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수명에 대한 초기불교의 견해
붓다의 수명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다. 물론, 위대한 붓다가 보통 사람들과 같이 80세에 입멸한 사실을 전혀 불만 없이 수용했다고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초기불전에서는 초인간적인 붓다의 능력을 피력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붓다의 수명에 관한 문제제기와 해명의 움직임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초기불교시대는 인간적인 붓다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장아함경>의 <대본경(大本經)>에서는 과거7불(佛) 각각 시대의 사람들의 수명을 일일이 언급하며, 석가모니불 시대 사람들의 수명을 밝히고 있다.
석가모니불 시대 사람들의 수명은 백세를 넘는 이는 적고 넘지 못하는 이는 많다.
경에서는 붓다 수명에 대한 정확한 명시를 피하였다. 반면, <증일아함경> 제48 [10불선품(不善品)]에서는 과거7불의 수명을 명확하게 설하고 있다.
비바시여래의 수명은 8만 4천 세였고, 시기여래의 수명은 7만 세였으며,
비사라바여래의 수명은 6만 세였다. 구루손여래의 수명은 5만 세였고,
구나함모니여래의 수명은 4만 세였으며, 가섭여래의 수명은 2만 세였다.
지금 나의 수명은 너무 감소하여 백세를 넘기지 못한다.
역사적 붓다의 80세 입멸과 일치하지 않는 초기불전의 내용이다. <대본경(大本經)>에서 설한 석가모니불 시대의 사람수명과 [10불선품]에서 설하는 석가모니불의 수명은 일치한다. 이로써, 붓다의 수명이 보통 사람들의 수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붓다 시대 사람들의 최대 수명이 100세라는 것은 곧, 붓다 자신의 수명을 의미한다. <대본경>에 해당되는 Dīgha Nikāya의 Mahapadana Sutta [<대전기경>]에 대한 붓다고사의 주석에는
"100년을 또 한 번 더 살지는 못하지만 20, 30, 40, 50년 또는 60년을 더 살 수 있다. 예를 들면, 재가신자 위사카(Visākhā)는 120년을 살았고, 아난다(Ānanda), 마하카사파(Mahākassapa), 아누룻다(Anuruddha)는 각각 150년을 살았고, 바쿨라(Bakkula Thera) 장로는 160년을 살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200년을 산 사람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경에서는 역사적 관점에서 붓다를 이해했음을 증명한다.
<유행경>에서는 붓다의 수명 연장 능력에 대해 설명한다. 붓다의 신격화 내지 붓다의 수명이 보통 사람의 수명과 같다는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초역사적인 관점에서의 불타관을 엿볼 수 있다. 붓다는 아난에게 스스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능력을 피력한다.
나는 이미 늙었고, 나이 또한 80이나 된다. 마치 낡은 수레를 방편으로 수리하면 좀 더 갈 수 있는 것처럼 내 몸 또한 그렇다. 방편의 힘으로써 조금 목숨을 연장할 수 있기에 나는 스스로 힘써 정진하면서 이 고통을 참는다. 일체의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 무상정(無想定)에 들어갈 때, 내 몸은 안온하여 아무런 번민도 고통도 없다.
경문에서 붓다는 선정을 통한 수명의 연장 능력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수명 연장의 기간을 '조금'이라고 한정하였다. 붓다가 당시 80세인 상황에서 수명을 연장하더라도, '조금'이 의미하는 시간은 짧다. 결과적으로 조금이라는 기간은 3개월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는 3개월 뒤에 반열반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결국 3개월간 더 유지했기 때문이다.
반면, <대반열반경>에서는 붓다의 수명에 대한 견해에 큰 차이를 두며, 불타관의 전폭적인 변화 양상을 보인다. 즉, 붓다의 수명을 엄청나게 긴 시간, 겁(劫)으로 설하며 붓다의 수명이 무한에 가깝다는 입장을 보인다.
4신족을 수행한 사람은 1겁 또는 1겁에 가까운 수명을 유지할 수 있다. 여래는 지금 대 신력을 지니고 있으니, 어찌 1겁 또는 1겁에 가까운 수명을 유지할 수 없겠는가?
<대반열반경>과 마찬가지로, <유행경>, <반니원경>, <불반니원경> 등의 한역불전과 Mahāparinibbāna Sūtta에서도 비구, 비구니가 4신족을 수행하면 원하기만 하면 1겁 동안 죽지 않으며, 여래는 이미 수행했기 때문에 원하기만 하면 1겁 이상을 머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붓다가 이렇게 설한 까닭을 <아비달마대비파사론>에서는 "선정을 얻음이 자재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불세존께서는 수명에 머무르시거나 버리신다. 세존께서 4신족을 잘 수행했기 때문에 1겁 혹은 1겁 이상 머무르고 싶으면 뜻대로 머무를 수 있다고 하신 것과 같다."고 해석하고 있다.
세친도 붓다는 대자비가 있기 때문에 삼매에 의해서 자유롭게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데 찬성했다. 그의 주장은 대승불교와 유가유식설에 도입되는 수단으로서 설해졌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겁 이상의 수명이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붓다는 80세에 입멸하였다. <유행경>에서는 그 책임을 아난에게 돌리고 있다. 아난이 마라에 홀려서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명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대반열반경>, <불반니원경>, <반니원경>도 붓다의 수명 방기에 대한 책임을 아난에게 돌린다는 내용은 같다. 이러한 초기불전의 견해는 설득력이 약하다. 붓다는 아난이 마라의 유혹으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붓다는 아난에게 세 번씩이나 수명 연장의 권청을 유도했고, 아난이 침묵했다는 이유로 붓다가 수명을 포기했다는 것도 그 책임을 아난에게 직접적으로 묻는 것도 억지스럽다. <불반니원경>과 <반니원경>에서 아난은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음을 토로한다. "붓다는 위없고 바르며 진실한 성스러운 존자로서 자재함을 얻지 않았는가? 그런데 반드시 나의 간청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만약 붓다가 1겁동안 계신다면 지존인 미륵은 어떻게 성불하겠느냐?"고 반문한다.
훗날, 붓다의 수명 포기와 아난의 책임론에 관하여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엘리아데(Eliade)는 아난의 실책을 묻는 에피소드는 붓다의 입멸을 설명하기 위해 창작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붓다고사도 Mahāparinibbāna Sūtta 주석에서, 붓다 스스로 수명을 10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이로써, 붓다의 수명 방기에 대한 책임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이는 무상법과 관련해 이해되어야 하는 문제로써, 붓다는 스스로 입멸할 시기를 결정한 것이 된다.
경에서 모든 책임을 아난에게 전가시킨 것은 아난을 배려한 붓다의 방편이라고 붓다고사는 설명한다. 아난에게 책임 지움으로써, 그의 슬픔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해석했다. 아난에게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슬픔을 염려한 붓다의 방편이었다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초기불교에서는 80세에 입멸한 붓다의 수명에 대해 역사적인 사실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교도들은 절대적 신앙의 대상인 붓다가 인간 수명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데 만족할 수 없었다. 따라서 초기불전에서는 붓다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능력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붓다의 수명을 겁(劫, kappa)으로 설하고 있다. 이는 초기불교에서 이미 초인간적 불타관의 맹아가 싹트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붓다의 수명에 대한 제(諸) 해석/ 박지영(명오) 동국대 박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