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욕망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평화 지향적으로 살겠다는 신앙고백인 동시에 참된 평화는 종말론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바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파한인우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에게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는가를 생각하는 주현절을 맞아, 우리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종말에 주어질 참된 안식과 평화만이 아니라, 오늘, 그리고 여기에서 평화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내는 책임 있는 신앙인의 자세로 살아가야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을 증거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