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그렸다
이 책은 대안의 미술교육을 위한 교과서이다. 미술교육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그 대안으로 시각문화교육으로의 확대를 말한다. 그림, 미디어, 풍경, 공간 등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을 미술교육의 대상으로 삼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무엇을 체험하고 표현하는가를 미술교육의 가치로 두었다. 이 책은, 미술교육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됐다. 기존의 미술시간은 청소년들이 즐거워하지도 않고 별다른 의미를 두지도 않아 왔다. 사실적으로 그리기 중심의 기능 수업은 특출난 몇몇 학생을 위한 것처럼 느껴지고, 변화하는 시각 문화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채 명화 감상에 머무는 수준이었다.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미술교육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새로운 이야기들을 꺼낸다. 먼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미지 모두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의문은 일단 본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시각’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보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렇다면 다르게 보는 방법이 무엇인지 묻는다. 더 나아가 그림에서 여성의 몸이 그려지는 방식, 학교 공간이 권위적으로 만들어진 구조, 그밖에 이미지 뒤에 그려진 힘의 관계 등에 대해 얘기한다. 그와 더불어 자신이 말하고 싶은 걸 이미지로 표현하라고 요구한다. 청소년들에게 조금 어려워 보이지만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미지 뒤에 가려진 이미지의 진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즐거운 과정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유쾌하다. 미술시간을 다시 그리는 것이다. 그림을 못 그리는 학생들도 그림에 관심 없는 학생들도 소외되지 않는 미술시간이 그것이다. 사실적으로 그리기 대신에 온몸으로 체험하고 느낀 것을 말하는 시간, 명화들의 이름을 외우는 대신에 학교와 거리에서 매일 접하는 이미지들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다. ‘나’가 중심이 되고 일상의 삶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배우는 미술시간, 그래서 재밌는 미술시간을 만드는 것이 이 책이 말하는 새로운 미술교육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는 6년의 시간이 걸렸다. 미술교육에 문제의식을 지닌 미술교사로 시작해, 미술교수, 작가, 학부모,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토론과 연구, 집필에만 쏟은 시간이다. 미술교육을 원점에 놓고 교육체계와 가치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실제 교육현장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수업 연구를 반복해 수업사례를 담는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즉 이 책은 미술 교육의 가치를 다시 세울 뿐 아니라, 그 가치가 미술교육의 현장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연구되고 만들어져 왔다.
미술은 오랫동안 감성적인 측면에서 전인적인 인간을 기르는 데 매우 소중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창의력 향상에 있어서 미술의 역할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학교 교육에서 미술교육의 의미와 존재는 점차 퇴색되고 희미해지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미술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해묵은 문제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술교육의 존재와 가치가 점점 과소평가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우리는 오랫동안 그 문제에 대해 골몰해 왔다. 이 책은 그 고민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우리는 미술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시각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오랜 노력과 진통 끝에 이제야 결실을 맺었다. - 머리말 중에서(5쪽)
‘체험-소통-이해’로 새로운 미술교육을 만들기
이 책의 특징 1 이 미술교과서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분류법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회화, 조각, 디자인, 감상 등의 장르적 구분을 모두 버리고 생소하고 어려운 듯 보이는 ‘체험·소통·이해’라는 새로운 구분법을 내세운다. 체험, 소통, 이해는 단지 새로운 방식으로 구분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말하는 새로운 미술교육을 위한 토대가 되는 틀이 되는 것이다. ‘체험·소통·이해’가 미술교육의 새로운 가치가 되는 것이다. 감성교육을 위한 체험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인 소통, 그리고 시각 문화 환경에 대한 이해가 그것이다.
체험 영역은 그리기 감상하기 중심의 수업을 넘어서 감성교육이 중심이 된다. 온몸을 통해서 체험하고 느끼는 것이 미술이 된다. 직접 들판이나 거리에 직접 나가 느낀 느낌을 표현하고 몸 이외의 감각을 깨우는 작업을 한다.
소통 영역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학생들이 새롭게 보는 방식과 표현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시각적 소통 방법을 바꿈으로 새로운 시각을 키우는 것이다. 예를 들면 패러디, 영상 문법에 대한 것 등이다.
이해 영역은 미술사와 시각 문화 연구에서 제기한 굵직한 의문들을 던지고 동시에 그러한 시각 문화적 비평을 한국사회로 끌어와 현실의 시각문화를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을 키워 준다. 미술에서 여성에 대한 문제부터 한국사회의 양극화의 이미지까지가 그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체험-소통-이해’가 통합되는 과정을 통해, 위에서 말한 새로운 미술교육을 만드는 것이다. 창의적이면서도 시각 문화를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민으로 키우는 데 핵심적 세 단계를 연구 끝에 찾은 것이다.
