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유혹 전설의 의미
악마의 유혹에 관한 이야기는 석존이 성도한 후의 일화에서도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빠삐만[波旬]이라고 불리는 악마는 석존을 공포에 몰아넣으려고 때로는 거대한 코끼리의 상왕(象王)으로, 때로는 큰 뱀[大蛇]의 왕으로 변하여 큰 바위를 부수고 큰 굉음을 울리며 석존에게 접근했지만 그럴 때마다 석존은 이를 피하곤 했다고 합니다.
다시 마왕은 석존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 특히 비구니[여성 출가자]를 유혹하거나 협박했습니다. 경전에는 악마가 '당신은 젊고 아름답다. 나 역시 한창이니, 함께 와서 즐겁게 악기를 타면서 놀자.'거나, '여성의 몸으로 정각을 얻어 성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니, 어서 수도를 단념하라.'는 유혹을 던진 이야기가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들 악마는 마라(mara, 죽음의 신), 나무찌(namuci, 한역 경전에는 '장해탈(障解脫)'이라고 번역되어 있음.), 깡하(kanha, 검은 것), 아디빠띠(adhipati, 통치자), 안따까(antaka, 죽음의 신, 죽음의 악마) 등, 갖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통틀어서 악한 것 즉 빠삐만(papiman)이라고 불립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악마유혹의 전설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석존이 출가할 때 국왕의 자리로써 유혹 받았다는 전설이나, 네란자라 강변에서 고행을 할 때 건강을 유지하여 생명을 보존하고 정통 바라문교도들이 행하듯이 행실을 삼가며 한 가정의 장으로서 성스러운 불에 제물을 바치고, 아그니(agni, 불의 신, 火天) 호트라의 제사를 지내고, 공덕을 쌓으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전설 등은 모두 일반 세속세계로의 복귀, 즉 세속적인 욕망에 대한 유혹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8마군(八魔軍)의 유혹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주목되는 것은 악마 빠삐만의 세 딸에 의한 석존 유혹의 전설입니다.
땅하(tanha, 갈애), 아라띠(arati, 혐오)이며, 라가(raga, 탐욕)라 불리는 세 딸은 부친인 빠삐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녀, 젊은 처녀, 남의 아내, 노파 등으로 모습을 바꿔 가면서 석존에게 접근했지만, 일체의 번뇌를 떠나 정각의 경지에 도달한 석존은 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내 마음은 고요하다.'라는 말로써 일축해 버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세 마녀의 유혹에도 성적 충동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하는 옛 전설[수따니빠따]이나, 또는 후대의 한역 경전에서 볼 수 있는 전설, 즉 우루벨라 마을의 네 명의 여자가 유혹했다는 이야기와[사분율(四分律)] 아울러 생각해 볼 때, 금욕 생활을 지켜나가려는 석존에 대한 유혹이 투영된 전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경전에 나타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악마에 의한 유혹의 전설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즉 인간 존재의 근원에 깔린 욕망과 불안, 공포, 고뇌 등이 인간과 벌이는 투쟁의 경과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번뇌에 대한 인식 및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후대의 경전에서는 악마의 수가 더욱 증가하고, 그 내용도 여성뿐 아니라 추상적으로 발달해 갑니다. 불상이나 불화의 제작이 시작되어 항마성도(降魔成道)의 주제가 많이 이용됨에 따라서, 사람들은 실제로 악마가 달려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불타와 불전/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