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수명에 대한 부파불교의 견해
붓다의 수명에 대하여 부파불교시대는 초기불교의 견해를 계승하는가 하면, 초역사적인 불신관(佛身觀)을 제시하기도 한다. 나리나끄샤 둣뜨(Nalinaksha Dutt)는 상좌부와 설일체유부는 인간으로서 붓다를 이해했고, 대중부는 고타마 붓다에게 초세간적인 존재성을 부여했다고 설명하였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는 앞에서 논의된 초기불전과 대동소이며, <이부종륜론>은 붓다의 수량이 끝이 없다는 초인간적인 불신관을 주장하였다.
붓다의 수명에 대한 상좌부의 견해는 80세에 입멸한 역사적인 사실을 고수했다. 그런데 상좌부 소속의 마하시바 장로(Mahāsīva Thera)는 붓다의 최대 수명은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 현겁(賢劫)까지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붓다는 선정을 통하여 10개월씩 치명적인 질병을 극복함으로써 죽음을 연기하여 현겁까지 세상에 머물 수 있다는 마하시바의 견해를 붓다고사는 Sumaṅgalavilāsinī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석가모니불과 미륵불과의 시간적 거리가 굉장히 길다는 것만 추측할 뿐, 정확이 얼마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붓다의 수명에 대한 해명에 한계가 있다. 대중부에서는 붓다의 수명은 무량하다는 입장이다. <이부종륜론>과 <구사론소>의 입장을 살펴보자.
여래의 색신은 실로 끝이 없고, 여래의 위력도 또한 끝이 없으며, 제불의 수명 또한 끝이 없다.
붓다의 수명이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이라는 점에서는 마하시바 장로의 입장과 같다. 위의 인용문에 대하여 규기는 <이부종륜론술기>에서 "붓다는 많은 겁에 걸쳐 수행하여 보신을 얻어, 법계에 원만하여 한계가 없다. 보여지는 장육(丈六)의 색신은 진실한 불신(佛身)이 아니다. 왜냐하면, 근기에 따라 화현(化現)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많은 겁에 걸쳐 수행해 얻은 결과로서의 보신이므로, 수명 또한 무궁하다는 것이다. 카와무라 코쇼(河村孝照)는 색신으로서 보신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이것은 <법화경> 등에 설해진 여래신과 상응하는 것이고, <대승열반경>에 있어서는 법신에 역점을 두고 설해지고 있는 연원은 대중부의 불신관에 있다고 논하였다.
설일체유부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붓다를 이해했다. <아비달마대비파사론>에서는 어떻게 논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만약 모든 부처님은 제3분의 수명을 버리신다고 설명하는 사람은, "세존 석가모니께서 수명으로는 마땅히 120세를 사셔야 하는데, 뒤의 40년은 버리고 80세만 받으셨다."고 한다.
문: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출현하실 때, 그 곳의 사람 수명은 백세를 넘는 이가 없는데, 어떻게 세존 석가모니의 수명이 120세라고 하는가?
답: 모든 부처님의 색(色), 힘[力], 신분[種姓], 부귀(富貴), 대중[徒衆], 지견(智見)이 다른 유정보다 수승한 것처럼 수명의 양도 또한 보통 사람들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부처님은 제5분의 수명을 버린다고 말하는 사람은, "세존 석가모니의 수명으로는 마땅히 백세를 사셔야 하는데, 뒤의 20년은 버리고 80세만 받으셨다."고 한다.
문: 모든 부처님의 색(色), 힘[力], 신분[種姓], 부귀(富貴), 대중[徒衆], 지견(智見)이 다른 유정보다 수승한데, 어떻게 수명이 일반 사람들과 같은가?
답: 그 만큼의 수명을 받는 때에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위 논문에서는 붓다의 최대 수명을 100세와 120세 두 가지로 논하고 있다. 이는 <대본경>에서 석가모니불 시대 사람들의 최대 수명을 대략적으로 100세로 표현한 것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불신(佛身)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모든 부처님의 몸에는 간략히 2가지가 있다. 첫째는 생신(生身)이요, 둘째는 법신(法身)이다. 여래는 세간에 살아 계시고 세간에 오래 머문다고 함은 부처님의 생신을 말한 것이고, 출세간에 머물면서 세간법에 오염되지 않는다."고 함은 부처님의 법신을 말한 것이다.
붓다의 생신에 대하여 대중부와 분별부에서는 무루법이라고 하는 반면, 설일체유부에서는 무명과 애욕의 결과이며, 탐(貪), 진(瞋), 치(癡), 만(慢)이 생기므로 유루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붓다는 해탈했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생신까지 무루라고 하지는 않는다.
부처님의 생신은 번뇌에서 생겼기 때문에 유루라 하고, 다른 번뇌를 내기 때문에 유루라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생신은 인과가 있고, 법신은 인과를 초월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카와무라 코쇼(河村孝照)는 <아비달마대비파사론>에서 논하고 있는 법신의 내용은 5분법신(五分法身) 등의 무루의 법온(法醞)과 단순히 교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요약하였다.
붓다고사는 붓다의 수명에 대하여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입장이다. 안양규는 붓다고사의 견해를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붓다는 본래 자신의 전생의 선업 때문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긴 수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둘째, 붓다가 태어난 세상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100년이기 때문에 그도 또한 같은 길이의 수명을 가졌다.
셋째, 그렇지만, 카쿳산다(Kakusandha) 붓다와 같이 석가모니 붓다는 자신의 수명 중 5분의 4만살고 나머지 5분의 1은 포기해 버렸다.
넷째, 만약 포기하지 않고 원하기만 했더라면, 100세까지 계속 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붓다고사는 겁(劫, kappa)에 대해서도 100년으로 정의하고 있다. 겁은 한 시대의 인간의 수명이라는 해석이다. 설사 붓다의 수명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길다고 하더라도 인간 세계에 사는 한 붓다의 육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전생의 헤아릴 수 없는 선업의 결과로 수명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길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의 수명만큼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붓다고사는 업설(業說)로써 해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부파불교시대의 특징은 초기불전을 재해석했다고 할 수 있다. 설일체유부와 상좌부, 붓다고사는 보수적인 성향으로 관련 경들의 내용에 대한 해명을 통하여 인간적인 붓다를 강조하였다. 반면, 대중부와 분별부, 마하시바 장로는 초인간적인 불타관을 주장했다는 데 주목할 수 있다.
<붓다의 수명에 대한 제(諸) 해석/ 박지영(명오) 동국대 박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