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고사의 입장
붓다고사가 3법인(三法印) 중 무상인(無常印)을 염두에 두었을 때, 과연 그는 붓다가 신통력(iddhi)을 통해 무한할 정도의 시간 동안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고 하는 믿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신통력에 의한 수명 연장에 대하여 붓다고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붓다고사는 어떻게 붓다가 과(果)-등지(等至)(phala-samāpatti)에 의해 자신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붓다의 수명연장에 대한 붓다고사와 <열반경>의 차이는 붓다고사가 과-등지(phala-samāpatti)라는 용어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붓다고사의 과-등지와 신통력(iddhi)은 동일한 것일까?
붓다는 과연 신통력을 통해 자신의 수명을 연장했을까? 팔리어본 <열반경>에는, 붓다가 실제로 신통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수명을 연장했다는 것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열반경>에서는 아난다가 붓다에게 수명을 연장하라고 간청하지 않음으로써 붓다가 신통력을 사용해서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되어있다. 마라와의 대화 끝에, 붓다는 3개월 뒤, 입멸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붓다는 신통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수명을 연장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이 세상에 머물러 살려는 의지를 놓아버린 것이다.
붓다고사는 붓다가 실제로 신통력을 통해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았다는 나가세나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지만 붓다고사는, 나가세나 비구가 붓다가 신통력으로써 100년을 살 수 있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나가세나 비구의 이러한 믿음은, <논사>와 정면으로 모순된다. <논사>에서는 신통력을 통한 수명 연장 능력에 대한 믿음을 반박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논사>의 이러한 견해에 따라서, 붓다고사는 신통력을 가진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신통력을 가진 이는 신통력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때아닌 죽음을 가져오는 요인을 피할 수 있다.'
'때아닌 죽음'이란, 태어날 때 받은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을 말한다. 죽음의 도래는 다음의 네 종류에 의해 이루어진다.:
①수명(āyu)이 다함으로써
②재생을 가져오는 업력을 소진함으로써
③수명과 업력이 동시에 끝남에 의해
④파괴적인 업의 간섭에 의해. 첫 3개는 시기에 맞춘 죽음이라고 하고, 맨 마지막
④는 시기에 맞지 않는 죽음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수명이 끝나기 전에 파괴적인 업은 재생을 가져오는 업력을 단절시키므로 때아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신통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이는 시기상조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붓다고사의 주장에 의하면, 신통력에는 한계가 있어 모든 것이 신통력에 의해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신통력을 통해서도 불가능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붓다고사는 예를 제시하고 있다. 노(老), 병(病), 사(死), 업보에는 신통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논사>를 주석하면서 신통력으로 무상(無常)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신통력을 통한 수명 연장이라는 믿음은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 중의 하나인 무상법과 모순 관계를 이루게 되므로, 붓다고사는 신통력에 의한 수명 연장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그는 <청정도론>(Visuddhimagga)에서 신통력을 10종류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신통력으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지 않다. 신통력으로 시기상조의 죽음을 피할 수 있겠지만, 새로운 수명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붓다고사의 신통력에 관한 이해를 역사적인 붓다에게 적용해 보면, 붓다는 신통력으로 자신의 수명을 100세 이상으로 연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무상법과 업론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붓다는 때이른 죽음을 가져오는 요인(예를 들면 질병)을 방지함으로써 시기상조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치명적인 질병도 대중부가 이해하는 것과 같은 신통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과-등지(phala-samāpatti)를 통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붓다고사는 수명 연장에 관한 <열반경>의 경문에 대하여 자세한 주석을 하고 있지 않은 사실이다. 그는 <열반경>을 주석하면서 'iddhi(신통력)'라는 용어에 대해서 전혀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우리는 붓다고사가 이 문제의 경문에 중요성을 두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이 경문을 무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마도 그는 대중부가 이해하고 있듯이 신통력을 통해 수명을 새롭게 연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문제의 경문이 거짓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일단 불설(佛說)로 여겨지는 경문을 직접 배척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경문은 붓다가 의도적으로 아난다의 슬픔을 완화시켜 주기 위해 만들어낸 시나리오의 일부로 해석하고 있다. 경문 그 자체는 진실이라기보다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경문은 진실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붓다가 아난다의 슬픔에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아난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붓다는 아난다가 마라에 의해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붓다의 선언을 듣고도 그에게 수명 연장의 간청을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일부러 붓다는 세 번이나 동일한 경문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입장으로는 <열반경>의 수명 연장 운운은 방편일 뿐이라는 해석이다.
<붓다의 신격화와 반신격화/ 안양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