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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6장)
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13. 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15.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16.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17.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18.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19.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묵상/신 26:12-19)
◆ 십일조의 또 다른 용도
(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오늘날 한국 성도들에게 십일조는 미신 그 자체다. 떼어 먹으면 하나님의 것을 훔친 도둑놈, 사업이 망하는 길, 그리고 제대로 바치면 큰 복을 받는 지름길이라는 설교를 무수히 듣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율법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제대로 알고 십일조를 설교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에서 말하는 오리지널 십일조는 어떨까?
첫 번째, 매년 십일조를 드려야 했는데,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신 곳, 곧 성전이 있는 곳까지 가지고 가서 드려야 했다(신 14:22-23).
이것을 가지고 오로지 십일조는 자신이 다니는 본당에 드려야 한다고 역설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럴싸한 응용이다. 그러나 율법과는 다르다. 당시에 유대인들도 주변에 다니는 회당이 있었지만, 십일조는 회당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갔다.
두 번째, 십일조는 돈으로 드리면 안 되었다.
반드시 토지 소산물이나 목축한 것의 십분의 일이어야 했다. 만일 우양이나 곡식을 가지고 가기가 곤란한 먼 거리라면 돈으로 가지고 가되, 반드시 성전이 있는 곳에서 다시 바꾸어서 우양이나 곡식으로 드려야 했다(신 14:25-26). 돈으로 제사장에게 주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만일 돈으로 드리는게 가능했다면, 구태여 다시 바꾸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 삼 년째에 드리는 십일조는 예루살렘에 가지고 가지 말고, 주변의 레위인과 객과 과부와 고아를 위해 사용해야 했다(신 14:27-28). 어떤 분은 이 십일조가 매년 드리는 십일조 외에 따로 드리는 십일조라고 우기는데, 그렇지 않다. 그것은 문맥을 벗어나는 억지다. 만일 따로 드리는 십일조라면 다른 단어를 사용하셨을 것이다.
네 번째, 불의하게 번 것으로 드리지 말고, 헛된 것에 사용하지도 말아야 한다.
14절에서 '부정한 몸'이란 불의한 방식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시사한다. 즉 고리대금 업자의 십일조 같은 것은 역겨운 것이다. 또한 '죽은 자'란 당시에 '바알 신'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헛된 것을 위해 십일조를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오리지널 십일조다.
아무리 너그럽게 해석해도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이 지키는 십일조는 절대로 구약에서 말하는 그런 십일조가 아니다. 다만 구약을 응용해서 드리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구약의 율법을 들이밀면서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겁박하는 목회자들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한다면 정말 위의 말씀대로 해야 한다. 정작 문자 그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응용하면서 오로지 바치는 부분만 율법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매우 부조리하다.
더구나 오늘 본문에서 삼 년마다 드리는 십일조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쓸 것을 명령하는데, 이 율법은 현대 신약시대를 사는 성도에게조차 파격적으로 보인다.
만일 오늘날 교회 성도가 십일조의 삼분의 일을 제 임의대로 주변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쓴다면 교회 지도자들은 어떤 태도를 가질까? 그것이 오히려 성경적이라고 말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정말 정직한 목회자다.
나는 한국의 성도들이 십일조를 성실하게 하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본다. 그런 습관을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율법에 매여서 억지로 바치는 십일조는 반대한다. 적어도 신약의 성도라면 율법과 복음의 기본 사상은 알아야 한다. 율법을 그림자로 알고 그것을 참고로 더 드리는 삶이야 바람직하지만, 율법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드리는 십일조는 반대한다. 그 자체가 실행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복음의 사상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나도 십일조를 바친다. 그러나 나는 십일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용도도 다르게 사용한다. 나는 수입의 십분의 일을 꼬박꼬박 따로 모으고, 그것을 교회와 사역자와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사용한다. 우리 교회 형제들은 모두 이런 방식을 따른다. 그리고 내가 사역하는 중국의 수십 개의 교회들에게도 이런 방식을 가르쳤다.
사실 이렇게 헌금 생활을 하자, 나는 수입의 십분의 일로는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사역하는 한국과 중국의 수십 명의 교회 사역자들이 이런 십일조에 대한 지식을 받아들였고, 이런 헌금 방식을 따르는 공동체들은 서로 돕는 삶이 활발해지고, 더욱 공동체 의식도 깊어지게 됨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헌금 방식에 복을 주신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헌금 방식을 따르면서 하나님께서 더 많이 부어주심을 체험했다.
오늘날 자신이 열심히 십일조를 하는데도 왜 복을 받지 못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라기의 예언이 당신에게 해당되지도 않거니와, 당신이 바치는 십일조가 잘못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면, 어떻게 복을 기대하는가? 독립군 자금으로 낸 돈이 결국 일본군으로 들어가고 있다면 독립유공자가 될 수 있겠는가? 동기야 훌륭하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축시킨 꼴이 되었다. 어떻게 상을 기대하겠는가? 신약의 성도라면 십일조 율법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응용해야겠지만, 율법대로 한다고 고집하더라도 최소한 성경대로 십일조를 드리고 사용해라.
너무나 가난해서 자신은 어떤 헌금도 할 수 없다고 할 사람은 없다. 거지조차도 동료 거지를 도와야 할 순간이 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이 버거우면 이십 분의 일이라도 괜찮다. 신약의 성도는 그 비율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고후 9:7).
그러나 살만하다면 십분의 일을 넘어서 보자. 적어도 구약의 성도들보단 우리가 나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제대로 드리자. 무조건 교회에 바치면 알아서 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오늘날 교회를 부패하게 했다. 눈먼 돈이 되게 하지 말고, 교회 재정을 제대로 감시하고, 어려운 사역자들을 돌아보고, 교회의 어려운 형제들을 돕고, 가난한 일가친척을 돌아보고, 주변 이웃을 돕자. 다만 불가피하지 않으면 익명으로 돕자. 그래야 헌금답고, 받는 사람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다.
십일조를 그렇게 쓰면 성경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가?
한국의 성도들은 성경에서조차 말하지 않는 십일조 율법에 사로잡혀 있다. 거의 공포 수준이다. 워낙 세뇌되어서 그럴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도 두려움 때문에 부적을 차마 없애지 못한 학생이 내게 부적을 가져왔다. 나는 거침없이 찢어버렸다. 말씀에 서 있으면 미신이 두렵지 않다. 부디 헛된 미신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말씀에 확고하게 서서 행하자. 그것이 우리와 교회와 사회를 살리는 길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러한 십일조 생활에 하나님께서는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19)라고 하신다.
한국의 성도들이 모세의 율법대로 십일조의 삼분의 일만이라도 이웃을 위해 썼더라면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다르게 보았을 것이다.
주님,
형제들을 미신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보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인색함에서 벗어나서 풍성한 마음으로 돕는 삶이 이루어지게 해주시고,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신 26:12-19 / 십일조의 또 다른 용도|작성자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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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약교회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교회가 교회답고 성도가 성도다우면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