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수명에 관한 대승불교의 견해
아미타경의 견해
대승불교는 붓다의 수명이 무량(無量)하다는 입장이다. 즉, 생신으로서 붓다의 수명에 한계는 없다. <아미타경>에서의 붓다는 법신 또는 보신으로 간주되며, 아미타불은 무량한 수명을 가진 붓다로서 석가불의 재해석이라는 견해도 있다. 본론에서는 <아미타경>과 함께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을 중심으로 고찰하기로 하겠다.
<아미타경>은 대체로 기원전에 인도에서 성립되었다고 한다. 아미타불의 기원설로는 조로아스터교의 기원설, 비쉬누(Viṣṇu) 신화, 범천(브라흐만) 신화, 서방의 수호신 바루나(Varuna)와 관련된 설, 불교 신화 속의 대선견왕(大善見王)과 동일시하려는 설 등 이 있다.
그러나 아미타-유스와 아미타-바의 유래를 불타관의 변천에서 찾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 즉 초기불교에서 부파불교 특히, 대중부 계통에서 여래의 수명이 끝이 없고, 위력이 끝이 없음에 대응하는 것으로써, 초기불전 속에 이미 석가모니 수명의 영원성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 있고, 그 밖에 붓다와 광명의 결합에 대한 자료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아미타-유스든 아미타-바든 원래는 석가모니와 다른 붓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아미타경>의 산스크리트어 경명은 <무량수경>과 같이, Sukhāvatvyūha이다. 현존의 <아미타경> 범어 원전에는 아미타불이라는 명칭은 없다. 무량(無量)의 원어는 아미타(Amita, 무량)이다. 인도에서 아미타불은 무한한 광명을 가진 분이라는 뜻의 아미타-바(Amitābha, 無量光)와 무량한 수명을 가진 분이라는 의미의 아미타-유스(Amitāyus, 無量壽), 두 개의 산스크리트어 단어로 표기되었다. '아미타-바'와 '아미타-유스'가 중국에 전해지면서, 두 단어를 '아미타'로 음사 표기되었다.
구마라집 역의 <아미타경>에서의 이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리불이여! 저 부처님을 아미타라고 하는 까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중략) 저 부처님과 그 사람들의 수명이 헤아릴 수도 없고 끝도 없는 긴 아승기겁이기 때문에 명호를 아미타라고 합니다.
구마라집은 경의 명칭 그대로 아미타불로 번역하였다. <아미타경>의 이역본인 현장의 <칭찬정토불섭수경>에서는 산스크리트어 원전의 Amitāyus Tathāgataḥ(아미타 여래)를 무량수불로 번역하였다. <아미타경>과 <무량수경> 등의 정토 경전에서는 붓다의 명호로서 아미타-유스와 아미타-바가 결합되거나 동일시되고 있다. <정토삼부경>의 용례를 보면, <무량수경>에서는 경명이 나타내는 그대로 일관되게 무량수불이 사용된다. 반면, 무량광불은 무량수불의 광명이 무량하다고 설명할 때, 한 번만 사용되고 있다.
우익지욱의 <불설아미타경요해>의 주석을 살펴보자.
마음의 성품은 빛나고 있으면서 항상 고요하기 때문에 수명이라 한다. 이것은 심성의 무량한 본체를 철저하게 증득하였기 때문에 수명이 무량한 것이다. 법신의 수명은 시작도 끝도 없고 보신의 수명은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다. 이 또한 부처님마다 도가 같아서 모두가 수명이 무량하다고 말할 수 있다.
위의 주석은 <아미타경>에서의 아미타불은 법신이며 보신임을 밝히고 있다. 모든 붓다의 수명은 무량하다는 입장에서, 무량한 광명의 의미까지 함축하여 해석하고 있다. 아미타불을 무량한 수명을 가진 붓다로 이해하는 견해는 중국불교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에서도 그대로 계승된 것 같다.
<관무량수경>에서는 아미타불과 무량수불이 거의 같은 횟수로 혼용되고 있다. 선도는 <관무량수불경소>에는 무량수(無量壽)는 중국어이며, '나무아미타불'은 인도의 범어라고 경명을 해석하고 있다. 무량수는 법을 말하는 것이고, 각(覺)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과 법을 함께 나타냈기 때문에 아미타불이라 부른다고 되어 있다.
<종경록>에서도 "아미타란 여기 말로 무량수다. 곧 이치대로 수명을 지니는 것이니, 일심의 진여성품이 그지없으므로 무량한 수명이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태고보우의 어록에서도 아미타불은 범어인데 중국말로는 무량수불이라 번역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로써,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 불교에서도 붓다의 수명에 대한 초월된 견해가 보편적으로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은 대승보살의 이상상이며 구원불로서 존숭되었을 때 출현된 붓다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유키 레이분(宮本正尊)은 이미 석가불의 참된 모습을 아미타불의 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아미타경>의 편집자는 역사적인 붓다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방법에서, 무량한 수명과 무량한 광명을 가진 붓다의 참된 모습을 아미타불로 형상화했다. 그러나 우에다 요시부미(上田義文)의 논평과 같이, 아미타가 석가불이라는 사상은 역사적 불타관에 의해서는 해명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불타의 사상을 해명할 수 있는 학문적 입장이 없으면, 역사적 붓다의 설법이 아닌 것이 역사적 연구의 입장에서부터 분명하게 된 대승경전이 불설이라는 것의 참된 의미는 도저히 간명할 수 없다. 즉, 석가불과 아미타불이 동일한 붓다상이 되기 위해서 규명되어져야 할 것이 있다.
결론적으로, 붓다의 수명은 <아미타경>의 성립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초기대승 불교도들은 역사적인 붓다의 수명을 초역사적 관점에서 인식하고자 하는 의도로써 아미타불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붓다와 초역사적 붓다와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논거를 어디에 두는가에 대해 분명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적인 석가불이 붓다상의 기초라는 입장에서 아미타불은 초역사적 붓다가 되고, 초역사적 아미타불을 붓다상의 기초라는 입장에서는 역사적 붓다와의 관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붓다의 수명에 대한 제(諸) 해석/ 박지영(명오) 동국대 박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