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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에베소서 5:1-7)
(에베소서 5장)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묵상/엡 5:1-7)
◆ 율법과 복음
성도의 삶의 규례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모두가 주저 없이 '성경'이라고 대답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범위가 너무 넓어서 큰 도움이 안 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율법도 있고, 복음도 있는데, 이 둘은 여러 부분에서 충돌한다. 복음은 율법 외에 다른 길이기 때문이다(롬 3:21). 그런데 막연하게 성경이 삶의 규례라고 하면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루터를 오랫동안 연구한 월터(C.F.Walther)는 신구약 성서의 교리적 내용은 율법과 복음이라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교리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둘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서가 닫힌 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루터는 '율법을 복음으로부터 구분할 줄 아는 예술을 잘 습득한 사람은 과연 성서에 관한 석학으로 불려질 수 있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루터는 성경에서 이 둘을 구분하는 작업을 '예술'이라고까지 표현했단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율법과 복음을 구분할 줄 모르고, 자기 입맛에 맞게 어떤 것은 율법에서, 어떤 것은 복음에서 적절하게 따서 혼합시키고 있다. 가령 구원과 영생 부분은 복음에서 가져오지만, 헌금 부분, 곧 십일조, 첫 열매 등의 개념은 율법에서 가져온다. 신약에 와서는 성도들이 곧 성전이건만(고전 3:16), 예배당 건축할 때는 여지없이 학개서에 나온 예루살렘 성전 건축 독려를 근거로 헌금을 독려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예배당은 하나님의 집, 성전 등으로 둔갑한다.
성경에 있는 말씀 그대로일지라도, 우선순위만 살짝 바꾸어도 사이비, 이단이 될 수도 있다. 바리새인들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보다 십일조를 더 우선순위에 놓음으로써 사이비가 되었고, 예수님께 저주받게 되었다(마 23:23-24).
오, 주님, 제가 복음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게 해주십시오.
◆ 성도의 삶의 규례
(1-2)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오늘날 수 많은 교회에서 구원, 영생은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을 잘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면 복음은 반쪽짜리가 된다. 구원 이후에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 여기에 대답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아주 분명하게 성도의 표준이 무엇임을 밝힌다.
곧 '하나님을 본받고,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는 말씀이다.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맞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체험해 본 적이 없으니, 이 말처럼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씀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체험한 사람들은 이 말씀이 무엇인지를 안다. 나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 같이 너희도 하라'는 말씀이 무엇인지 안다.
우리는 주님을 안 만큼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주님의 온유와 사랑과 용서를 체험한만큼 우리도 형제들에게 베풀 수 있다. 그런 것 없이 단지 말씀대로 산답시고 사랑과 온유와 용서를 시도하면 그 시도는 갸륵하지만, 결국은 외식하는 바리새인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머리로만 신앙생활하려는 습관을 버리고, 주님을 묵상하고, 더욱 알게 해달라는 기도와 함께 말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이 우리가 더욱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할 이유다. 믿어야 주님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5절의 말씀은 충격이다.
이 말씀은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았을지라도, 음행이나, 우상숭배를 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일까? 만일 우리의 구원이 행위로 잃어버릴 수 있다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행위라고 한다면 반쪽짜리 복음이 된다. 놀이공원에 들어가는 것은 무료지만,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돈을 내야 한다면 무료 티켓에 열광할 일이 있겠는가?
이 말씀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행위로 잃어버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적어도 바울은 그런 모순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배도와 관련 있다. 성도들이 살아가면서 음행, 탐욕 등의 죄를 간혹 저지를 수도 있다. 다윗은 무려 율법 시대에 음행과 살인 죄를 저질렀음에도 용서받았다. 하물며 신약에서 용서가 불가능하겠는가? 신약에서도 실제로 용서된 경우가 있다(고후 2:7).
그러나 오늘 본문말씀처럼 '~~하는 자'란 회개할 생각없이 지속해서 행하는 자다. 헬라어 '포르노스'는 난봉꾼, 매춘부로 해석한다. '했던 자'가 아니라, 그의 정체성이 '음행하는 자'다. 회개할 마음이 없으며 계속 그렇게 살겠다고 하는 자다. 이런 자는 결론적으로 '믿음을 배반한 자'다.
성경은 종종 어떤 행위를 지속해서 하는 자를 가리켜서 믿음을 배반한 자로 취급한다. 믿음을 배반한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다(딤전 5:8).
성경은 믿음을 배반한 자에 대해서는 가차없다.
물론 한번 영생을 얻은 자는 영원히 영생을 잃지 않는다(요 10:28).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신 말씀이다. 성경 어디에도 한번 영생을 얻었으면, 그가 믿음을 버려도 영생이 유지된다는 말씀은 없다. 나는 어떤 극단적 교파 사람들과 이것으로 논쟁한 적이 있다. 한번 믿어서 구원 받으면, 무슨 짓을 해도 구원이 유지되며, 설사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천국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칼빈주의는 한번 구원받으면 다시는 잃지 않는다는 이론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잘 믿다가 배도한 사람을 가리켜서 애초에 구원 받지 못한 자라고 한다. 편리한 이론이다. 칼빈 주의든 알미니안 주의든, 결국 믿지 않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결론은 동일하다. 배도한 자도 믿지 않는 자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배도자가 되면 안 된다. 만일 우리가 죄를 가볍게 여기고, 음행이나 탐욕을 부리는 삶을 지속한다면, 결국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평생 교회를 다니고, 헌금을 내고, 봉사를 제법 했어도, 심판대 앞에서 믿지 않는 자와 같은 자로 취급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지, 그냥 상상으로만 믿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음행 - 간음 죄를 가리킨다. 결혼 외의 모든 성적 결합은 다 음행이다. 음행을 역겨워할 수 있어야 한다. 동성애도 음행이다.
▷더러운 것 - 음란한 동영상을 시청하고, 각종 음란하고 악한 글을 탐독하며, 부패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탐욕 - 돈이나 권력을 쫓아 사는 삶이다.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정의한 이유는 탐욕스러운 사람에게는 탐욕이 하나님 자리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탐욕에 붙잡힌 교인 중에는 돈 때문에 신의를 저버리는 자들도 있다. 그토록 말은 번지르르 했건만, 돈 문제가 얽히자, 바로 본색을 드러내고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자들을 보면 탐욕이 왜 우상숭배인지 느낄 것이다.
▷언어 - 성도가 멀리해야 할 언어생활에서 누추함,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 들이 있다.
누추한 언어는 어떤 것들일까? 어리석은 말이란 무엇일까? 글이 길어지니 각자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하다.
어떤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끼는지 쉬지 않고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그런 말에 사람들은 웃을지 모르나 상처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왜 모르는가? 세속적인 유머나 개그들이 교회의 영적 분위기를 흐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종 교리나 헛된 이론에 속지 말고, 복음의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자.
성도란 마땅히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이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거부하고 세상을 쫓아 사는 사람은 결국 배도자의 불과하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내가 믿음에 서있는가?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후 13:5)
주님,
제가 깨어서 믿음에 굳게 서고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며,
어리석은 이론에 속지 않게 해주십시오.
[출처] 엡 5:1-7 /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작성자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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