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 자신을 중심으로 뭔가 공부하고 수행하려 하는 이 마음 속 가운데 나를 두고
시작하기 때문에 크게 진전이 없습니다.】
<현관장엄론>에서 70가지 수행법 중에 제일 먼저 보리심을 설명할 때
'이타를 위해 자신의 깨달음을 얻겠다'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이 아닌 이타를 위해 자신의 깨달음을 이루겠다고 할 때
개념의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중심으로 뭔가 공부하고 수행하려 하는 이 마음 속 가운데 나를 두고
시작하기 때문에 크게 진전이 없습니다.
이 마음속 가운데 나 대신 일체중생을 두고 어떻게 되는지 한 번 흉내라도 내어보십시오.
우리는 보리심을 보살의 마음, 일체 중생을 위한 마음 이렇게 말로는 하는데
생각을 이렇게 하진 못합니다. 생각 하는 것도 하나 하나 배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라 할때 수행의 목적인 보리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끝없는 번뇌, 팔만사천 번뇌라고 하는데,
팔만사천의 수보다 더 많습니다. 수로 이렇게 표현할 뿐이지 하루 종일 일어나고 사라지는 번뇌가 얼마나 많습니까?
대표적으로 탐진치 삼독을 말하지만, 번뇌의 종류가 우리가 아는 근본번뇌6가지와 가지 번뇌20가지를 또다시 나누면 그 종류가 더 많아집니다. 하지만 서원단(誓願斷) 번뇌를 다 제거하겠다. 마음을 잘 단속해서 번뇌를 다 제거하겠다고 그것이 바로 보리심의 마음을 낸다면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부터 닦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고 일체중생을 위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구제할 수 없습니다!
일체중생을 구제하려는 내 마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도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정말 남을 위해 일체중생을 구제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자신의 마음이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번뇌와 좀 멀어지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줄이기 위해 번뇌와 싸우고,
번뇌가 일어나자마자 바로 바로 제거하는 자기 마음공부부터 해서 닦은 다음에 다른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고
그 순서는 이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끝없이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공부해야 합니다.
<화엄경>만, <금강경>만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고, 부처님 말씀 조그만 것도 버릴 것 없이
모두 다 필요합니다. 부처님 말씀 이거는 좋고 저거는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큰 업을 짓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약도 마찬가지로 그종류가 다양하지만 이 약만이 최고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환자의 병에 따라 환자마다 최고의 약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환자의 병에 따라 그에 맞는 약이 따로 있는 것처럼 이 많은 부처님 법도
우리에게 다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내가 다 공부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해야 내가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져 일체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뜻으로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부처님의 법을 빠짐없이 다 배우겠다고 원을 세웁니다.
- 티벳 스님과 함께 하는 <반야심경>공부 中에서
첫댓글 소중한 법문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옴아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