이 책에 내재된 교육목표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몸의 느낌으로 생태 환경과 시각 문화를 체험하고, 시각적 소통 과정에서 생활 속의 시각 문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향유하며, 창의적인 태도로 시각 문화에 참여하여 자신의 삶이 빛을 발하도록”하는 데 있다. 감상 대신 몸과 체험, 시각적 소통과 시각 문화의 이해라는 새로운 단어들은 이 책의 대안적 교육목표의 길을 안내하는 주된 지표이다. 이 책은 현대적인 시각 문화 환경 속에서 미술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대상과 행위’ 모두를 한 장의 지도 안에 담는다는 생각으로 ‘체험, 소통, 이해’의 3개 영역으로 나눠 독자가 한 걸음 한 걸음 답사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 머리말(10쪽) 중에서 - 머리말 중에서(10쪽)
시각 중심의 ‘본다는 것’에서 몸으로 보기를 말한다
이 책의 특징 2 미술 교육을 포함한 미술은 여전히 많은 부분 ‘시각’이 중심이 되고 있다. 미술은 시각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예술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요즘에는 행위예술 등을 통해 이런 고정관념이 많이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시각의 위력은 막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시각 중심의 미술교육에 의문을 던진다. 우리가 본다고 하는 것이 정말 시각으로만 본 것인지,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는 환경에서 잃어 가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이 대안으로 온몸으로 보는 방식을 제안한다. 우리가 눈으로 봤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몸의 다른 감각도 함께 사용했음을 알려주고, 눈을 감았을 때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찰해 본다. 또한 이러한 보는 방식의 변화는 그 자체만으로 미술 교육의 중심을 감상에서 체험으로 옮겨 놓는 결과를 얻게 된다.
현대인은 인간이 지닌 감각 가운데 시각이 가장 발달했다고 한다. 우리의 감각이 얼마나 시각에 집중되어 있는지 눈을 감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코를 막거나 귀를 막을 때보다 훨씬 답답할 것이다. 눈을 감으면 다른 감각이 살아난다. 청각과 후각이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예민해진다. 또 손은 주위를 더듬으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눈을 감고 촉각에 집중해 보자. 익숙한 사물과 주변 환경이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 본문 「감각에 맡겨 봐」 중에서(22쪽)
‘이미지 과잉’에 맞서는 문화교육을 처음으로 말한다
이 책의 특징 3 현대사회에서는 시각 미디어와 다양한 이미지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삶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알게 모르게 개인의 삶과 가치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해나 비평에 대한 교육은 전무한 실정이다. 사회의 변화에 교육 과정이 따라 주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교육에 가장 적합한 과목은 미술과목일 것이다. 하지만 미술 교육은 여전히 ‘명화의 감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각문화교육 관점에서 쓴 미술교과서》는 미술 교육의 또 하나의 목표를 이러한 시각 문화 환경에 대한 이해에 두었다. ‘보는 방식들’이란 테마 아래, 흔히 접하는 미술 도판부터 일상적으로 접하는 이미지(가족사진 등), 학교 공간, 거리, 그리고 나아가 한국사회의 이미지까지 차근차근 살펴본다. 여기서 기존의 교과서에서는 배우지 못한 미술에서 ‘여성과 남성’의 문제, 공간이 삶에 주는 영향 그리고 청계천, 양극화 풍경 등 한국사회의 특수한 이미지까지 비평적으로 분석한다. 즉, 시각 문화 환경을 만드는 사회적 배경도 함께 담았다.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이야기 사회적 이야기까지 함께 생각하는 법을 통해, 수많은 이미지의 홍수에 조금이라도 그것의 의미나 영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도와준다.
인물 사진에서 주인공들은 무엇을 보여 주려는 것일까? 그들은 사진을 통해 자신의 용모를 자랑하며 건강, 부유, 화목한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재기발랄함, 스타와 같은 섹시함도 보여 주고자 한다. 사람들이 인물 사진을 통해 드러내고 싶어 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무엇을 중여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또 여기에서 한 시대의 기준이 되는 문화 코드를 엿볼 수 있다. - 본문 「사진, 나를 비추다」 중에서(228쪽)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라는 공간은 학생의 사고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교실처럼 단순하게 보이는 공간 속에도 흥미로운 비밀이 숨어 있다. 지금은 교단이 사라지고 없지만 모든 학생들이 교사만 바라보아야 하는 일방적인 책상 배치는 여전하다. 교실은 왜 이런 구조로 되어 있을까? 최근에는 새로운 형태의 교실 공간 구성을 시도하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교사의 공간과 학생의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학생들이 마주 볼 수 있도록 교실 공간을 구성하면 학생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활발해지고, 자연스럽게 토론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 본문 「삶을 바꾸는 공간」 중에서(268쪽)
일반인도 함께 읽는 미술교과서
요즘 미술 전시나 미술에 관련된 책이 늘어나면서 미술에 대한 향유가 일상적 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일상의 문화로 자리 잡아 가는 미술 과잉의 사회에서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문가들의 의견에 철저하게 끌려 다니면서 그들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시각 문화의 이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술 교양과 이미지의 홍수에 일반 시민도 무방비로 끌려 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 책은 청소년 뿐 아니라 일반 시민이 이미지 앞에 주체적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일반인의 기초 교양을 위한 미술교과서로도 자리매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